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는 대로 움직이던 유태진은 결국 입막음을 위해 회장에게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끝인 줄만 알았던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데…. 스스로 움직여 재벌이 되려는 유태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 개죽음
서울 한복판의 커다란 한옥에서 산다는 것은 그만큼 권세가 강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지금 이곳의 주인에게 모든 것을 잃은 채 쫓겨나게 생겼다.
“태진아.”
“…네. 회장님.”
나는 바들바들 떨며 무릎을 꿇은 채, 그저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네가 책임을 져야겠다.”
“제… 제가요?!”
깜짝 놀라 고개를 드는 나를 보며,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한 일이 아니더냐?”
“허나… 이번 일은 모두 부회장님께서 벌이신 일인데….”
“어허!”
내 말을 끊으며 윽박지르는 조원창의 모습에, 나는 말을 삼키며 간절히 어르신을 쳐다보았다.
“태진아, 내 아들놈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다. 딱 한 번만 고생하자.”
“이번엔 정말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제가 대타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이미 청와대와 입은 맞추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젠장!
모든 이들이 나를 희생양으로 만들려 작정했건만, 나는 옴짝달싹 못 한 채 그저 당하게 생겼다.
“우리 그룹 변호사들 알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온갖 금융 범죄들을 저질러 온 회장님을 무죄로 만들어준 법무팀이다. 그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회장님은 몸이 불편한지 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설마 너를 버리겠느냐. 한 1년만 갔다 오면 명성 건설을 너에게 맡기마.”
“명, 명성 건설 말씀이십니까?!”
깜짝 놀라서 분위기도 잊고 소리를 쳤다.
그와 동시에 머리가 바로 팽팽하게 돌아갔다.
수많은 회사를 다스리고 있는 명성 그룹, 그중에서도 주가 총액으로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성 건설을 나에게 맡긴다는 말에 일견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군.’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성 그룹의 법무팀이라면 검찰 놈들도 꼼짝 못 하게 짓누를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차피 1년 내외로 정리가 될 것이었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내가 거절을 한다면… 지금까지 성공을 위해서 모든 짓을 해왔던 내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 뻔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습니다.”
“그래그래. 조 실장, 자네가 옆에서 도와주게나.”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렇게 말하며 나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불안하지만… 1년만 있으면 된다.’
1년 뒤 명성 그룹 알짜배기 회사의 사장이 될 수만 있다면 그깟 전과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는 몰랐다. 이게 내 인생에서 최악의 결정이었을 줄은.
* * *
명성 그룹.
국내 대기업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초거대 재벌 기업이었다.
자동차, 건설, 물산, 전자 등등 각종 분야에 수많은 기업을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 곳곳을 자본으로 지배해왔다.
매년 취업경쟁률 1:100을 자랑하며 취업생들이 들어가고 싶은 기업으로 손꼽히는 명성 그룹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명성 그룹의 시작은 지방에 있는 흔하디흔한 사업체였지만, 회장인 고명성은 남다른 투자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정계와 손을 잡아 각종 이권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정경유착의 끝판왕을 보여주었다.
이후 그는 그 힘을 바탕으로 주요 국가사업들에 진출하며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고, 명성 그룹을 손에 꼽히는 대기업으로 만들어냈다.
허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 점점 정경유착의 폐해가 전 국민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여당의 대표와 중진의원들에게 엄청난 뇌물을 뿌린 것이 온 세상에 알려졌고, 명성 그룹에 대한 각종 의혹이 쏟아지며 특검이 결성되어버렸다.
특검의 목표는 명성 그룹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고명성 회장과 그의 아들 고창석 부회장이었고, 명성 그룹은 겨누어진 칼을 피한 채 어떻게든 희생양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희생양은 바로 고창석의 비서실장인 나였다.
* * *
“불법 뇌물 공여죄, 각종 금융법 위반에 따라 피고 유태진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다.”
어마어마한 형량에 깜짝 놀란 나를 명성 그룹 법무팀 팀장이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껏해야 3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법무팀 팀장이 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검찰 측과 거래를 했습니다. 우선 형량을 강하게 내리면서 검찰의 체면을 살려주고, 1년 뒤 재심에서 집행유예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10년 징역이 집행유예로 바뀌는 것은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돌아보자 법무팀 팀장이 내 어깨를 다독이며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저희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회장님께서도 이번 일은 절대 잊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나는 불안했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숨을 내쉬었다.
내 손에 수갑이 채워졌지만… 나는 한번 내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고명성 회장님의 말을 기억하며 교도소로 가는 길을 아무렇지 않게 걷기 시작하였다.
* * *
1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지금까지 명성 그룹에서 저지른 모든 비리들이 내가 저지른 일로 둔갑되자, 아내가 이혼서류를 내밀면서 헤어지자 통보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서류에 서명했다.
‘젠장….’
평생을 같이하겠다던 아내가 저 멀리 가버렸지만, 1년만 있으면 지금까지 힘들게 벌었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터였다. 지금 나를 보며 멍청하다 욕할 명성 그룹 임원진들도 내려다볼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나는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신문에 뜬 충격적인 기사를 보고 깜짝 놀라 변호사를 불렀다.
<명성 그룹 고명성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회… 회장님이 어떻게 된 겁니까?!”
자칫하다가는 회장님과의 약속이 깨지고 이대로 징역 10년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룹이 안정되는 대로 2심을 준비할 것입니다.”
“…정말입니까?”
“그럼요. 그리고 부회장님도 유태진 실장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 예전 직함을 불러주는 변호사를 보며 나는 부회장… 아니, 새롭게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될 고창석을 떠올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알겠습니다. 제가 바쁘신 분을 불러서 괜한 소리를 했군요.”
“아닙니다. 아무튼, 마음 편히 가지십시오.”
변호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려 하였으나, 이미 생겨버린 의심의 씨앗은 사라지지 않았다.
2025.12.0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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