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 셋 때문에, 그리고 너 때문에〉 초여름 오후, 우연한 재회. 중·고교 동창이었던 두 사람의 눈빛이 다시 마주쳤다. 연아, 젊은 나이에 결혼해 두 아이를 얻었지만 전남편의 폭력적인 통제와 시댁의 가혹한 분위기 속에서 몸과 마음이 망가져 결국 이혼한 여자. 밝고 사람 좋아하던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싶지만, 두 아이를 지키기 위한 ‘견딤’으로 하루를 버티는 중이다. 민수,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랐고 평생 가족의 짐을 홀로 짊어졌던 남자. 언제나 조용히 참는 법만 배웠지만 연아를 다시 본 순간,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감정이 생긴다. — 우연했던 만남은 연아의 두 아이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민수는 ‘삼촌’이 아닌 진짜 어른, 진짜 보호자가 되어간다. 아빠에게 상처받고 돌아오던 아이들, 불안 속에서 버티던 연아, 술과 죄책감에 갇혀 있던 민수의 아버지. 서로의 아픔 속에서 네 사람은 천천히 ‘가족’이 되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나… 너희 셋 때문에 사는 맛 난다.” 민수가 내민 손을 연아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잡는다. 이제,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초여름이라기엔 햇살이 너무 강했다.
연아는 땀이 밴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스타벅스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얼음이 녹아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습관처럼 굴리며.
아이 둘이 어린이집에 있는 단 두 시간.
이혼 후, 하루에 단 한 번 주어지는 ‘최연아’로서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끝없이 반복되는 육아와 살림. 전남편의 지긋지긋한 그림자를 피해 겨우 얻어낸 홀로서기는 생각보다 팍팍했다.
“요즘도 전남편이 연락해?”
친구가 나지막이 물었다.
연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지쳤겠지. 나한테 뺏어갈 것도 없다는 거 알 테고.”
그때였다.
쨍그랑! 스타벅스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네 명의 남자가 들어서는 모습.
그 중 하나.
연아의 시선이 마치 자석에 이끌린 듯 멈췄다.
10년의 시간을 넘어, 뇌리에 박힌 채 한 번도 잊힌 적 없는 얼굴.
정민수.
그 이름 석 자가 피를 타고 뜨겁게 돌았다.
검은 머리, 샤프한 눈매, 하얀 피부. 180cm가 넘는 큰 키는 예전 그대로인데, 불안정했던 사춘기 소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단단하고 견고한 성인 남자가 되어 있었다.
연아는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10년 전, 그날의 감정이 불쑥, 통제할 수 없이 치밀어 올랐다.
민수는 일행과 이야기하며 연아의 테이블 바로 옆을 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예나 지금이나 주변에 지독하게 무심했다. 연아를 보지 못했다.
그래. 이 모습이 최연아다.
두 아이의 엄마, 생계에 지친 이혼녀. 그가 알던 빛나는 10대 소녀가 아니다.
연아는 심장이 한 번 크게 흔들리는 느낌에 빨대를 놓쳤다. 손이 떨리는 것을 숨기려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얼얼한 맛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야, 너 왜 그래? 안색이 하얘.”
“…민수야.”
2026.01.11 07:48
2026.01.11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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