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jpg)

자유 연재
시간은 미래. 장소는 우주. 그리고 장갑복, 뒷목, 뚝배기. *** 23세기의 우주는 인류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두뇌에 칩을 박고 수많은 지식과 인공지능을 넣은 정신이라 해도 상처받고 미쳐간다. 전신에 강화시술을 받고 장갑복을 입은 육체라 해도 상처받고 죽어간다. 그래서 인류는 거울이 되기로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적대하는 자의 눈에는 달군 납을 쑤셔 박고, 항복한 자의 이에는 그 가족의 고기가 끼어있다. 23세기의 인류는 우주에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1화
잠에서 깰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수면 캡슐의 천장이고 가장 먼저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은 현재의 시간과 위치 정보다.
>연방 표준시 2217년 12월 27일 오전 4시 38분
>마카로니 항성계 네 번째 행성 마카로니 4
이상의 정보를 페가수스급 강습함, 솔리드 베타의 수면실에서 알게 된 김빈우는 욕부터 뱉었다.
“이런 쌍놈들. 크리스마스 날아갔네.”
시간은 지난번 수면으로부터 고작 376시간, 15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건 빈우와 형제들의 평균 수면 시간에 비하면 꽤 짧은 편인데, 불행히도 얘들이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는 것은 인류 사회 어딘 가에도 불행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빈우와 형제들이 필요하다.
빈우가 자고 있던 수면 캡슐은 본격적인 기상 과정에 들어갔다.
근육 마사지가 시작되고 주사기로 영양제와 각종 약물이 투입되자 육체가 활성화된다.
두뇌 칩으로 지금까지의 정보가 들어오고 전투 OS가 부팅되어 사고에 간섭하자 정신이 활성화된다.
일어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옷도 깨어나고 있다. 캡슐 바로 앞에 있는 어벤져 장갑복도 대기 모드에서 부팅되어 둔중한 작동음이 들려온다.
일할 시간을 알리는 소리다.
드디어 수면 캡슐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빈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른쪽을 보고 왼쪽을 봐도 줄줄이 늘어선 캡슐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클론이니까.
앞을 보니 빈우의 장갑복이 대기 자세로 착용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자마자 또 기어들어 가는구나. 바깥 공기 맡아 본 지가 언제냐.”
빈우가 툴툴거리며 불만을 내뱉었다.
잠에서 깨면 장갑복을 입고, 장갑복을 벗으면 잠을 잔다. 이런 반복된 일상 때문에 빈우는 바깥 공기를 제대로 맡아보지 못했다. 작전 중에 맡으라면 맡겠지만 그건 바깥 공기라고 할 순 없지 않나. 기분상.
같은 모습의 클론들이 같은 수면 캡슐에서 몰려나와 같은 장갑복을 착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장관이다.
빈우도 장갑복에 몸을 밀어 넣었다. 신체 곳곳의 접속 단자를 연결하자 사용자 인증 절차와 함께 인공 근육과 장갑들이 줄줄이 달라붙는다.
이어서 시작되는 장갑복의 상태 점검.
>착용자 Ultor C-18 인증.
>동력계 정상.
>구동계 정상.
>통신계 정상.
>화기 제어 시스템 정상.
>전투 os 업데이트 점검.
>최종 업데이트 2217-12-23.
>전투 os와 장갑복간의 동기화… 에러.
>동기화 재시도. 정상.
언제나 똑같다. 빈우와 장갑복에 별다른 이상은 없다.
굳이 이상한 점을 찾자면 백 명의 중대원 중 오직 빈우만이 헬멧 전면에 해골 마크를 그려 개성을 뽐낸다는 것 정도다.
“부라~더! 잘들 잤냐.”
중대 공용 회선에 큰소리로 인사를 날려봤지만, 빈우와 똑같은 뇌를 가진 클론 형제들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전투 시에는 그렇게나 나불대는 놈들이 이런 자리에선-아주 잠깐의 평시에는-무슨 꿀을 빠는지 도통 입을 열지 않는다.
“자식들. 입 여는 놈이 하나도 없네.”
이어서 빈우의 잡스러운 생각을 무시하듯 장갑복의 회선을 통해서 중대원들의 두뇌 통신이 시작되었다.
>울토르 중대 두뇌 통신 회선 활성화.
>접속자 목록 갱신.
>중대원들의 두뇌 칩 동기화.
중대원들의 두뇌 통신 회선은 금방 활성화되었고 그때부터 중대원 100명은 서로의 정보와 사고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두뇌 통신에서 말은 필요 없다. 그냥 느끼기만 하면 저절로 알게 된다.
두뇌 통신은 통신자 간의 뇌와 보조 칩을 연결해 직접 정보를 전하는 방법으로써 음성과 영상을 쓰는 일반 통신 보다 훨씬 정확하고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물론 잘못된 정보까지도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단점도 있으니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리고 빈우의 머릿속으로 감정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렴풋하고도 희미한 그 뭐랄까….
-저 새끼 또 저래?
-몰랐냐? 원래 저랬잖아.
-원래 안 저랬을 텐데?
-그럼 언제부터 저 꼴 난 거지?
“…시발놈들….”
이렇듯 중대원들의 한심해하는 말과 사고가 빈우의 머릿속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형제들이 대답하지 않는다고 무관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 빈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바로 클론 부대-울토르(Ultor)중대의 장점이다.
클론들의 같은 뇌. 같은 두뇌 칩, 같은 전투 OS, 거기에다 동기화 훈련을 거치고 나면 동종 모델 간의 두뇌 통신은 일반인보다 상당히 빨리, 그리고 쉽게 이뤄진다. 일반 인간이라면 회선을 만드는 데만 수초가 걸릴 것이다.
덧붙여 클론 부대의 단점 아닌 단점이라면 방금과도 같은 감정의 공유까지 일어난다는 거다. 아마 같은 육체와 신경계를 가졌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추측만 할 뿐, 상부에서는 별로 해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딱히 필요가 없어서 그럴지도.
“형제들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형제들에게 씹혀 구시렁거리던 빈우는 코일건을 들었다. 장갑복의 손바닥으로 돌격 소총의 손잡이를 쥐자 곧바로 점검과 연결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소총과 장갑복이 연결되면 총의 조준기와 빈우의 시야가 동조되어 빈우의 눈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 세 번째 눈으로 봤던 피사체들은 결코 좋은 꼴을 못 봤다. 뭐 세상을 보는 데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다지만 초음속으로 날아오는 니켈강 탄환에 갈기갈기 찢기는 게 좋은 꼴이라고는 볼 수 없지 않나.
대부분은.
‘알아서 기면 그런 꼬락서니는 안될 텐데.’
빈우가 딱히 적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빈우가 든 총에 처맞고 뒈질 놈들은 인류 연방 정부가 답 없어서 손 놓을 정도로 막 나가는 놈들이니까.
그리고 이 울토르 중대가 하는 일은 연방이 손 놓은 놈들을 정신 줄마저 놓게 만드는 거다.
그때 이번 작전의 무대인 마카로니 4의 행성 지도와 작전 내용이 중대원들의 뇌 속으로 입력된다.
2025.12.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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