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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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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대한민국 재계를 양분하던 두 그룹의 결합. 세상은 그것을 ‘세기의 결혼’이라며 떠들썩하게 축복했다. 하지만 그 화려했던 팡파르의 피날레가 가정법원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감정 따위 배제하고, 철저하게 파트너로서만 지내면 될일이라고. 사랑이 없으니 상처받을 일도 없을 것이고, 기대가 없으니 실망할 일도 없을 거라고. 그저 서로의 이해득실만 맞추면 되는, 아주 깔끔하고 효율적인 비즈니스가 될 거라고.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부부 관계는 쿨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완충재 하나 없이 서로의 날 선 자아를 부딪쳐야 하는 것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그들은 서로를 이기려 들었고 틈만 나면 물어뜯었다. 무관심은 평화가 아니라 방임이었고, 냉철함은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파는 흉기가 되었다. 윤조는 핸드백을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가방 안쪽 깊숙한 곳, 구기듯 쑤셔 넣은 서류 봉투가 손끝에 걸렸다. [이혼조정 성립] “......채윤조.” “…….” 그가 최대한 감정을 죽인 채 입을 열었다. “축하해.” “…….” “결국 네가 원하던 대로 됐네.”

공모전 참여작#로맨스#현대#정략결혼#경영물#달달물#경쟁구도#사업가/경영인#능력녀#다정남#능력남#재벌물

초가을의 날씨는 아직 더웠지만, 차 안에는 시린 냉기만이 감돌았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각각 이로의 비서와 윤조의 비서가 탑승해 있었다.

그들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뒷좌석에서 오가는 살벌한 대화를 토씨 하나 놓지지 않으려는 듯 태블릿을 확인하며 메모를 남기고 있었다.

 

“조지아 배터리공장, 우리가 인수해. 가격은 풋옵션 행사 가격에 10프로 더 얹어 줄게.”

 

이로는 태블릿 PC 화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건조하게 말했다.

 

“10프로?”

 

이로와 30센티미터 남짓 떨어져 앉은 윤조의 입매가 비릿하게 비틀렸다.

 

“정이로.그 공장, 우리 쪽 배터리 셀 기술 빠지면 그냥 껍데기야. 에너지 밀도도 안 나오고 수율도 엉망인데, 그걸 가져가서 뭐 하게? 물류 창고로 쓰게?”

 

“비꼬지 마. 우리한텐 당장 생산 거점이 필요한 거야.”

 

“그래서 뭐. 공과 사는 구분하라고?”

 

“그래. 그러려고 우리가 지금 같은 차에 있는 거잖아.”

 

방금 전까지 법정 복도에서 '남편'이었고, 지금은 '전남편'이 된 정이로는 감정 한톨 없는 사람처럼 태연했다. 그 태연함이 윤조의 신경을 긁었다. 윤조는 다리를 꼬며 가죽 시트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정말 결혼 생활 내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말인데, 이혼한 날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네. 내가.”

 

그녀가 자조 섞인 한숨을 뱉었다.

 

2년 전, 대한민국 재계를 양분하던 두 그룹의 결합.

세상은 그것을 ‘세기의 결혼’이라며 떠들썩하게 축복했다. 하지만 그 화려했던 팡파르의 피날레가 가정법원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감정 따위 배제하고, 철저하게 파트너로서만 지내면 될일이라고.

사랑이 없으니 상처받을 일도 없을 것이고, 기대가 없으니 실망할 일도 없을 거라고.

그저 서로의 이해득실만 맞추면 되는, 아주 깔끔하고 효율적인 비즈니스가 될 거라고.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부부 관계는 쿨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완충재 하나 없이 서로의 날 선 자아를 부딪쳐야 하는 것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그들은 서로를 이기려 들었고 틈만 나면 물어뜯었다.

무관심은 평화가 아니라 방임이었고, 냉철함은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파는 흉기가 되었다.

 

윤조는 핸드백을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가방 안쪽 깊숙한 곳, 구기듯 쑤셔 넣은 서류 봉투가 손끝에 걸렸다.

 

[조정 성립]

 

서류 상단에 박혀 있을, 건조하기 짝이 없는 네 글자. 그토록 바라던 이혼이었다.

그런데, 왜 승리의 쾌감 대신 입 안 가득 씁쓸한 모래알만 씹히는 걸까.

 

윤조는 가방에서 이혼서류 대신 JV지분 매각 보고서를 꺼내들었다.

 

“JV 지분, 제3자 매각 허용해 줘. 너희한테 파느니, 차라리 경쟁사한테 넘기는 게 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아서.”

 

“채윤조.”

 

무심하던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날 선 감정이 실렸다.

 

“마지막 동행이잖아. 끝까지 꼭 이래야겠어?”

 

윤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버렸다. 강변북로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어지러웠다. 한강 수면이 잿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합병.”

 

윤조가 입술을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JV, 말은 그럴듯했다. 유성과 천봉이 자동차 배터리 사업부만 떼어내 만든, 생존을 위한 결단이자 미래를 위한 도약이었다.

하지만 그 속사정은 시궁창이었다.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며 배터리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그룹의 심장이자 서로의 목줄이 되었다.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의 패권을 잡기 위해 두 그룹은 제 살을 깎아 먹는 출혈 수주도 마다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1년 뒤, 나란히 사상 최악의 영업 손실과 주가 폭락. 이대로 가다간 어부지리를 노리던 업계 3위에게 시장을 통째로 헌납하고 공멸할 판이었다.

 

결국, 자존심을 꺾은 양가의 선대 회장들이 마주 앉았다.

 

‘우리 선에서 끝내도록 합시다.’

 

그들의 조건은 명확했다.

배터리 사업은 하나로 합치되, 서로의 뒤통수를 치지 못하도록 가장 확실한 ‘인질’을 교환하는 것. 그렇게 유성의 외동딸 채윤조와 천봉의 외아들 정이로의 ‘정략결혼’이 결정되었다.

 

비극은 거기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라이벌 기업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후손들답게,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지독한 천적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윤조에게 정이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자 평생의 경쟁자였다.

 

“……지독한 놈.”

 

윤조는 무릎 위 주먹을 꽉 쥐었다. 단 한 번도 그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만년 2인자였다. 완벽주의자에 고집불통인 윤조가 코피를 쏟아가며 밤을 새워 노력해도, 정이로는 늘 한 발 앞서 있었다. 그것도 아주 여유롭게.

 

그에게는 숨 쉬는 것처럼 쉬운 일들이, 윤조에게는 뼈를 깎는 고통이어야 했다. 그것은 ‘재능’이라는 이름의 폭력이었다.

 

치열하게 준비한 경쟁 PT에서 져서 분해하고 있을 때, 정이로는 항상 나른한 얼굴로 다가와

‘고생했다. 채윤조.’ 그 한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등을 돌렸다.

 

그런 놈과 한 이불을 덮고 살 생각을 했다니.

 

“그때 그냥 식장에서 도망쳤어야 했는데.”

 

윤조가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리자 또다시 시작될 레퍼토리를 아는 이로는 피곤한 듯 태블릿 전원을 끄고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또 그 소리. 신부 먼저 입장하고 싶다고 집안 뒤집어엎은 거?”

 

“그게 다 너 때문이잖아!”

 

윤조가 빽 소리를 질렀다. 그래, 모든 게 저 인간 때문이었다.

사랑 없는 결혼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평생을 열등감 속에 살게 한 남자가.

하필이면 그날, 턱시도를 입은 그 순간만큼은 눈부시게 근사해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하.”

 

이로는 짧은 탄식을 삼켰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다 내 탓이라는 건지.

 

‘그래, 2년 내내 이랬지.’

 

숨만 쉬어도 으르렁대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나라고 할 말이 없는 줄 아나.

하지만 이로는 허벅지 위에서 주먹을 꽉 쥐는 것으로 참아냈다.

 

‘강화도 제2공장 부지 시찰.’

 

부부로서 동행하는 마지막 공식 일정. 이것만 끝나면 이제 정말 남남이다. 더는 사적인 감정으로 얼굴 붉힐 일도, 이렇게 뒷좌석에서 숨 막히는 공기를 공유할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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