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전쟁의 끝, 세렌은 황제의 딸로서 황국의 명령을 따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은 황실의 규범을 따르는 것 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17번째 생일날, 북부의 황태자 라그네스에게 납치를 당하는데.. “이건 납치나 마찬가지예요…!” 세렌이 겨우 항의했지만, 라그네스는 여유롭게 그녀의 손을 이끌어 품 안에 가두었다. “그래요, 납치죠. 하지만 당신의 어머니와 내가 맺은 계약에 명시된 대로, 오늘 이후로 당신은 나의 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의 낮은 목소리에 세렌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계약 결혼으로 맺어진 두 사람, 그리고 이 계약의 정체는 뭘까? 의도치 않게 세렌의 삶에 깊이 얽히게 되는 이 남자! 사실 용족의 후계자라고..? 이 남자, 왠지 낯설지가 않은데?정말 어딘가에서 만난적이 있었을까?
이른 새벽부터 황궁은 분주했다.
오늘은 나멘로스의 황녀 아르셀리아 세렌이,
열일곱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세렌은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에게 5명의 시녀가 붙어, 분주하게
머리를 빗기고, 장신구를 고르며 움직였다.
세렌은 그저 시녀들의 손길에 몸을 맡기며,
어서 이 연회가 잘 마무리되길 빌었다.
황궁에서는 새벽부터 쉴 새 없이 연회의 준비가 이어졌다.
어머니인 리에타 황제는 이번 생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렌, 너는 나멘로스의 황녀다.
황녀의 품격에 맞는 몸가짐을 보이거라.”
“네, 어머니..”
“백작들에게는 눈이 마주쳤을 때 딱 한번.
사교계 부인들에게는 옅은 미소만 띄거라.”
리에타 황제는 주요 인사들의 특징과
세렌이 웃어야 타이밍이 적힌 문서를 세렌에게 건냈다.
“선물을 받으면 눈을 마주치며 딱 한번만 웃어주거라.
언제 웃어야 하는지 정해두었으니, 그대로 하거라.”
‘...제가 그렇게까지 해야하나요?‘
세렌은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어느것도 할 수 없었던 세렌은,
머릿속에 생각난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삼켰다.
“네.. 잘 알겠습니다.”
“ 너는 내 가장 훌륭한 작품이란다.
네가 곧 나란다. 너는 곧 나멘로스고.
그 누구도 너를 얕보아선 안된다.”
세렌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세렌님, 조금만 더 참으세요.
오늘만 지나면 편히 쉬실 수 있을 거예요.”
리안의 말에 세렌은 눈을 살며시 떴다.
시녀 리안이 세렌의 안색을 보고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세렌은 거울 속에서 조금 지친 표정의
자신을 바라보며 애써 미소지었다.
“괜찮아요. 모두가 저를 위해 수고하고 있는데,
이 정도쯤이야.“
세렌은 화려한 궁중 연회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기대, 귀족들의 탐색하는 눈빛, 가식적인 축하의 말들.
그 모든 것들이 불편했다.
‘벌써부터 지치면 안돼..’
성대한 음악소리와 함께, 세렌의 17번째 생일 축하 연회가 열렸다.
황제 리에타는 위엄있는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축사를 읽었다.
각 집안의 귀족들은, 값비싼 선물들을 건네며 인사치레를 했다.
세렌은 그 인사에 부흥하듯,
어제 보았던 귀빈 문서를 떠올리며 정해진 감사인사를 했다.
그래서인지 연회가 시작된 이후,
내내 억지로 표정관리를 했던
그녀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연회는 성대하고 화려했지만 지루했다.
끝이 안 보이는 긴 인사를 마치고 나자 세렌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겨우 귀족들의 시선을 피해 잠시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황궁의 남쪽 정원.
잔잔한 분수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고,
밤공기에는 잘 익은 과일과 꽃향이 섞여 감돌고 있었다.
정원 너머, 연회의 흥겨운 음악소리와 웃음소리는,
그녀에게 점점 더 멀게 느껴졌다.
정원에 도착하자 세렌은 긴 숨을 내쉬었다.
등 뒤로 아득히 들리는 음악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조금만.. 조금만이라도 쉬자.’
세렌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밝은 달이 구름 사이를 헤엄치듯이 천천히 움직였다.
‘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
바로 그때, 정원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황녀님의 생일인데, 혼자 이렇게 숨어있는 건 좋지 않군요.”
세렌은 놀라 몸을 돌렸다.
정원의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그녀가 처음 보는 남자였다.
은발에 보라색 눈동자. 낯설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세렌은 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시죠? 여긴 허락 없이 들어오면 안 되는 장소인데요."
남자는 작게 미소 지었다.
“제게 황녀님을 만날 권리가 있다는 걸 잘 아실 텐데요.”
“그게 지금 무슨... 말이죠?”
세렌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남자가 달빛 아래 다가오자 그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멜모니아 황국의 황태자. 전에 몇번 본적이 있던 얼굴이다.
“라그네스..황태자님?”
“정확하군요. 기억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어떻게 들어온거죠?”
세렌은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라그네스는 순식간에 그녀의 손목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저항하려 했지만 그의 힘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조용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여기까지 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의 목소리는 서늘했지만, 이상하게도 위협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이건 납치나 마찬가지예요…!”
세렌이 겨우 항의했지만,
라그네스는 여유롭게 그녀의 손을 이끌어 품 안에 가두었다.
“그래요, 납치죠.
하지만 당신의 어머니와 내가 맺은 계약에 명시된 대로,
오늘 이후로 당신은 나의 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의 낮은 목소리에 세렌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부인이라고?’
두려움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저는 지금 황태자님이 무슨 말을 하시는건지 모르겠어요.”
2026.01.2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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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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