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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리시안서스🐹
1화무료 1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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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면, 모르는 사람 백 명이 죽는다. 누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시간은 10분. 도움은 없고, 질문은 금지다. 망설인 시간까지 전부 기록된다. 이 소설은 “무슨 선택이 옳은가”를 묻지 않는다. 당신이라면 몇 초 만에 버튼을 누를지를 묻는다. 이건 이야기 아니다. 당신의 선택을 보기 위한 장치다.

공모전 참여작#스릴러#현대#추리/미스터리#드라마

ㅈ됐다.


방금, 사람들이 죽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서였는지는 모르겠고, 몇 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소리가 내 선택의 결과 예시였다는 점이다.

실제가 아니라 예시라는 말이,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머리에 남았다. 예시는 반복할 수 있다. 다시 들을 수 있다.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내가 원한다면.


나는 평범한 인간이다.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고, 평범한 동네에서 자랐다. 성적은 늘 중간쯤이었고, 남들 다 가는 대학을 겨우 졸업했다.

회사에 들어갔지만 인간관계 하나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나왔다. 지금은 취업 준비생이라는 말로 시간을 숨기며

산다. 하루 대부분을 채용 공고와 자기소개서로 보내고, 밤이 되면 ‘그래도 아직은’ 같은 문장을 머릿속에서 굴리다 잠든다. 뉴스에 나올 이유도, 누군가 기억해줄 이유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이런 판결이 왜 하필 나에게 내려졌는지.


눈을 뜨자 방은 검었다.


빛이 없는 게 아니라, 빛을 거부하는 어둠이었다. 공간의 끝이 느껴지지 않았다. 벽인지, 천장인지, 바닥인지 구분이 흐릿했다. 공기에는 비릿한 철분 냄새가 섞여 있었다. 오래된 쇠가 젖은 채 방치됐을 때 나는 냄새.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그 냄새가 폐 안쪽에 들러붙었다.


몸을 움직여봤다.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더 불안했다. 묶여 있지 않다는 건, 여기서 벌어질 일들이 마치 영화처럼 누군가에게 기록된다는 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감각이 논리보다 먼저 결론을 내렸다.

도망칠 수는 없다.


“의식 확인.”


사람 흉내를 낸 기계음이 울렸다. 높낮이도, 감정도 없었다. 질문처럼 들렸지만 대답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미 확인은 끝났다는 투였다.


“시각 출력 개시.”


사방이 켜졌다.


주변의 검은색은 벽이 아니라 꺼진 화면이었다. 검은 면이 갈라지듯 열리며 수십 개의 일상이 동시에 재생됐다.

웃는 커플,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부부,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을 먹는 남자, 버스를 기다리며 하품하는 여자,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노인.


모두 살아 있었다.

너무 평범하게.


“관측 대상 수, 백명.”


기계음이 말했다.


백 명.

숫자로 들으면 단순한 단어였지만, 화면으로 보니 무게가 달랐다. 백 개의 시선, 백 개의 호흡, 백 개의 일상.


순간 눈 앞에 버튼이 나타났다.


금속 버튼 하나.

표식도, 설명도 없었다. 손바닥이 자연스럽게 얹힐 높이. 누르라고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마치 내가 오기 전부터, 아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처럼.


“누르면, 관측 대상 전원 사망.”

기계음이 말했다.

“누르지 않으면, 피실험자 사망.”


피실험자.

분명히 나를 뜻하는 단어였다.


혼란스러웠다.

사망?

화면 속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 죽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죄도 없고, 맥락도 없고,

서사도 없는 삶들. 선택을 합리화할 틈이라곤 존재하지않는 '무해한 사람들'의 모습.



숫자가 떠올랐다.


[00:10:00]


이미 카운트다운은 시작돼 있었다.


“선택 철회 불가.”

“선택 지연 기록.”

“미선택 역시 선택으로 기록.”


짧은 문장들이 연속으로 떨어졌다. 도망칠 수 있는 구멍을 하나씩 막는 문장들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부터 차단하는 방식.


그리고 다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아아악—!”


이번엔 짧았다.

한 사람의 비명. 시작과 끝이 너무 분명해서, 편집된 소리처럼 느껴졌다.


“동일 조건에서 발생한 이전 결과 예시.”


기계음이 덧붙였다.


이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누군가는 이미 이 버튼 앞에 섰고, 누군가는 이미 선택을 했다. 그 결과가 파일처럼 남아 있었다. 비명은 기록이었고, 나는 그 기록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다. 영웅도, 악당도 아니다.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사명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각오도 없다. 오늘을 넘기고 내일을 버티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선택은….


살아남거나,

살아남기 위해 손을 더럽히는 것뿐이다.


카운트다운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게 더 두려웠다. 숫자는 조용히 줄어들었고, 방 안에는 내 숨소리만 남았다. 숨이 가빠질수록 생각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백 명이라는 숫자가, 마치 면접장에서 줄지어 앉은 지원자 수처럼 느껴졌다. 합격과 탈락. 생존과 사망. 구조는 익숙했고, 결과만 낯설었다.


[00:08:41]


화면 속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움직이고 있었다.


커플은 꽃다발을 고쳐 쥐었고, 아이는 엄마 손을 잡은 채 바닥의 선을 밟았다. 중년 부부는 강아지가 멈출 때마다

함께 멈췄다. 누군가는 컵라면 국물을 마셨고, 누군가는 하품을 했다.

셔츠 단추를 잠그는 손, 신발끈을 묶는 손, 시계를 확인하는 손.


너무 평온해서,

이 장면이 죽음 직전이라는 사실 자체가 모욕처럼 느껴졌다.


“선택은 철회할 수 없습니다.”


기계음이 말했다.


위협도 재촉도 아니었다. 단순한 사실 전달. 마치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고, 나는 그 과정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라는 태도였다.


[00:07:12]


나는 화면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리면 쉬워질 것 같았다. 쉬워지면 버튼을 누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화면을 봤다.

봐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기도하듯이 명령하며.


저 아이는 몇 살쯤일까.

저 커플은 오늘 무슨 기념일일까.

저 노인은 집에 돌아가면 누굴 만날까.


방금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화면이 미세하게 변했다.

내 시선이 오래 머문 화면만 아주 조금 커졌다.


“관측 중.”


기계음이 말했다.


그 말을 듣자, 확실해졌다.

이 방에서 관측되고 있는 건 저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였다.


[00:06:12]


순간, 화면이 갑자기 꺼졌다.


모든 장면이 동시에 암전되며, 방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카운트다운 숫자만 허공에 남아 있었다.

멈추지는 않았다. 줄어드는 속도도 같았다. 다만, 화면이 사라진 상태에서 흐르는 시간은 훨씬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2차 관측 국면을 개시합니다.”


기계음이 말했다.


사방이 다시 켜졌을 때, 화면의 구성이 바뀌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보이던 일상 장면들이 아니었다. 색이 빠졌고, 해상도도 떨어졌다. 노이즈가 낀 영상. 누가 봐도 '기록 된 영상'이었다.


첫 화면이 재생됐다.


좁은 방.  

지금 내가 있는 이곳과 구조가 비슷했다. 벽, 바닥, 버튼. 그리고 화면 앞에 서 있는 남자 하나.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였다. 얼굴은 핼쑥했고, 눈동자가 과도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도 버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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