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지우의 결혼식 날. 서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식장에 들어선다. 완벽한 수트핏, 가려지지 않는 수려한 이목구비. 하객들의 시선이 저절로 그에게 쏠린다. 한 발 한 발 신부대기실이 가까워질수록 선글라스 너머 서준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간다. 카메라 셔터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는 축하 인사. 하얀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너. 서준은 결국 뒤돌아 걸음을 옮긴다. 차로 돌아와 신경질적으로 벗은 선글라스는 조수석으로 나뒹굴고 룸미러에 비친 그의 눈은 붉게 젖어 있다. ‘되찾아야겠어. 너를.’ chjn0120@naver.com
하얀 봉투를 서준의 앞에 쓱 내밀며 지우는 수줍은 듯 웃었다.
서준은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살짝 미간을 좁혔다.
봉투를 집어 들고서야 알았다. 청첩장이라는 것을.
착잡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봉투를 열어 청첩장을 꺼냈다.
얼씨구? 사진까지 박아 넣으셨네.
빨간색 하트 안에 환하게 웃고 있는 지우의 사진을 보니 비틀린 웃음이 새어나왔다.
김지우.
네가 결국 그 남자랑 결혼을 하겠다고.
기어이 나를 완전히 떠나겠다고.
서준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눌러 담고 있었다.
"축하해."
전혀 축하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무심히 대답하고는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고마워.."
또 그 웃음.
서준은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상체를 숙여 지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사람이 잘해줘?"
"응. 잘해줘."
"나보다 더?"
그의 말에 지우는 하마터면 입에 머금고 있는 커피를 뿜을 뻔했다.
그녀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서준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
"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커피잔을 내려놓는 지우의 손이 그대로 잠시 멈췄다.
조용히 고개를 들어 서준을 바라보았다.
커피숍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는 내내 팔짱을 끼고 있었다.
뭐가 또 그렇게 신경질이 나셨을까.
"고마워. 든든하다."
"빈말 아니야. 연락해."
***
바래다 주겠다는 서준을 겨우 달래서 보낸 뒤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몇 분 후 버스가 도착했고, 맨 끝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흘러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겨우 도망쳤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서준에게 결혼하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청첩장은 더더욱 주고 싶지 않았고..
회사 경영엔 관심 없다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대표이사로 부임한 건지.
먹고사는 게 걱정이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그만뒀을 테지만 그럴 수 없었다.
처음부터 다른 회사에 입사를 했어야 했는데..
갑자기 몰려오는 두통에 엄지손가락으로 오른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숨길 수 없었다. 어차피 회사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다 돌려야 할 테니.
그럴 바에 먼저 선수 치는 편이 나을 듯했다.
"하아.."
지잉지잉.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11자리 번호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잊은 줄 알았는데 번호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여보세요."
"나야."
이서준.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그게 궁금해?"
아니. 너라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겠지.
"무슨 일로 전화했어?"
"생각해 보니까 아까 대답을 못 들은 거 같아서."
"무슨 대답?"
"내 도움 필요하면. 혹시라도 그 사람이 널 힘들게 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빈말 아니야."
"...."
"대답."
"그래. 알겠어."
"조심해서 들어가."
"응."
휴대폰 번호를 알리고 싶지 않아 사내 메신저로 약속을 잡았던 건데 내가 바보였구나.
허탈감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다시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
집으로 돌아온 서준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김지우.
등잔밑이 어둡다고 아버지 회사에 있는 것도 모르고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데.
그리고 뭐? 결혼? 참내 어이가 없어서..
서준은 소파 한켠에 던져진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 끝에 낮은 음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대표님."
"운영팀 박주호 대리,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 주세요. 최대한 빨리."
10년 전.
"우아~ 우아~ 이서주운~ 한잔 더~"
"하아... 너 자꾸 그렇게 움직이면 확 버리고 간다."
비틀비틀 겨우 걷고 있는 주제에 뭘 계속 한잔 더 한잔 더를 외치는지.
대체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서준은 혹여나 지우가 넘어질까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속이 훤히 보이는 능글맞은 선배새끼가 지우 옆에 딱 붙어서 수작을 부리길래
순간 화가 나서 데리고 나오긴 했는데. 집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야. 김지우. 집주소 뭐야? 집에 가야지."
"우아~ 우아~"
아까부터 저 이상한 노래는 왜 부르는 거야..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이상한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지우가 못내 짜증이 나면서도
귀여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지우. 이상한 노래 부르지 말고 집주소. 집주소 뭐야."
"우아~ 우아~ ....읍... 나 속이... 토...토할 거 같아.."
"뭐? 잠깐만!! 잠......"
우웨에에엑ㅡ
아, 이런 클리셰 진짜 싫은데.
왜 꼭 여자들은 남자 가슴팍에 오바이트를 하는 거야.
서준은 기가 막힌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김비서는 엉망이 된 서준을 보고 한 번, 그에게 기대 잠든 지우를 보고 두 번 놀랐다.
"김비서님. 죄송합니다.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요."
"괜찮습니다. 일단.. 집으로 모실까요?"
2026.05.30 18:14
2026.05.23 01:26
2026.05.20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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