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형과 아버지가 죽었다. 그리고 나는 괴물이 되었다. *표지는 AI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유독 비가 많이 오는 날.
수혁은 우중충한 공기의 자취방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형이 죽었다.
본가에서 걸려온 전화는 담담히 수혁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그 내용이 내포한 충격에 비해 아버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덤덤해서, 수혁은 혹시 지금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인지를 의심해야 했다.
몇 년 전 제발로 뛰쳐나온 이후로, 본가에 방문은커녕 연락 한 통 넣은 적이 없어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바로 내일이 형의 장례식이라는 말에, 수혁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실로 오랜만의 귀향이었다.
****
수혁의 아버지는 마법사였다.
어떤 비유 같은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그랬다.
‘어떤’ 마법사였는가는 수혁도 알지 못했다.
차남이었기에 후계자가 될 수 없었던 수혁에게, 아버지는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마법사라는 존재에 대해서 일반인들에게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만은 어릴 때부터 세뇌에 가깝도록 일러 두었기에, 수혁은 그저 막연히 마법사가 그리 떳떳하지는 못한 존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만 할 뿐이었다.
수혁을 대신해 아버지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것은 바로 형이었다.
가문의 후계자이자 동시에 마법의 계승자가 될 형에게, 아버지는 매일 밤 마법에 관한 지도를 행했다.
그 지도라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수혁은 여전히 모르지만.
아버지로부터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마주하는 형이 항상 고통스러워 보였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형은 상냥했다.
나이 터울이 꽤 있는 편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형제 간에 으레 있는 다툼 같은 것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마법 수업이 끝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수혁과 마주칠 때면 언제 그랬냐는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괜찮다는 말을 늘 입에 담으면서.
수혁은 정작 그 말이 더 듣기 괴롭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아버지의 무관심 이상으로, 그것이 수혁이 본가를 뛰쳐나온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둘 다였거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식기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던 아침의 식탁에서.
“저 나갈게요.”
수혁이 스스로도 놀랄만큼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말했을 때도, 아버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러거라.”
솔직히, 형의 장례식이라는 빌미가 아니었다면.
그 날 이후 수혁은 영영 본가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
수혁의 자취방과 본가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으로는 생각만큼 멀지는 않았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 그러고 나서 좀 걷기만 하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위치였으니까.
단지, 산과 언덕의 중간쯤 되는 경사를 한참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그 ‘좀 걷기’가 꽤 힘들기는 했다.
다른 이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사소하다지만, 어쩌면 이것도 수혁이 집을 나온 이유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매일 이 경사 길을 통해 등하교하는 건 아무리 기운이 넘쳐나는 어린 시절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물론, 그 덕분인지 살아오면서 잔병치레 한 번 해본 적 없는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어제 하루 종일 내렸던 비는 지금은 그쳤지만, 하늘빛은 여전히 우중충한 회색.
일기 예보에서도, 오전에는 잠잠하지만 늦은 오후가 되면 다시 쏟아질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수혁은 형의 영전에 얼굴만 비추고 빠르게 돌아갈 셈이었다.
딱히 본가에 오래 머무르고픈 생각이 없기도 했거니와, 일단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이 경사는 더욱 버거워진다.
새삼스럽게 왜 이딴 곳에 집을 지었는지 모르겠다는 향수 젖은 생각을 되새기며, 마침내 수혁이 높다란 경사를 올라 옛 집 앞에 섰다.
본가는 이 마을, 아니 어쩌면 이 나라에서도 몹시 드물게도 서양식 저택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낡은 구석이 보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나름 고풍스러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장함보다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먼저 압도당하는, 흔히 하는 말로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저택.
실제로도, 수혁이 어렸을 적에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령 저택이라고 불린 적도 있었더랬다.
‘그때랑 하나도 안 변했네.’
이미 오랜 세월을 축적해온 유령 저택은, 고작해야 수혁이 떠나 있던 몇 년 정도의 세월로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묘한 감회를 느끼며 수혁이 정문 앞에 섰을 때였다.
“응?”
창살로 된 저택의 정문 너머로 수혁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누군가가 저택의 부지에 들어와 있었다.
마치 연구자의 새하얀 가운을 연상시키는 긴 코트와, 약간 헝클어진 듯한 갈색의 곱슬머리.
키는 꽤 크지만 체형은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수혁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뭘 하고 있는 걸까 신경이 쓰여 잠시 지켜보고 있으려니, 특별히 뭘 하고 있다기보단 그저 저택을 둘러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득 남자와 수혁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수혁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가볍게 인사했다.
‘손님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수혁은 생각했다.
아버지는 인근의 이웃들조차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폐쇄적인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특별한 인맥’은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물론, 두말할 것 없이 마법사로서의 얼굴과 관련된 인맥이었지만.
수혁이 마주 인사하자 손님은 저택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수혁의 시선이 정문으로 향했다.
차갑고 묵직한 창살문이 열리지 않는 감옥처럼 고고히 서 있었다.
열쇠는 가지고 있다.
직접 열고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게 어쩐지 자신이 이 집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수혁은 일부러 열쇠를 사용하지 않고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하고.
약간 탁하긴 하지만 참으로 모범적인 종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어째선지 문은 열리지 않았다.
수혁은 일단 기다렸다.
저택은 생각보다 넓으니,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주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1분 정도를 기다렸음에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딩동.
딩동.
딩동.
재차 초인종을 눌러보아도 마찬가지.
굳게 닫힌 철창문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설마하니 그 폐쇄적인 아버지가, 그것도 명색이 장남의 장례식 날에 집을 비웠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건,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왔음을 알고 일부러 열어주지 않는 것일까?
열쇠는 가지고 있을테니 알아서 들어오라고.
왠지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쯤 되니 오기가 생긴 수혁은, 아예 열어줄 때까지 정문 앞에서 농성을 할까 하다가…… 곧바로 단념했다.
어찌됐든 오늘 온 목적은 형의 장례식 때문 아니었던가.
아버지야 어찌됐든, 형에게 이런 철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2026.01.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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