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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숫물 포개어 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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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묵
56화무료 56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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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 제이 계파의 아들 달아준은 후계 다툼으로 제일 계파의 딸 야승황에게 혼인을 제안한다. 큰 기대는 없었으나 이게 웬걸? 모두의 예상을 깨고 혼인은 성사된다. 급작스럽게 진행된 만큼 어색한 기류가 흐르리라 예상했는데- “당신은 나를 풍요롭게 해요.” “마치 내가 당신을 사랑하도록 태어난 사람 같아요.” 다가가고 싶은 남자,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여자. 두 사람 사이에서 낙숫물 어우러지는 동양풍 로맨스 판타지. 작중 배경은 도술을 부릴 수 있는 ‘도사’와 그러지 못한 ‘속인’으로 나뉜 세상. 도사는 ‘계파’라는 단체를 구성하여 속인을 요괴와 이상 현상으로부터 보호하고 통치한다. 을미서(鳦亹栖): 배경이 되는 나라. 마흔아홉 개의 계파가 나뉘어 각 지역을 ‘직할지’라는 이름 아래 통치한다. 각 계파는 도사가 운영한다. 도사(道士)와 속인(俗人): 도력을 타고나 도술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을 도사, 그러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을 속인으로 나뉜다. 도사와 속인이라는 두 계층으로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나뉘며 도사 사이에서도 경지에 따라 선인(仙人), 도인(道人: 상위·중위·초위로 세분), 수행자로 나뉜다. 한 사람이 도사가 되느냐 속인이 되느냐는 특수 미토콘드리아 DNA 발현 여부로 결정된다. 기옥(氣玉): 도력의 원천. 도사에게 사실상 두 번째 심장으로 취급된다. 기옥이 손상되거나 제거된 도사는 더 이상 도술을 부리지 못한다. 기문(氣文): 도력 종류에 따라 도사의 좌측 체표에 나타나는 문양. 불 성향 도사는 불꽃 형상, 나무 성향 도사는 넝쿨 형상을 띄는 등이다. 혈치술(血治術): 어버이와 자식, 또는 형제간에만 사용할 수 있는 치유 도술. 통도지술(通道之術): 두 도사가 떼어낸 기운을 합하고 특수한 조치를 가하여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도술.


천여 년 전 을미서(鳦亹栖)의 마지막 단문(檀文)이 숨을 거두었다. 자리를 이어받을 딸도, 누이도 하나 없는 채로.

암군이 죽었음을 안도하기도 전에 혼란부터 번졌다. 암군과 조금이라도 혈통을 공유하는 많은 이가 정통임을 주장했다.

군대는 기강이 해이해지고 관사는 몫을 다하지 않았다. 토호는 성문을 닫아걸며 좁은 땅에서 주인을 참칭했다. 나라의 역량이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창칼이 녹스니 요괴가 들끓었으며 관료가 팔다리를 잃으니 재해는 잠들지 않았다.

본래 을미서는 단문 혈족과 여섯 대가문에서 배출한 도사(道士)가 만민을 다스렸다. 하나 분란과 부정이 겹치며 그들은 통치력을 상실했고 사실상 독립되어 활동하는 지방을 통제하지도 못했다.

시대가 부름에 따라 권세를 피하여 은거하던 도사들이 눈을 떴다. 홀로 초연하느니 작금에 닥친 어지러움을 바로잡고자.

일어나는 호걸 가운데 야세효(夜世曉), 달평라(達評灕), 정락(淨烙)은 ‘계파’라는 새로운 체계를 구상했다. 유리걸식하는 신세로 내몰린 속인(俗人)을 보며 뿌리 잃고 실바람에도 넘어지는 나무를 보다 못한 안타까움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토호의 땅에 들지 못하거나 그 탐욕을 못 이겨 달아난 이들은 기꺼이 계파의 품에 안겼다. 그곳은 요괴가 발 들이지 못하고 재해가 굴복당하는 그 시대의 낙토였다.

신이한 도술은 숯덩이에서 싹을 돋우고 메마른 흙에 단비를 적셨다. 떨고 주리던 속인은 계파가 보호하는 아래 안정을 찾아갔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뜻에 함께하려는 도사가 소식을 따라 모여들었다. 험준한 산에, 깊은 동굴에 은거하던 이들이 더는 당세를 뒤로하지 않기로 결의한 결과였다.

그들 가운데 우두머리로 나선 이는 야세효였다.

“우리는 타고난 자로서 그러지 못한 자를 지키고 돌볼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도사가 듣고는 옳다고 여겼다.

야세효, 달평라, 정락은 각기 무리를 나누어 맹주가 되고 최초의 세 계파를 결성하였다. 곧 야세효의 야명세확정(夜明世擴庭), 달평라의 천통지달정(天通地達庭), 정락의 혼징정궁(魂澄淨宮)이었다.

뒤늦게나마 함께하고자 하는 이가 동조하며, 혹은 이미 함께한 이 가운데 자기 무리를 따로 얻은 도사가 저만의 뜻을 펼치며 계파는 점점 늘어 갔다.

일어나고 무너지고, 뱉어내고 잡아먹으며 진통을 겪던 계파는 시대가 요구하여 일어났던 만큼 시대가 필요로 함에 따라 확고해졌다.

옛 군대와 낡은 관사와 묵은 혈통이 저를 구습이노라고 인정할 때까지.

그 어떤 도사와 속인도 계파가 존재치 않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할 때까지.

마침내 변혁 또한 전통으로 차림을 바꾸어 입고 해와 달처럼 영속하리라는 기묘한 확신이 세상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

 

달아준(達峨俊)은 달평라로부터 그의 어머니에 이르는 맹주 스물여섯 사람을 헤아리려다 그만두었다. 자랑스러운 선조는 오래전에 외웠거니와 생각이 번잡스러울 때 주의를 돌리기는 좋아도 실상은 결정 내릴 순간을 미루기만 했으므로.

조금 전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단 한 번도 서로 부자간이라고 인정한 적 없는 새아버지가 아니라 진정으로 피를 물려준 아버지에게서 흘러나오던 음성이 맴돌았다.

‘혼인 생각은 없더냐?’

예사로운 가정의 예사로운 아버지가 예사로운 아들에게 하기 적절한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들의 가정도, 아버지도, 아들도 예사롭지 않다는 점 하나였을 뿐.

갇혀 지낸 지 스무 해가 넘었으나 그의 아버지 금낭원은 굳건한 기세를 앞세우는 방법마저 잊지 않았다. 무력한 처지에서도 분노를 불태울 때와 아들을 앞에 둘 때만은-그 둘을 동시에 한다고 느낄 때도 있다지만 기분 탓으로 몰고 싶었다-전성기로 돌아가는 것처럼.

금낭원이 제 목걸이에 꿰인 유리구슬을 집게손가락으로 돌리며 말했다.

‘내가 여기서 한가로이 나이만 먹어 간다고 해도 바깥소식마저 나를 한가롭게 두겠느냐. 듣건대 야명세확정 맹주의 딸은 너보다 고작 한 살이 어린데도 정혼한 지 몇 해는 지났다더구나.’

몇 년 전부터 호사가 무리가 불화설을 물어 나르는 그 정혼이었다.

‘안 그래도 적은 낙으로 버티는 삶이거늘 좋은 소식이라도 들려다오.’

달아준은 문득 집게손가락으로 제 귀머리를 하염없이 꼬고 쓸어내리던 손짓을 의식했다. 괜히 생부를 닮은 면모 같아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덕분에 미루던 시간은 붙들어 세웠다. 아버지가 수감당한 별채에서 나온 지 한 시진(時辰, 2시간) 만이었다.

구심점이 부르자 세 장로는 금방 모여들었다. 자초지종은 짧게 끝났고 어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답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더 짧았다.

한 여자가 검지로 탁상을 두 번 두드렸다. 손톱이 부딪히며 작은 소리가 났다. 그가 생각을 정리할 때 이따금 보이는 모습이었다.

“공자님께서 금 도인의 심중을 바로 보신 듯합니다. 저 또한 야명세확정에 혼담을 넣으라는 말씀이라고밖에 풀이하지 못하겠군요.”

창장로(槍長老) 하미성(河彌惺)이 동의한 데 이어 방장로(防長老) 입초(立礎)도 거들었다.

“야승황(夜承煌)과 신긍(申亙)이 불화한다는 소문이야 몇 년 전부터 쭉 있어 왔지요. 하기야, 그곳 맹주 야창완(夜昌琬)이 설마 후계자로 책봉까지 마친 딸을 폐하고 배신한 옛 정혼자의 아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줄지 누가 짐작이나 하였겠습니까?”

을미서 도계(道界)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야명세확정의 현 맹주 야창완은 제가 그 어머니의 후계자이던 적에, 곧 작은맹주로 불리던 시절에 정혼자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1천 년간 으뜸 자리를 차지한 계파의 맹주 부인(夫人)이 될 기회를 걷어차고 택한 여자가 속인이었기에 모든 도사가 경악한 사건이기도 했다.

야창완은 곧 불의한 정혼자를 잊고 남편을 맞아 슬하에 딸을 두었다. 바로 그 딸이 지금 달아준과 장로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야승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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