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껍데기의 규격이 엔진의 마력을 결정할 수 없다.” 대한민국 연애 시장의 절대 성역, 170cm. 그 성벽 아래로 추락한 164.9cm의 영혼, 김한결. 7cm의 기만(깔창)이 처참하게 탄로 나던 날, 비웃음 섞인 파티장에서 그는 비로소 ‘마티즈 예수’로 강림한다. “신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설계 오류를 직접 수정하러 왔죠.” 185cm의 거인들이 산소 부족으로 멍청한 소리를 내뱉을 때, 낮은 시야각에서 급소만을 노리는 Low-Angle Sniper. 80Hz의 묵직한 중저음으로 당신의 뇌세포를 뒤흔들 지적인 독설의 향연! 인간을 수치로 등급 매기는 ‘가짜 신’들의 세상을 맨발의 메시아가 어떻게 박살 내는지 지켜보라. 낮은 곳에서 전해지는, 가장 뜨겁고 단단한 압도적 승리의 기록
청담동 라운지 바의 육중한 나무 문이 열렸다. 쏟아지는 노란 조명이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 위에서 기름지게 번들거렸다. 나는 그 번들거리는 빛 위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나는 지금 7cm의 허공 위에 떠 있다.
정확히는 3cm의 실리콘과 4cm의 라텍스 폼이 내 발바닥 아치를 떠받치고 있었다. 중력은 정직하게 내 종아리를 잡아당겼다.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떨렸다. 나는 그 떨림을 무시했다. 고통은 키가 된다. 고통은 곧 힘이다.
"한결 씨, 오늘 스타일 좋은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183cm의 거인, 김민석이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만 들어 그를 바라봤다. 예전 같으면 목을 꺾어야 했을 각도였다. 30도의 차이. 그것을 위해 나는 내 발목을 담보로 잡혔다.
"형제님도 오늘 좋아 보이십니다."
나는 낡은 가죽 성경책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웃었다. 김민석이 킬킬거렸다.
"아니, 파티에 무슨 성경책이야? 컨셉 진짜 독특하다니까."
그는 내 손에 들린 것이 구약과 신약이 아니라, 이 파티장에 있는 인간들의 속내를 낱낱이 적어둔 독설 노트라는 사실을 모른다. 알 리가 없다. 그들의 머리는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바닥을 기는 내 눈빛을 읽지 못하니까.
나는 라운지 바 입구의 전신 거울을 곁눈질로 훑었다.
수트 핏은 완벽했다. 바지 기장은 복사뼈를 살짝 덮는 길이로 맞췄다. 깔창이 들어간 신발의 등이 불룩하게 솟아오른 것을 가리기 위한, 치밀한 눈속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172cm의 건장한 남성이었다. 165cm의 진짜 몸은 가죽 구두라는 관 속에 갇혀 있었다.
"혜린이는? 아직 안 왔어?"
김민석이 두리번거렸다.
"주인공은 늦는 법이죠."
나는 짧게 대답하고 바(Bar)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을 뗄 때마다 발뒤꿈치에서 머리까지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탄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은 앞을 향했다.
이곳은 싸움터다.
170cm 미만은 남자가 아니라 배경으로 취급받는 야생의 숲. 나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바꿨다.
"샴페인 한 잔 주세요."
바텐더에게 주문하며 나는 카운터에 팔꿈치를 올렸다. 자연스럽게 몸무게를 상체로 실었다. 발가락 끝에 몰려 있던 무게가 줄어들며 짧은 쉼이 찾아왔다.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도 거인, 저기도 거인. 대한민국 남자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컸나. 여자들의 힐 높이도 무시무시했다. 기본 10cm. 그녀들은 마치 장대 위에 올라선 광대들처럼 위태롭게, 그러나 콧대를 세우고 걸어 다녔다.
그들의 말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렸다.
"이번에 뽑은 차가..."
"골프장 회원권이..."
"걔는 키가 좀 아쉽더라."
키. 키. 키.
그 말이 들릴 때마다 나는 반사적으로 안경을 추어올렸다. 내 키가 들통나지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본능이었다.
그때였다.
라운지 바의 무거운 나무 문이 열렸다. 실내의 불빛이 순간 어두워진 것 같았다. 아니, 사람들의 눈길이 한곳으로 쏠리며 생긴 그림자였다.
박혜린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170cm였다. 거기에 9cm 뾰족구두를 신었다. 도합 179cm. 그녀의 정수리는 웬만한 남자들의 시선을 아래로 깔아뭉개고 있었다. 금빛 드레스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예뻤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녀는 입구에 서서 파티장을 훑어봤다.
그 눈빛.
고기를 고르는 정육점 주인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눈길.
그녀의 눈이 김민석에게 닿았다. 1등급.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 옆의 175cm 남자에게 닿았다. 2등급.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바 구석에 있는 168cm(추정) 남자에게 닿았다. 등급 외. 눈길은 0.1초 만에 그를 지나쳤다. 없는 사람 취급이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내 차례였다.
박혜린의 눈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엉덩이에 힘을 주고 턱을 당겼다. 7cm의 거짓말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나는 172cm다. 나는 안전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내 얼굴에 닿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어깨.
허리.
무릎.
그리고 발목.
그녀의 눈이 내 구두 위에서 멈췄다.
시간이 멈췄다. 라운지 바의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 심장 뛰는 소리만이 귀를 때렸다. 쿵. 쿵. 쿵.
들켰나?
아니, 그럴 리 없다. 바지 기장은 완벽했다. 걸음걸이도 수천 번 연습했다.
박혜린이 입꼬리를 올렸다.
반가움이 아닌,먹잇감을 찾은 짐승의 웃음이었다. 그녀가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한결 오빠."
그녀가 내 앞에 섰다. 진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내 눈은 그녀의 턱 끝에 닿아 있었다. 7cm를 올렸는데도 그랬다. 빌어먹을 구두.
"자매님, 오셨습니까."
나는 최대한 여유로운 척 웃었다. 하지만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오빠, 오늘따라 키가 커 보이네?"
바로 찔러 들어왔다.
나는 성경책을 쥔 손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기도의 힘이죠. 믿는 자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으니까요."
"재밌어, 오빠는 항상."
박혜린은 내 대답을 가볍게 넘겼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내 발목을 노리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다. 내 신발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니, 확신은 없어도 냄새를 맡은 것이다. 거짓말의 냄새를.
"근데 오빠, 여기 너무 시끄럽지 않아요?"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조금 그렇긴 하네요."
"우리 저쪽으로 가서 조용히 얘기해요. 민석 오빠랑 다들 저기 모여 있거든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
그곳을 보는 순간, 내 눈이 흔들렸다.
그곳은 라운지 바 안쪽에 마련된 방이었다.
문제는 그곳의 바닥이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 마루.
"......"
내 숨이 턱 막혔다.
신발을 벗는 순간, 나의 7cm는 사라진다. 172cm의 한결은 죽고, 165cm의 초라한 몸뚱이만 남는다.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가요, 오빠."
박혜린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손아귀 힘이 셌다.
"아, 저는 여기서 기다리는 게..."
"에이, 왜 빼요? 오늘 주인공은 나인데, 내 말 안 들어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애교 섞인 톤이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초대가 아닌, 명령이었다.
"신발 벗고 편하게 앉아서 마셔요. 오빠 다리도 아파 보이는데."
다리가 아파 보인다.
그 말은 확인 사살이었다. 그녀는 내 종아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벼랑 끝에 몰렸다.
거절하면 분위기를 망치는 쪼잔한 남자가 된다.
수락하면 깔창을 들키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도망칠까? 배가 아프다고 할까? 급한 전화가 왔다고 할까?
하지만 박혜린은 내 팔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손톱이 내 옷소매를 파고들었다.
"얼른요. 신발 벗는 게 뭐 어렵다고."
그녀가 재촉했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김민석과 다른 거인들이 재미있다는 듯 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악의 없는 잔인함이 서려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식은땀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선택해야 했다.
이 자리에서 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신발을 벗고 벌레가 될 것인가.
"잠깐만요."
나는 박혜린의 손을 뿌리쳤다. 아니,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톱은 이미 내 옷을 뚫고 살갗까지 닿아 있었다.
"왜요? 발 냄새라도 나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주변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 냄새라니. 차라리 그게 나았다. 발 냄새는 씻으면 사라지지만, 키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고칠 수 없는 고장이니까.
"급한 전화가 와서요."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은 까맸다. 전원은 꺼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연기했다.
"여보세요? 네, 부장님. 지금요? 아, 네.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허공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비굴함은 나의 무기다.
2026.01.12 17:47
2026.01.11 08:18
2026.01.10 19:05
2026.01.10 08:42
2026.01.0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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