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눈을 떠보니 나는 치킨이 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닭의 형태가 아닌 갓 튀겨내어 바삭한 후라이드 옷이 입혀진 치킨... 한평생 양념파던 내가 이 삶에 적응할 수 있을까? 거대한 인간의 입에 삶이 송두리째 잡아 먹히기 전에, 나는 이 치킨집을 탈출해야 한다!
눈을 뜨자 치킨이 되어 있었다.
나 김민수, 김씨 가문의 막내 아들. 한평생 백수로 살며 제대로 이룬 것 하나 없어서 나름대로 자부할 능력이라곤 식탐밖에 없는 사나이. 하루에 총 여섯 마리의 치킨을 먹은 남자.
그런 내가 치킨이 되었단 사실을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눈을 뜨고 보이는 회색 벽, 벽의 언저리에 껴있는 기름과 굳은 식용유, 한껏 어질러져 있는 주방...
무엇보다도 정신없이 울리는 배달음 소리.
삐비빅-!!
굉음과 함께 주방장은 내 건너편의 치킨들을 들어올렸다.
한 번에 두 개의 다리, 퍽퍽살, 날개...
수많은 부위들이 그의 손에 의해 박스로 향했다.
툭.
그는 가지런히 치킨들을 박스에 넣은 후 가게 냉장고로 향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손에는 희여멀건 치킨무 한 박스가 들려 있었다.
"수리아파트 503호로 가면 되야~."
그는 건성건성 치킨 박스를 포장한 후 차마 닫히지 않은 치킨 박스를 어딘가에 던졌다.
아무래도 내-
아니, 치킨 시야의 한계인지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순식간에 직감했다.
나는 방금 들려나간 저들, 가루로 포장당해 후라이드가 된 신세와 같은 처지였다.
이전에는 팔이었던 곳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갈색 튀김이 그 사실을 증명하듯 막 튀겨진 치킨 냄새를 방출했다.
더한 판단은 필요없었다.
나는 치킨, 그것도 후라이드 치킨이 된 것이다.
순간 엄청난 당혹감이 들었다.
물론 나도 영웅물이라던가 즐겨보는 웹소설의 등장인물로 빙의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내 손 아래 좌우되는 화려한 세계와 멋진 검격을 뽐내는 주인공..
그런데 치킨이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게다가 후라이드 치킨이라니..
내가 줄곧 주장하는 치킨 매니아의 이론이 있다.
그것은 바로 후<양, 즉 어떤 치킨이든 후라이드보다 양념이 낫다는 뜻이다.
나는 최고 치킨 기록을 돌파했을 때도 후라이드는 시키지 않았다.
질릴지언정 양념 치킨을 먹자는 나의 신조가 이렇게 허무하게 깨지고 말다니..
당황하고 절망스러운 기분을 어떻게든 삼켜내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옆에 있는 치킨 박스는 총 넷.
저 네 박스가 팔려 나가면 곧이어 나까지도 배달되게 될 것이다.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치킨의 몸으로 뛰어내릴 수는 없고, 가정집으로 배달된다면 높은 확률로 먹히고 말 테니..
나는 당장 이 치킨집에서 빠져나갈 필요가 있었다.
치킨이 되었음에도 기본적인 생존 본능은 사라지지 않았나보다.
일단 두 팔과 다리를 움직였을 때 어떤 부위가 움직이는지 확인해야 했다.
첫째로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슈욱-
이전 내 몸처럼 팔을 움직여봤지만 아무 변화도 없었다.
조금의 움직임이라도 느껴졌으면 좋으련만 정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 움직여본 왼팔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 번 주방에서는 배달음이 들려왔다.
"오늘따라 손님이 많어~"
주방장의 손이 내 시야를 지나 옆의 치킨들을 가져가는 게 보였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금방 내 차례가 될 터였다.
나는 있는 힘껏 두 다리를 움직여봤다.
이것마저 안 되면 정말 가망이 없었다...
그때였다. 치킨의 몸통 아랫부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체가 다리의 의지에 따라 조금씩 이동하는 걸 보고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다행스럽게도 치킨의 몸은 내 의지를 완벽하게 따라줬다.
다리 부분으로 곤두선 채 일어난 상태를 거의 유사하게 구현해낸 것이다.
기뻐할 시간이 없었다. 주방장이 서있는 치킨을 보고 어떤 반응을 할 지 감당할 수 없었기에.
나는 서둘러 두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치킨 상자 밖으로 뛰어내렸다.
치킨의 아랫 몸은 제법 이상한 모양새로 내 의지를 따라했다.
툭
으억, 비명 소리가 나올 정도로 상자는 꽤 높았지만 다행히 치킨은 비명지르지 않았다.
그때 다시 한 번 주방장이 다가왔다.
그는 내 오른편에 하나 남은 박스를 들어올렸다.
"잉? 뭐여. 언제 치킨이 떨어졌대?"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닥에 곤두박질친 나를 그가 끝내 발견한 것이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최대한 아파보이려 노력했다.
치킨의 몸체가 내 의지를 잘 따라주니, 상태가 안 좋은 치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주방장은 두 손가락으로 나의 다리를 집어 거꾸로 들었다.
우악스럽게 잡힌 다리가 아팠고 뒤집힌 머리가 핑핑 돌았다.
테이블에서 벽, 이내 치킨 박스들 위를 넘어 내 시야에는 주방장의 눈이 보였다.
치켜 뜬 주방장의 눈은 나를 노려보았다.
다리에서 머리, 몸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름 괜찮아 보이는디.."
툭-
그렇게 그는 나를 아까의 치킨 상자로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듯 나는 치킨 상자로 떨어졌다.
허공에서 발을 휘적거렸지만 당연히 날 수는 없었고 나는 그렇게 추락할 뿐이었다.
주방에서는 또다시 배달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가망이 없었다. 나는 꼼짝없이 잡아먹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때였다.
"아빠! 떨어진 치킨 주워다 쓰지 말랬지. 내가 저번에도 민원 들어왔다고 말했잖아!!"
주방 너머에서 신경질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그걸 언제 봤디야.. 이번 건 진짜 멀쩡해. 원래 이쪽 업계에서는 재활용이.."
2026.01.0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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