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란스러운 채로 살아가던 '이다선'과 상층에서 쫓겨난 연구원 '태그', 그리고 인공 태양을 위한 숨겨진 실험체 '세웅'의 쌍방 구원서사물! 2xxx년, 정체불명의 소행성 일명 ‘에오스’가 태양과 충돌했다. 그로 인해 태양의 표면에는 거대한 흑점이 생겼으며, 에너지 출력은 극심하게 불안정해져, 인류는 결국 인공 태양 아래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인공 태양의 빛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았다. 에너지 출력 불안정으로 정전이 오면, 가장 먼저 버려지는 곳은 하층 구역. 몇 분의 암흑이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회. 이다선은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는 27살의 여성이다. 방황하다 도착한 호수공원에서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인공 태양의 경보.. 경보에 급하게 집으로 향하던 다선의 눈에 들어온 건 골목에 쓰러져있는 상층부 출신의 '태그'. 다선은 고민하다 태그를 자신의 집으로 함께 데려가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상층 구역의 고위 연구원이던 태그는 다선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바로 인공태양을 유지하기 위한 실험체가 있다는 것. 태그는 실험체로 쓰이고 있는 아이를 구해야 한다면서, 다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인공 태양에 숨겨져 있던 비밀, 상층과 하층으로 나뉜 계급사회의 균열, 그리고 외부에 드러나선 안될 ‘실험체’의 존재. 빛이 꺼질수록 진실은 선명해진다! 과연 태양이 사라져 암흑만 남은 이 곳에서, 태그와 다선은 실험체 '세웅'을 되찾고 함께 사회의 현실을 타파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이미 얼어붙어버린 물고기들이 더 이상 익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한, 회색노트의 기록.
대학병원에서 뛰쳐나온 여자는 생각이 많아보이는듯한 표정이었다.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밝은 베이지색 머리에 비해 조금 어두운 눈동자를 가진 여자.
그 약간의 온도 차는 그녀를 더 외로워 보이게 했다.
“이다선! 다선아, 어디가!”
갑작스레 뒤에서 중년 여성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다선’. 그 이름이 병원 출입구를 가로질러 날아왔다.
하지만 다선은 그 소리를 듣고도 뒤돌아보기는 커녕, 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1월의 차디찬 바람은 다선의 귓볼을 발갛게 달구고는 그 옷길을 잡아끌었다.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다.
제각기 자신들의 희망에 전념해있는, 그리하여 어느만큼만은 그 꿈을 이룬 사람들처럼 즐거워 보였다.
그래서 그 무리들 속 그녀가 들어갈 공간은 있어보이지 않았다.
비집고 들어갈 생각도 없겠지만서도..
그만큼 사람들은 그들만의 은밀하고도 굳건한 결속을 다지며 거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다선은 그것에 그리 마음쓰지 않기로 한 듯 했다.
그렇게 마냥 걸어가면서, 다선은 며칠 전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지난주 입원해 추가 검사를 받고 퇴원한 아버지를 이틀간 지켜봤던 그날.
하루 종일 쉴틈 없이 뱉어내는 기침소리를 들으며, 다선은 결과가 좋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직검사 결과가 나온 어제, 의사는 기어코 그녀의 아버지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에서 6개월.
다선과 그 가족은 일단 연명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다선은 무서웠다.
지금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될 자신의 암울한 미래가 그려졌기에..
사람들 가득한 거리를 걷던 그녀는 이따금씩 멈춰서며 이후의 일들을 조금씩 생각해보는듯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해져 정처없이 걷기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그녀 속 불안함이라는 괴물은 감당할 수 없을만큼 더 커지기만 했다.
다선은 애써 그 괴물을 무시하고 이런저런 달갑지 않은 상념들을 하나 둘 밀어내었다.
그것들을 전부 밀어냈을 때, 그녀는 어느새 인공 태양 연구소에 이르는 횡단보도 앞 호수공원에 다다랐다.
호수공원에는 반 정도 얼어 살얼음이 돋은 호수만이 자리를 지키듯 있었고, 다선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호수가 밑바닥까지 바짝 얼어버리면 물고기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선은 몇년전쯤 호수 수면 위로 떠올라 동사해있던 물고기들을 생각해냈다.
우우우우우웅.
갑자기 다선의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들렸다.
무음으로 해두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여자는 휴대폰을 꺼내 방금 수신된 문자를 확인했다.
역시나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였다.
- 왜 갑자기 나간거야? 휴..
- 아빠가 항암치료를 거부하셔, 네가 얘기를 좀 해보면 좋겠다.
- 방금도 의사가 약을 투여하러 왔는데, 글쎄 안맞겠다 하더니 퇴원한다고 통보를 하셔서 말야.
“항암치료, 퇴원...내가 얘기한다고 달라지나?”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최대한 맥락을 파악하려는듯, 그녀는 단어를 되뇌며 중얼거렸다.
- (사진)
연이어 문자와 함께 온 사진에는 손에 링거를 꽂은 아버지의 모습이 있었다.
눈가주름을 접으며 웃는 모습과 시간을 보니 어제인 듯 싶었다.
갑자기 이 사진을 왜 보낸건지 궁금함도 잠시, 링거가 꽂힌 아버지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잔주름 가득한 손을 보면서, 다선은 자신의 검지 손가락이 휘어있는 게 결국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생각이 깊어지려는 순간, 진동음이 또 다시 울렸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이번엔 휴대폰에서 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더 길고, 크고...뼈 속까지 울리는 듯한 소리.
그리고 울리던 진동음은 곧 커다란 경보음으로 바뀌었다.
그 커다란 굉음은 마치 온 지구를 흔드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예고엔 없던 경보음이 울리자, 공원에 흩어져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흐트러졌다.
경보가 울리자마자 미친듯 뛰어다니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
누추한 몰골로 길거리에 나앉아 울기만 하는 엄마와 딸.
상층 구역에 있는 집으로 얼른 돌아가자며 유모차를 끌고 계단을 오르는 여자.
다선은 그런 사람들을 관찰이라도 하듯 찬찬히 뜯어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사람들을 보다가, 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인공 태양, 아우나가 있는 방향이었다.
아우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일정한 밝기로 세상을 비추고 있었지만,
이렇게 경보가 울리는 순간만큼은 그 빛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그 순간, 도시의 모든 불이 완전히 꺼졌다.
온전한 암전이었다.
도시에 있던 사람들의 열기도, 태양의 온기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채 고요하게 세상은 겨우 호흡만 하는 듯 했다.
‘..집에 가자.’
그제서야 다선은 하층 구역에 위치한 본인의 작은 집으로 향했다.
인공태양이 꺼진 지금, 이렇게 밖에 나와있는 것보다는 집이 더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집이 없는 탓에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얼어 죽어가는 몇몇 사람들처럼 되고 싶진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호수공원을 벗어나, 하층 구역으로 이어지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상층으로 향하는 계단과 달리, 이 부근은 늘 그렇듯 사람이 적었다.
정전 이후엔 특히, 더더욱 그랬다.
바닥엔 깨진 병 조각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웅덩이를 이루어 뒤섞여 있었고,
그 사이를 밟을 때마다 미끈거리고 축축한 소리가 났다.
얼굴을 찌푸리며 최대한 깨끗한 바닥만을 골라 까치발을 들고 걸어가던 그 순간, 다선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쓸만한 것도 얻었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가벼운 웃음이 섞인 얇은 목소리의 남자에 호응하듯, 뒤이어 칭얼거리는 여자의 쨍한 목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그래, 계속 밖에 있다간 얼어 죽겠다고. 빨리 들어가면 안돼? 경보 또 울리면 어떡해..”
“기다려봐, 마지막으로 이것만.”
말이 끝나자마자,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숨이 막힌 듯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커흑..!”
“하ㅡ 근데 새끼 이거, 겉모습만 반지르르 하고 막상 별거 없네.”
2026.01.2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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