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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바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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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화
455화무료 3화
자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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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페이지밖에 못 읽은 인터넷 소설 속 서브 남주인공에게 빙의했다. 그것도 여주인공의 소꿉친구인 서브 남주인공으로. 어차피 크게 비중도 없는 것 같겠다, 이렇게 된 거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주요인물과 엮이지 않은 채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미르군 양성 고등학교, 최강고등학교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수상한 학교와 피할수록 엮이게 되는 사대천왕들. 거기에 한술 더 떠 이레귤러와 이능력이 존재하는 소설의 세계관까지. …어쩐지 내가 알던 인소의 장르가 바뀐 것 같다.

#BL#아카데미/학원#다정공#대형견공#순진공#귀염공#호구공#헌신공#짝사랑공#무심수#강수#능력수#얼빠수#다공일수#친구>연인

1화








빙의(1)




누나와 같이 살았던 탓인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인터넷 소설을 좋아했다. 스물이 넘은 지금까지도 종종 예전에 봤던 인터넷 소설, 일명 인소를 찾아 읽을 정도로.


그날은 정말이지 평소와 다를 게 없던 하루였다. 길을 걷다가 누나에게 카톡이 왔고, <이런 엔딩>이란 제목의 인소를 추천해 주며 수작이라 말하는 카톡에, 보내준 링크를 열어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는데….


빠앙―.


드라마에서나 들을 수 있던 클랙슨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우더니 퍽, 하고 몸이 솟아올랐다.


아프다는 고통이 채 찾아오기도 전에 날아가는 핸드폰이 시야에 들어온다.


쾅!


떨어지는 핸드폰과 함께 몸이 추락했다. 어지러운 시야에 깨진 액정을 유영하는 활자들이 보이자, 웅성웅성,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한발 늦게 찾아온 욱신거리는 통증 속에서 페이드 아웃처럼 소음이 멀어진다.


‘강시현’


흐릿해진 눈동자가 이름 하나를 품었다. 그것이 눈을 감기 전 시현이 목격한 마지막 광경이었다.




***




거울 속 얼굴이 낯설었다.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거울에 비친 얼굴을 살펴본 시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벽안의 소년을 마주했다.


얼굴을 덮은 피부가 희고 깨끗했다. 눈을 한번 끔뻑일 때마다 얇고 풍성한 속눈썹이 길게 내려왔다가 사뿐하게 올라간다.


‘원래의 몸’도 못생긴 편은 아니었는데 그보다 여섯이나 어린 ‘강시현’은, 막말로도 못생겼다 폄하하지 못할 정도로 외모가 빼어났다.


길에서 배우나 아이돌이라 거짓말을 해도 그렇구나 하고 속아 넘어갈 정도의 개연성을 부여하는 얼굴. 그 얼굴을 꼬집어 본 시현이 선명한 고통에 미간을 좁혔다.


꿈이 아니었다. 그 말은 즉, 지금의 상황이 현실임을 뜻했다.


소설에 빙의했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나 일어나던 일을, 제가 겪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2월 7일, 처음 낯선 침대에서 눈을 떠 3월이 될 때까지. 지난 한 달을 현실부정으로 허비한 시현은, 이미 졸업했던 고등학교의 입학 날이 당장 내일로 다가오고 나서야 이곳이 꿈이 아님을 인정할 수 있었다.


수십 번 볼을 때려도 자신이 ‘유시현’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고 몇 번을 자다 깨도 천장이 뒤바뀌는 일이 없었다. 종내에는 미친 척 뛰어내리려고 했다가 옥상에 올라온 이름 모를 아저씨에게 붙잡혀 설교를 듣는 일까지 있었다.


마지막 기억이 교통사고였던 것 같은데….


죽어서 천국에 온 건가 싶기도 했고, 하도 인소를 보는 바람에 인소 지옥에 갇힌 건가 싶기도 했다.


허무맹랑한 생각 속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방문을 두드리는 걸 무시한 채 방에 박혀 보낸 지도 일주일. 죽은 거 아니냐며 경찰에 신고하려던 강시현의 부모님을 말리고 나온 끝에 화장실로 온 시현이, 한숨을 내쉬며 검은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거울 속에서 색이 옅은 푸른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몇 번을 마주해도 오싹할 정도로 낯선 눈동자였다.


온갖 노력과 시도에도 몸은 바뀌지 않았고 시간은 흘렀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어 도륵, 굴러간 눈동자가 거울 속 인물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지나칠 정도로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과 바다와 섞인 듯한 푸른 눈동자. 끝이 올라간 눈꼬리, 옅은 속쌍꺼풀. 그 모든 것이 인터넷 소설 <이런 엔딩>의 서브 남주이자 여주인공의 소꿉친구인 ‘강시현’의 것이었다.


“…차라리 미친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미쳐서 헛것을 보고 있는 거라면 당장이라도 펄쩍 뛰며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지난 한 달간 뼈저리게 느꼈다.


당장 내일이 강시현의 입학 날이었고 고등학교 등교일이었다. 세면대를 붙잡은 손을 주먹으로 고쳐 쥔 시현이 입술을 짓누르며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인터넷 소설을 읽어온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어차피 빙의했고 나갈 수 없는 상태라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활용해 조용히 지내다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저조차 <이런 엔딩>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얼마 없다는 거였다.


차라리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들이 백번 낫지.


왜 하필 빙의해도 읽은 분량이 8페이지밖에 안 되는 인터넷 소설이란 말인가.


보통 소설에 빙의한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이 빙의한 소설의 엔딩이라도 알고 있지만, 시현에겐 그 어떤 치트키도 없었다. 오직 10년간의 경험으로 다져진 인소 속 클리셰에 대한 정보와 소설을 읽기 전 확인한 등장인물 설명을 통해 주요 인물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요소와 부분은 엄연히 다른 법이다. 특정 장르가 가지는 특정 요소를 안다고 해서 그 장르에 속하는 모든 작품을 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시현이 푸른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명확한 것은 <이런 엔딩> 속 주요 인물들밖에 없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그들과 엮이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여주인공인 ‘정다운’에게 반하지 않아 사대천왕과 엮이지만 않는다면 귀찮은 일에 얽힐 가능성도 떨어질 거였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현명하신 옛 성현들의 속담을 머릿속에 아로새긴 시현이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찬물로 세수하고 나서야 혼란스럽게 과열되던 머리가 차게 식는다.


돌아갈 방법도, 돌아갈 수 있는 시기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다가 돌아갈 방법을 모색해 복귀하려면 여주인공 같은 주요 인물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인소를 뒤흔들 사대천왕이란 놈들도 여주인공과만 엮일 테니까. 그게 인터넷 소설의 국룰이었으니.


싸가지 없는 놈, 차가운 놈, 다정한 놈, 귀여운 놈. 사대천왕 국룰에 맞게 등장인물 설명란에 적혀 있던 네 명의 이름을 떠올려 본 시현이 마른입을 축였다.


비록 지난 일주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제 방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지 않으면 죽일 거라 협박했던 다운을 생각해 보면 피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긴 했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결의를 다진 눈동자가 다시금 흐릿해진다.


체념 끝에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진 견뎌보겠다는 마음을 먹긴 했으나, 앞이 막막하고 불안한 건 여전한 것 같았다.




***




해가 떴고 아침이 됐으며 입학 날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고3으로 사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 생각했는데, 그 일을 두 번 겪게 되는 것도 모자라 1학년부터 다시 밟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아직 입학도 하지 않았건만 졸업하고 싶어졌다.


지옥 같은 성적 경쟁과 수십 번의 모의고사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나 도주 욕구가 치솟았지만 도피할 수는 없는 거였다.


슬쩍, 거울 앞에 선 시현이 아이돌이나 입을 것 같은 교복을 살폈다. 누가 인소 아니랄까 봐, 하얀 와이셔츠에 아이보리색 베스트 조합의 춘추복이 퍽 예뻐 보였다.


그래, 그래도 인소니 공부 정도는 쉬엄쉬엄해도 괜찮지 않을까.


‘유시현’의 학창 시절은 그야말로 공부에 파묻힌 지옥이었다. 대학교 수석 입학을 위해 발버둥을 치며 공부했던 때를 떠올린 시현이 파드득, 몸을 떨곤 미리 챙겨 두었던 크로스백을 꺼내 메었다. 꼴에 인소라고 책가방이 아닌 크로스백을 허용해 주니 그 점 하나는 제법 괜찮은 것 같았다.


문제는 그거 빼곤 전부 별로라는 거였지만.


크로스백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으니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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