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모든 국민에게 집을 주는 국가, 하지만 대가는 당신의 '감정'이다. 손목에 이식된 패널을 통해 흐르는 호르몬을 측정해 하루 두 번 진심으로 행복하지 않으면 안락한 내 집에서 쫓겨난다.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무엇이든 감내해야 한다. 지금의 안락함을 위해 나를 내던지지고 현재의 행복을 이어가기 위해 슬퍼할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행복하지 않을 자, 떠나라.
서울의 야경은 잔인할 만큼 화려했다. 자로 잰 듯한 반듯한 대리석 도로와 자율주행 차. 청소하는 로봇. 이보다 더 깔끔한 거리는 없다. 지상 80층 높이의 스카이라인을 수놓은 홀로그램 광고판들은 끊임없이 '행복'과 '안녕'을 속삭였지만, 그 빛은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지표였고, 누군가에게는 사형 선고의 카운트다운이었다.
고층 신축 아파트에서 커피를 마시며 밖을 바라보던 민준은 초조해보인다. 통창 너머의 야경을 뒤로한 채, 민준은 손목에 이식된 투명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응시할 뿐이다. 숫자 하나에 편두통이 시작됐다
[에너지 잔량: 1.2%]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정막한 거실에 크게 울렸다. 숫자는 불길한 붉은색으로 점멸하며 그의 심장 박동을 재촉하고 있었다. 0%가 되는 순간, 민준에게 안락과 성공을 느끼게 해주는 이 강남의 34평형 '프라임 등급' 아파트는 국가가 가져 간다. 지문 인식은 해제될 것이고, 모든 가전제품은 잠기며, 그는 오직 짐 한 보따리만 챙긴 채 도시의 가장 낮은 곳, 외곽의 컨테이너 단지인 '더스트 등급' 구역으로 강제 이주될 것이다.
21세기 후반, 인류는 주거 문제를 해결했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등급에 맞는 집을 무상 제공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국가는 집을 주는 대신, 인간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감정'을 통제하고 이를 화폐로 치환했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의 정적을 깬 것은 김 부장의 날카로운 고함이었다. 민준은 책상 아래로 주먹을 꽉 쥐었다. 머릿속에서는 정교한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상사에게 모욕을 당하는 행위, 즉 '부정적 스트레스 노출'은 에너지 소모율을 평소의 두 배로 가속화한다.
"죄송합니다. 데이터 보강해서 다시 수정하겠습니다."
"죄송하면 다야? 네가 이런 식이니까 에너지가 맨날 바닥이지! 너 저번 주에도 등급 조정 예비 경고 떴다며? 구질구질하게 살기 싫으면 똑바로 해! 네가 여기서 쫓겨나면 네 자리에 들어올 애들이 줄을 섰어!"
김 부장은 날이라도 잡은 듯,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민준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그의 인간적 가치까지 에너지 등급과 결부시켜 깎아내렸다. 민준의 가슴 속에 뜨거운 불덩이가 치밀어 올랐다. 반박하고 싶었다. 당신의 무리한 지시 때문에 밤을 새운 것 아니냐고, 무능한 건 당신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 심박수가 치솟고 코르티솔 수치가 급증할 것이다. 그것은 곧 에너지의 파멸을 의미한다.
[알림: 부정적 감정 지수 급증]
패널의 경고 메시지를 본 민준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비굴한 웃음이라도 지어야 했다. 이 사회에서 분노는 생존과 직결됐다.
퇴근길, 민준은 홀린 듯 지하철역 상가에 있는 고급 주류 코너로 향했다. 가슴 속의 울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15만 원짜리 싱글 몰트 위스키를 집어 들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홧김에 쓰는 돈, 이른바 '시발비용'이었다. 계산대에 손목을 갖다 대는 순간, 패널이 요동쳤다.
[경고: 분노로 인한 충동 소비. 징벌적 에너지 감소]
1.2%였던 숫자가 순식간에 1.0%로 툭 떨어졌다. 민준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비싼 술을 마시는 순간의 쾌락은 혀끝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졌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이 사회에서 '기분 전환'을 위한 지출은 가장 효율이 나쁜 에너지 낭비였다. 시스템은 오직 국가가 정의한 '표준화된 행복'만을 권장했다. 이 기괴한 '낙원'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대 조건은 하나였다.
"하루에 최소 두 번, 진심으로 행복을 느낄 것."
두번 이상 행복을 느끼면 현재 에너지는 두 배가 되고 한번만 느끼면 유지다. 느끼지 못하면 2배가 더 사라진다. 알딸딸해진 정신으로 집에 드러누운 민준은 헛웃음이 나왔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센서와 손목의 패널은 실시간으로 사용자의 뇌파, 호르몬 수치, 표정 근육의 움직임을 측정한다. 광대뼈만 올리는 이 가짜 웃음은 통하지 않는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혈관을 타고 흘러야만 비로소 '행복 1회'가 인정된다. 이 도장을 하루 두 번 찍지 못하면 밤사이 에너지는 회복되지 않고, 잔량은 매일 조금씩 깎여나간다.
민준은 어두운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띵동'
부장에게서 온 업무 지시 메일을 읽고 또 소리를 질렀다. 분노를 표출해버렸다. 에너지 잔량을 볼 자신도 사라졌다. 시계는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오늘 그가 기록한 행복 횟수는 '0'.
"행복해야 해... 제발, 조금만이라도 좋으니까..."
그는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행복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서 아버지가 달리기 1등을 하고 안아주던 기억, 첫사랑과 비를 피하며 나누던 수줍은 대화. 하지만 기억을 되새길수록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불안을 낳았고, 불안은 에너지를 더 태웠다.
[에너지 잔량: 0.5%]
이제 수치는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이대로 잠들면 내일 아침 그는 강남 아파트가 아닌, 곰팡이 핀 외곽 컨테이너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다.
2026.01.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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