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사 가문에서 마력을 못 다루는 공녀 헤카테. 자신을 둘러싼 음모와 진실을 파헤친다!
그 날은 메셀리아 제국을 받치는 기둥 중 하나인 맥베스턴 공작가에서 중요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천족과 마족의 피를 모두 잇고 있다는 이 명문가는 대대로 위대한 마법사를 배출했다.
제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그들의 마력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마법에 있어서는 맥베스턴을 대적할 상대가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들 스스로의 자부심은 강했다.
현 맥베스턴 공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는 정실인 공작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적장녀 헤카테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긴장할 것 없다.”
공작은 거대한 연회장을 높은 단상 위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다가 옆에 있던 어린 딸의 백금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 막 5살이 된 공작의 딸 헤카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한 시선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고,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 알 턱이 없었다.
공작은 그런 딸의 모습이 귀여운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가문의 오랜 역사가 짊어진 무게가 그의 눈빛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기 저 바닥 위에 그려진 마법진 안에 서면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다 될 것이다.”
연회장의 좌우에는 초대받은 손님들이 만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손님들이 좌우로 나뉜 한가운데에는 거대하고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특수한 재료로 그려져 은은하게 빛나는 그것은 한눈에 봐도 헤카테가 설 무대 같았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익숙한 듯이 빛나는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제국의 귀족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가 거쳐야 할 관문.
5살 넘은 아이가 ‘아르카이아 진’ 위에 서서 혈통 속에 녹아 있는 힘을 발현하는 것은 일종의 관례이면서 축제였다.
조그만 헤카테를 바라보던 손님들이 박수를 치자, 공작은 부드러운 손길로 헤카테를 중앙으로 이끌었다.
“겁먹지 말고, 올라 서거라.”
“아빠….”
어린 아이는 좌우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과 그들의 시선에 압도되어 주춤거렸다.
잠시 아버지인 공작을 향해 뒤돌아봤지만 공작은 부드럽지만 단호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어서 앞으로 가라고.
헤카테는 그 눈빛을 보고 어리광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입술을 앙 다물고 느릿느릿 걸어 나갔다.
어느새 반짝이는 마법진 바로 앞에 도착한 헤카테.
조그만 발이 복잡하게 그려진 도형들 위에 놓였다.
“…….”
하지만 헤카테가 마법진 위에 올라선 지 수 초가 지났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 마법진 위에서 생겨날 엄청난 변화를 예감하고 지레 눈을 감고 있었던 이들은 눈을 뜨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앙을 쳐다봤다.
“뭐야, 왜 아무 일도 안 생겨?”
누군가의 중얼거림을 시작으로 장내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벌어져서는 안 될 일, 아니 전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상황이 벌어지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귀족들마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찬 물을 끼얹은 듯이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보다 못한 마법사 하나가 다시 마법진을 점검했다.
“…영애, 다시 올라가보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것을 본 어린 아이의 귀에는 마법사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수많은 시선이 칼날처럼 박히는 듯한 고통에 자세한 몰라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어린 헤카테는 걸어왔던 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웃어주던 아버지가 서 있던 곳.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이라고 믿었다.
“…….”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싸늘한 눈빛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그 순간, 헤카테는 자신이 믿고 있던 세상이 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체 왜? 아빠는 날 저렇게 쳐다보지?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 뒤에는 두려움이 잇따랐다.
“…다시 해볼래.”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다시 고사리 같은 발을 복잡하게 빛나는 도형 안으로 들였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무대’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눈에 띄게 어두워지는 아이의 얼굴과 얼음장 같은 공작의 눈빛은 연회장의 혼란 속에서 더욱 대조되어 보였다.
“쯧쯧, 마법사 가문의 적통이 마력을 못 쓴다니. 이거 원.”
두 번째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확신을 얻었다.
맥베스턴의 명운이 다했다.
마법사 가문에서 아나마-마력이 없는 존재-가 태어났으니 이것은 저주다.
헤카테가 공작의 친딸이 아니라는 말까지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오른쪽의 벽안, 왼쪽의 적안으로 이루어진 선명한 오드아이는 오직 맥베스턴의 혈통에서만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맥베스턴 공작은 자신과 닮은 딸의 오드아이를 말없이 내려다보고는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과 아버지의 가시 돋친 반응을 읽은 헤카테는 어렴풋이 이 마법진에서 뭔가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발로 마법진 이곳저곳을 건드려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린 헤카테가 발아래의 마법진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볼 때였다.
“나… 나 한 번 들어가 볼래!”
조심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도발적인 태도에 사람들의 이목은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향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도발적인 태도에 사람들의 이목은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향했다. 헤카테의 실패를 보며 줄곧 기회를 엿보던 소년은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의 옆에서 살짝 고개를 들었다.
소년이 여자의 옆에서 살짝 고개를 들자, 몇몇 사람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저 오드아이는…?”
“맥베스턴 공작에게 자제가 또 있었던가? …아, 혹시 그 사생아?”
웅성거리는 소리에 소년은 살짝 긴장하면서도 눈은 은근히 맥베스턴 공작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맥베스턴 공작은 소년의 시선에 딱히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헤카테의 의식이 실패하고 나서 공작의 기분은 누가 봐도 최악으로 치달은 상태였다.
이 와중에 자신의 과거 오점인 사생아 따위를 왜 신경 쓰겠는가.
공작의 무반응에 소년을 감싸고 있던 하녀는 소년의 옆구리를 찔렀다.
“에잇.”
어머니에게 무언의 신호를 받은 소년은 결심한 듯 과감하게 발을 굴러 마법진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자 조용히 빛나기만 하던 마법진 안에서 강렬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26.01.16 22:00
2026.01.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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