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까만 세상 속에서 진짜를 찾을 수 있을까. 세상은 사실 까만 어둠 뿐이지만, 그래도 그 세상에 존재하는 게 너 그리고 나라면 나는 또 살아야겠지
언젠가 이어질 우리였다.
비록 나의 세상은 무너지고 캄캄한 어둠뿐이었어도, 이 사실만은 분명했다. 나는 너를 알고 너도 나를 알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린 곧 만난다.
달력 속 빼곡히 적힌 X,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던 수많은 그 마음의 획들이 끝나는 날.
12월 30일. 바로 오늘이다. 더 늦어지면 안 되었다. 그럼 내가 이 세상에 미련을 가질 이유가 만들어질 수도 있으니까. 모든 것은 완벽으로부터 한 칸 물러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빨강, 분홍, 보라.. 저마다 자신들의 마음으로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마음의 주파수가 색으로 드러나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알록달록한 빛을 흘리며 ‘사랑’인지 뭔지, 그런 감정에 빠져 있었다.
본인들 마음 하나 숨길 수 없는 꼴이라니.. 어리석다.
얼마 안 가 헤어질 커플도 보인다. 한쪽의 마음이 이미 초록이다. 곧 파랗게 되겠지. 꺼져가는 상대의 마음을 볼 수 있는데, 끝이 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하고 싶은지.
물론 나는, 오래전부터 검은색이다.
빛이 들어올 공간은 없다, 내게.
그런데 아까부터 어디서 자꾸 밝은 기운이 느껴진다. 기분 나쁘게.. 내 X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분명 나와 같은 색일 것이다. 본 적은 없지만 그는 분명.. 그래. 뒤죽박죽, 엉켜버린 비참한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반드시, 검은색일거야. 나와 같은 색을 만날 수 있다니.. 이제 드디어.
“..미즈, 씨?”
그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내 모든 예상을 뒤집어 엎고는 잔잔하던 물에 침범해버린 파도.
.. 분명 나와 색이 같아야 하는데. 나의 X여야 하는데.
그의 색은 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새하얗고 따뜻한 빛으로 내 어깨를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 힘겹게 물었다.
“..당신이, 미유 씨?”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은 절망이었다. 내 모든 계획이 어긋나버리는 첫 신호였다.
*
그것은 사실 빛의 색이었다. 모든 다른 이의 색을 흡수해 본인이 하얀색이 되어버린 사람. 그는 없었다, 거기에. 무언지 모를 탈력감이 들었다. 나의 분노는 내 것인데, 그 사람에게는 자신의 감정이 없었다. 모두 타인의 슬픔이었다. 의사로서 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본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했다.
죽어 마땅하다고, 더 이상 끌지 않고 편해지고 싶다고 했다. 눈물을 흘린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무엇을 담을 여유가 없어 흘러넘친 건가.
그렇게 모두 쏟아내 보려, 노력하는 걸까.
사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정작 그 사람들은, 행복하게 간 걸 텐데. 오히려 좋은 건데. 그게 왜 미안할 일인지, 죽음을 위한 이유는 그딴 거슬리는 것이어서는 안 되는데. 오직 나를 위한 죽음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사람에게 화가 난 것이다. 그러므로 너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은 나와 색이 같지 않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미유는 다른 사람의 색을 인지할 수 없는 병을 갖고 있어 그 사실을 몰랐다.
“..왜? 왜 죽일 수 없는데? 너는 날 이해하잖아, 우리.. 제발 자유로워지자. 응? 부탁이야.”
2026.01.31 23:59
올라온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