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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억짜리 저주를 찍어내는 여자
뻔뻔한 삽살개🐊
3화무료 3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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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참여작

아빠가 도망갔다. 9억을 긁은 내 명의 신용카드만 남기고.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아빠 손에 이끌려 개통했던 블랙카드를, 그리고 발급받자마자 아빠 손에 들어가선 나도 모르는 사이 9억을 긁히고 덩그러니 책상 위에 돌아와 있었던 블랙카드를 빤히 내려다보다 다시 품안에 넣었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나는 9억을 갚아야하는 빚쟁이다. 집안사정은 돈 빌려준 사람에게 핑계가 되지 못했다.

계속된 작업에 머리가 무거워져 잠시 쉬다가도 9억 빚의 증거를 보며 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작업에 착수한다. 바로 마법카드를 만드는 작업에.

"아이고, 우리 여명씨가 역시 제일 성실하네~"

누군가 내 어깨를 감싸안듯 토닥인다. 상사인 오팀장이다. 시선을 내려 그가 토닥이는 어깨를 본다. 현재까지 축적된 친밀감에 비해 과도한 접촉이라 어색하고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보자, 우리 여명씨가 무슨 마법을... 어? 파이어볼? 고작 3써클 마법카드를 만드는 거야? 여명씨 수준에?"

마법. 고대에는 신비로운 어떤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힘이 현대에 오면서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보편화된 것.

인간의 상상력과 그것을 구현할 수학적 연산이 더해지면 그 어떤 것이든 실체를 가지고 발현된다. 그것이 마법의 정체였다. 이론상으론 그 누구든 그 어떤 강대하고 환상적인 마법이든 모두 발현할 수 있었다.

다만 실제 마법의 발현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어떤 것을 구현하려는지 정확히 상상해야하며 구현하려는 마법에 상응하는 수학적 연산능력이 따라야 했다. 상상력과 연산능력. 그것이 고대 사람들이 추상적으로 말했던 '마력'이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마법을 발현할만큼 구체적 상상력과 연산능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그것을 보조하는 수단이 바로 '마법카드'였다. 마법카드로 보조한다고 모두 마법사가 되는 건 아니지만 고대에선 거창한 주문으로도 1서클 마법이 한계였을 사람을 현대엔 마법카드를 통해 간단히 3서클 마법을 부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네. 3서클 카드가 제일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요."

그리고 나는 그런 마법카드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렇긴 해도 하이서클 주문도 많았는... 많았는... ...다 해버린 거야, 여명씨...?"

"네."

"...허허. 수학올림피아드 만점자는 역시 다르구만."

왜 그 말을 하면서 은근슬쩍 어깨를 쓰다듬는지 잘 이해되지 않고 불쾌했다. 목소리도 듣고 있으면 느끼한 음식을 억지로 삼킨 것처럼 불편한 느낌이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20세 미만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세계에서 가장 큰 수학경시대회.

마법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거기에 수학적 연산능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수학올림피아드는 가장 잠재력 높은 마법사를 알아보는 전세계에서 주목하는 행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 이여명은 그 엄청난 대회에서 만점으로 우승하며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괜히 아무것도 없는 스무살짜리 앞으로 한도무한의 신용카드, 블랙카드가 발급된 게 아니다. 하지만...

'나한텐 상상력이 없었지. 티끌만큼도.'

막상 성인부터 받을 수 있는 마법적성테스트에서 나는 0점이 나왔다. 1서클의 마법조차 발현하지 못했다. 그렇게 마법사라는 고소득 직업을 얻지 못했다.

사실 어느정도는 예상했다. 1서클조차 실패할만큼 처참할 줄은 모르긴 했으나 나도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 걸 알았다. 수학에만 모든 능력치가 몰리고 다른 건 전부 덜떨어진다는 건 눈치없는 나도 느꼈다.

그래서 아빠가 기대했다가 실망하지 않도록 미리 언질도 주었다. 나는 대마법사가 되긴 어려울 거라고.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럼 적성검사 받기 전에 가장 몸값 높은 상태로 대출을 받자.' 였다.

'우리 아빤 싹 다 날려먹고도 남을 사람이라 그건 거절했는데...'

문제는 막 성인이었던 스무살의 여명에겐 금융지식이 전무했고 아빠는 영악했단 것이다. 대출은 그나마 누가 들어도 위험한 거 같아서 거절했다만, 한참 뒤에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신용카드 하나는 만들어 두자는, 마치 주민등록증 발급 받으러가자는 듯이 아무렇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한 기색에 속아 연회비 300만원의 블랙카드를 발급받았다.

그리고 한 달도 안되어 아빠는 사라졌다. 빚 9억의 블랙카드만 덩그러니 두고 귀금속이며 비싼 옷들이며 전부 가져갔더라. 헐레벌떡 카드부터 해지했지만 내 앞으로 달린 빚은 사라지지 않았다.

씁쓸한 과거를 회상하고 있노라면 오팀장님이 예의 그 느끼한 음성으로 말을 속삭였다.

"여명씨... 오늘 저녁도 내가 사줄까...?"

"아. 정말 감사합니다."

귓구멍에 습기가 차서 매우 불쾌했지만 저녁값 굳는 소리에 냉큼 그의 말을 반겼다.

"잠깐만, 여명씨! 오팀장님!"

갑자기 내 옆자리에서 마법카드를 만들던 황여사님이 벌떡 일어섰다. 어쩐지 그녀는 화가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자꾸 여명씨 저녁을 팀장님이 사주세요? 다른 팀원들은 밥은커녕 커피도 사주시는 법 없는 분이?"

"아이 참, 우리 여명씨가 참하고 일도 잘하니까 예뻐서 사주는 거지. 뭐 잘못됐어?"

"여명씨가 예뻐서 밥사주는 게 문제라는 거죠. 지금 한참 어린 직원한테 뭐하시는 거예요? 남들이 볼 때 얼마나 부적절해 보이는지 아세요?"

"부,부,부,부적절하다니! 그리고 한참 어리기는 뭐가 한참 어려! 12살 밖에 차이 안 나는데!"

"뭐가 이렇게 소란일까..."

우아하지만 시끄러운 소란을 한번에 짓누르는 힘이 담긴 음성에 모두의 몸이 굳는다.

"조... 조합장님..."

'헉, 조합장님!'

마법사협동조합장. 7서클의 대마법사. 내 9억 빚의 채권자님!

실제 나이는 50대라지만 마법으로 20대처럼 보이는 이목구비 또렷한 미인이 각선미를 뽐내며 우아하게 우리를 스쳐간다. 그녀가 스쳐지나갈 때 풍긴 고혹적인 향기에 멍하니 시선을 올리면 어쩐지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조합장님은 내게 싱긋 눈웃음을 흘리곤 내가 뭐라 말도 붙일 새 없이 또각또각 구둣소리를 내며 가장 안쪽으로 걸어가신다.

아... 오늘도 무척 아름다운 나의 빛. 나의 영원한 빛 조합장님... 마법사도 되지 못한 스무살짜리 채무자에게 일자리도 주고 채무기한도 연장해준 너그러운 여신님.

홀린듯이 그 분의 뒷모습을 쫓고 있노라면 다른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한차재. 내 초중고등학교 동창이자 마법사협동조합장님의 남자 비서. 연예인으로 착각할만큼 무척 잘생긴 얼굴이 나를 빤히 돌아보다가 조합장님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점심시간. 팀원들이 모두 식사를 하러 나갔고 나는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굶으며 계속 마법카드를 만들었다. 1,500만원의 실적을 쌓아야 적어도 이번달치 이자를 갚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달은 5서클 이상의 하이서클 마법카드 주문이 적어서 3서클짜리라도 많이 찍어내야 겨우겨우 이자를 갚을 모양새였다.

"야."

누군가 말을 걸어 고개를 드니 초중고동창생이자 조합장님의 비서인 잘생긴 한차재가 내 옆자리 책상에 걸터 앉아있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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