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가슴을 가로지르던 긴 검. 눈앞에 펼쳐진 것은, 눈이 아프게 빛나는 흰 검이 가슴 시리도록 어둡게 빚나는 남자의 심장을 찌른 광경이었다. 나의 검이 내가 아프도록 사랑했던 남자의 심장을 뚫었다. “쿨럭!…부교주…” 그 남자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던 것도 잠시, 언제나 그랬든 입꼬리를 올려 만들어진 미소를 지었다. "아..." 나는 더 이상 이 웃음을 보지 못하겠구나. “결혼해주십시오 부교주님” “…응?”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얼굴, 입꼬리를 올린 그 얼굴이다. 그 목소리, 힘있게 낮은 그 목소리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꿈인가?
그의 가슴을 가로지르던 긴 검.
눈앞에 펼쳐진 것은, 눈이 아프게 빛나는 흰 검이 가슴 시리도록 어둡게 빚나는 남자의 심장을 찌른 광경이었다.
나의 검이 내가 아프도록 사랑했던 남자의 심장을 뚫었다.
“쿨럭!…부교주…”
그 남자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던 것도 잠시, 언제나 그랬든 입꼬리를 올려 만들어진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이상할 정도로 저항없이 맞은 검.
아…이 남자는 내가 그를 죽일 것을 알았구나.
떨리는 내 손 위에 피에 젖은 손이 겹쳐 쥐였다.
힘이 다 빠져 피와 기침이 섞인 목소리로 그는 여전히 낮은 그 특유의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부교주님, 허억…어쩔 수 없었지요. 교는… 아직 저와 ...교주만으로… 개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니…
이건 어쩔 수…헉, 어쩔,…수…없었던 일인 겁니다. 부교주,…잘못이 아닙니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내 표정에서 내 감정을 귀신같이 읽어냈다.
누구 하나 읽지 못한다는 내 표정을.
“컥…부교주, 제, 제 마지막을…제가 큽…가장…사랑하던 분께서 허억, 가져가주셔서… 영광일 뿐입니다…”
“…날 사랑했었나? 대총관.”
마지막 순간, 이 질문에 그는 한번도 보여준 적 없는 표정으로 환히 웃었다.
“당연…히. 당신이…기억도 못하는…허억…어릴…때부터…헉…당신을…사랑…”
“아…”
버티던 그의 몸이 축 늘어지며 내 품에 안겼다.
마지막에 웃던 표정 그대로 그는 내 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혈마신교의 천재라던 대총관을,
망해가던 신교를 개혁하고자 했던 대총관을,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를.
…나를 가장 사랑해주던 남자를,
나는 내 손으로 죽였구나.
오늘 밤, 혈마신교를 개혁하고자 했던 두 천재, 12대 교주와 대총관은 이곳에서 반역자들의 손에 죽었다.
내가 사랑했던 대총관은 내 손에 죽었다.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듯, 마지막까지 뜨겁게 맞서다 내 손에 저항없이.
탁
눈앞에 한눈에 봐도 값비싼 술병이 놓였다.
“어떤가?”
5년 전, 장로였던 이가 이제 교주로 내 앞에 앉았있다. 온 몸에 호화로운 장식을 두른 채 어느 것 하나 값나가지 않은 게 없는 대전에서.
“예 교주님.”
“쯧…역시 부교주는 너무 딱딱해.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그 귀한 술 덕에 밖에 있는 평신도들이 죽어나는 것을 모를까.
“…”
내 침묵에 교주는 다시 혀를 찼다.
“…근방을 수색하던 마교 놈들을 잡아냈다지?”
“…예. 아무래도 점점 그 수가 많아집니다. 마교를 주시할 필요가….”
“뭐가 걱정인가. 여태껏 조용하던 이들이.”
“…”
그날 밤, 거리를 걸어 나갔다.
혈마신교의 거리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전대 교주께서 통치하실 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망해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대총관과 교주를 죽인 것은 모두 네 공이다. 무엇을 원하나? 우린 이곳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방해하던 자들이 없는 우리의 세상이다.’
그가 사랑하던 혈마신교는 처참히 사라졌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 거리와 이 사람들은 모두 그날 이후로 산산히 부서졌다.
‘돈이 없다고? 더 걷어라. 대혈마신교의 밑에서 이제껏 보호받던 자들이 아니냐.’
그가 목숨바쳐 고치려했던 이 혈마신교는 무너졌다.
“헉…부,부교주님.”
“소란스럽게 하지 말고. 간단한 안주를 내 오너라.”
대총관이 사랑하던 주점의 2층 창으로 그가 사랑하던 달을 올려다보았다.
‘평화롭지 않습니까 부교주. 혈마신교는 이들과 함께 더 뻗어나갈 것입니다.’
‘…고작 이딴 싸구려 주점에서…’
‘때론 이런 싸구려 주점이 더 기쁜 법입니다.’
그는 언제나 입꼬리를 올린 채 웃었다.
그의 스승과 그가 따르던 교주가 길바닥에서 처참히 살해당한 꼴로 나타났을 때도.
허수아비였던 소교주를 교주의 자리에 앉히고 스스로 대총관의 자리에 올랐을 때도.
썩을 대로 썩은 장로회와 싸우며 신교를 고쳐 나갈 때도.
쥐딱지만한 내공을 지니고, 약해빠진 몸뚱이로, 두렵지도 않던지.
어느 날, 힘을 합치자며 청혼을 해 왔을 때도.
내 검에 심장을 꿰뚫린 그 순간에도.
그는 그렇게 웃었다.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사랑하는 줄은 몰랐다.
그건 나에게 하나의 약점이었다.
왜 하필 나였을까. 왜 나를 사랑했고 내게 청혼까지 했을까.
마지막까지 사랑을 표현조차 하지 않고.
내가 장로의 사람이라는 것을, 언젠가 그의 목을 조를 것을, 그가 몰랐을까.
아니,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이리 될 것을 알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한 번의 개혁의 길을 닦아두고, 마지막에 죽을 에정이었나보다.
...그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뒤에서 인기척과 살기가 느껴졌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푹!
가슴이 타는 통증과 함께 천천히 돌아본 곳에 객잔 주인이 식칼을 내 심장에 박아 넣고 있었다.
그 뒤로 여러명의 평신도들이 무기를 든 채 서 있다.
죽음을 예감한 객잔 주인의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반격하지 않았고 곧 몸이 허물어졌다.
당황과 분노와 원망이 섞인 눈들이 나를 향했다.
저 눈들은 곧 혈마신교의 수뇌부를 향할 것이다.
대총관 이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었나?
그랬다면 성공이로구나.
분노한 저들의 손에 혈마신교가 다시 세워지겠구나.
역시 당신은 참 머리가 좋아.
…당신을 희생히고 당신이 사랑했던 나도 죽였구나.
내가 반격하지 못할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어.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죽을 나를 위한 마지막 선물이었던가.
대총관. 도윤서.
당신의 얼굴이 딱 한 번만 더 보고 싶다.
당신의 마지막 웃음이 한 번 더 보고 싶어.
…나도 당신을 사랑했었어.
눈이 서서히 감겼다. 하늘에서 그를 보게 된다면...
“결혼해주십시오 부교주님”
“…응?”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얼굴, 입꼬리를 올린 그 얼굴이다.
그 목소리, 힘있게 낯은 그 목소리다.
…꿈인가?
대전에서 도망치듯 벗어났다.
그때와 똑같은 장소와 상황.
이제 막 회의를 마친 대전에서, 장로와 교주가 모두 있던 곳에서 당당하게 해온 청혼.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그때 그 상황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받아들렸던 그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무시하고 나왔다는 것만 다를뿐.
“부교주! 결혼해주십시오!”
밖에서 그의 소리가 울렸다. 시동들이 웅성웅성 몰리는 소리가 퍼졌다.
그래 당신은 이런 사람이었지.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저 뒤돌아보는 것 없는 또라이 새끼…
“저…부교주님…”
“알아. 보고 있어.”
“대총관님이…”
“하…저 미친새끼 진짜.”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2026.01.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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