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인류 최초로 9성 헌터를 달성하고 외신까지 쓰러뜨려 지구의 평화를 가져온 헌터 '강진혁' 그러나 그는 사랑하던 성녀 '엘리나'와 헌터협회의 음모에 빠져 인류의 배신자로 낙인 찍힌다. 공개처형장에서 단두대에 목이 베이는 순간 진혁은 새로운 상태창을 보게 되는데 [전 인류의 증오가 임계치에 도달합니다.] [히든 조건: ‘인류의 배신자’를 달성하셨습니다.] [특성: ‘인류의 개새끼(EX)’가 각성합니다!] [시간선을 역행합니다. 당신의 ‘악업’은 이제 시작입니다.]
“죽여라! 인류의 배신자 강진혁을 죽여라!”
광화문 광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내 귀를 때린다. 단두대 위에 무릎 꿇린 내 귀엔 그 소리가 마치 찬송가처럼 감미롭게 들렸다. 내 팔다리는 이미 마력 억제용 사슬에 단단히 묶여 단두대의 위에 고정된 채였다.
인류 유일의 9성 헌터. 외신의 심장을 으깨고 지구에 평화를 가져온 구원자. 그게 지금까지의 내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내가 죽길 바라고 있다. 내 옆엔 ‘성녀’ 엘리나가 서서 대중을 향해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손에 들린 마이크는 마치 그녀를 드레스를 입은 록스타처럼 보이게 했다.
“진혁 님… 왜 그러셨어요. 힘을 얻기 위해 그 수많은 동료와 헌터들을 학살하시다니… 제가 당신을 믿었는데!”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엘리나의 말에 광화문 광장에 모인 군중들의 외침이 짙어졌다. 이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은 영웅이었던 내가 단두대 위에서 끔찍하게 죽길 바라고 있다. 이 모든 광경은 생방송을 통해 전국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중이니 그 수는 아마 수천만 명까지 늘어나겠지.
아, 전 세계로 송출되면 수십억까지 늘어나려나?
“진혁 님. 마지막 기회입니다. 외신이 죽고 난 뒤 최후의 아티팩트로 얻은 ‘우주의 정수’ 그걸 대체 어디에 빼돌리셨죠?”
가증스러운 년.
그 우주의 정수를 빼돌린 게 바로 너잖아.
그리고 그 우주의 정수를 지키려던 동료와 헌터들을 모조리 죽인 것도.
“대답해 주실 마음이 없으시군요. 우주의 정수가 있다면 당신은 더욱더 강해질 수 있겠죠. 그렇게도 힘이 탐이 나던가요? 하지만 이미 헌터 협회에선 진혁씨가 꾸미는 음모를 다 파악했습니다. 우주의 정수를 빼돌려 새로운 외신이 되겠다는 그 야망 말이죠!”
엘리나의 말에 주변 분위기는 더욱더 험악해진다.
“당신이 벌인 일은 전 지구에 대한 반역입니다. 그러니 우주의 정수를 어디에 숨겼는지 당장 말하세요!”
빼돌린 적이 없으니 대답해줄 것도 없다.
엘리나는 내 앞에 몸을 숙이더니 가냘프고 아름다운 손을 들어 내 얼굴을 피를 닦아주었다.
“억울한가요? 진혁씨?”
엘리나는 마이크를 끄곤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군.
“너무 억울해하지 마요. 그래도 인류의 탑을 한번 찍어봤잖아요? 내가 없었다면 그 자리까지 절대 못 갔을 거예요.”
“언제부터 계획한 거야?”
“처음부터죠.”
역시 처음부터였던가.
“우주의 정수는 저희한테 꼭 필요한 거였어요. 그걸 얻는 열쇠는 바로 당신이었고요. 원하는 걸 얻었으니 위험요소를 없애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헌터 협회도 다 한패고?”
엘리나는 빙긋이 웃으며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정답.’
그래. 그렇겠지.
엘리나 혼자만의 힘으론 나에게 이런 강력한 누명을 씌우지 못했을 거다.
대한민국의 협회 차원에서 나서 우주의 정수를 빼돌리고 날 이 지경으로 몰아간 거겠지.
왜 그 지랄까지 했는지 까진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할 말 있나요? 유언 정도는 하게 해줄게요.”
그 이유까지 말해주진 않을 모양이네.
엘리나의 물음에 난 방송국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유언까지 허가하시다니. 역시 성녀님은 자비로우시네.”
“비꼬셔도 의미 없습니다. 그리고 카메라에 대고 진실이니 뭐니, 해봐야 소용없을 거고요.”
엘리나는 몸을 일으키며 다시 마이크를 켜곤 내 쪽으로 내밀었다.
“자, 뭐라도 말씀 좀 해보시죠! 정수의 행방, 유언, 반성, 후회, 고백, 그 어떤 것이든 좋으니까요.”
“좋아. 그럼 고백 하나만 하자.”
내 말에 주변의 고함이 잦아들었다. 이제 모든 이들이 숨죽여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중이었다.
툇!
나는 피 섞인 침을 그녀의 순백색 드레스에 내뱉었다.
“엘리나. 너 침대에서 쩔더라.”
광장이 더욱더 깊은 정적으로 휩싸였다. 생중계하던 카메라들이 흔들렸다. 엘리나의 얼굴에 순간 당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갔지만 곧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이래서 진혁씨가 마음에 들어요.”
엘리나가 손을 들었다가 아래쪽으로 내리치자 곧장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졌다. 목이 잘리는 감각은 뜻밖에 담백했다. 그나저나 목이 잘려도 의식은 남아있는 거로구나. 뜨거운 피가 솟구치고 시야가 뒤집히는 찰나, 나는 분명 보았다.
내 머리를 집어들고 군중을 향해 내미는 엘리나의 모습을.
‘그래, 엘리나, 이번에는 네가 이겼다. 하지만 만일 하늘이 나에게 기적을 주신다면….’
그때, 내 망막에 기괴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전 인류의 증오가 임계치에 도달합니다.]
[히든 조건: ‘인류의 배신자’를 달성하셨습니다.]
[특성: ‘인류의 개새끼(EX)’가 각성합니다!]
[시간선을 역행합니다. 당신의 ‘악업’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 순간 나의 의식은 어둠의 저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
눈을 떴을 때, 나는 찬란한 조명 아래 서 있었다. 그리고 아까까지만 해도 수만 명의 저주에 시달리던 내 귀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밀려왔다.
“자, 다음은 이번 각성 시험의 최고 유망주! 강진혁 생도입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행사장 안쪽 화려한 무대에 내가 서 있다. 그리고 그 주변을 가득 메운 청중들. 그들은 나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세례를 보내고 있었다.
기억난다. 지금은 10년 전이다. 내가 ‘인류의 영웅’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던 그 운명의 각성식 날. 난 헌터사관학교에서 수석생도이었고 모든 이들의 축복 속에서 각성을 이룰 참이었다. 중요한 행사라는 걸 말해주듯 방송국 카메라가 사방에서 날 찍는 중이다.
2026.01.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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