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궁 뒷산에 사는 여우는 매일매일 황제를 기다린다. 맛있는 포도와 닭다리를 가져다주는 황제 폐하를!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에스더.” “컁컁! (저도예요!)” 쓸쓸해 보이는 폐하를 위해 에스더는 신에게 빌었다. ‘폐하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에스더는 사람이 되었다……? *** ‘좋아하는 사람한테 뽀뽀를 할 줄 알아야 해!’ 아니다. ‘그래야 인간다운 거랬어!’ 에스더는 제대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는 내게 몰래 입을 맞췄다?” 자신이 또 무언가를 실수한 모양이었다. 카이사르가 분명 웃고는 있는데…… 게다가 무척 즐거워 보이기는 하는데……, 왜인지 이상했다. 야생동물로서의 본능이 위험하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에스더는 슬그머니 몸을 뒤로 뺐다. “나 갈래요.” “못 가.” “…….” “네가 먼저 나를 덮쳤잖아.” 카이사르의 눈빛이 평소와 달리 탐욕스럽게 빛났다. “이제 내게서 평생 못 벗어나는 거야, 에스더.”
프롤로그
“그렇군.”
카이사르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네?”
“네게 나는 늘 고작 그 정도였지.”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테오도라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만 지었다. 카이사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도 그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것이 그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카이사르는 미련 없이 뒤돌았다.
사실 테오도라는 바뀐 것이 없다. 언제나 제멋대로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그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사람들을 홀려 황후가 되고 그의 마음을 빼앗았을 때까지 늘.
피가 거꾸로 솟는듯했다. 어떻게 지금까지 잊고 있었을까. 정말 악마 같은 여자다.
아니, 사실은 그게 아니라……. 카이사르는 실소를 터뜨렸다.
“넘어간 내가 바보지.”
그는 겉옷을 들고 방을 빠져나갔다.
“폐…… 폐하!”
카이사르는 긴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그제야 뒤에서 여자가 허겁지겁 달려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카이사르의 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카이사르!”
곧 달콤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찌른다. 애처로운 부름에 순간 뒤를 돌아볼 뻔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부리나케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손이 덥석 잡힌다. 카이사르는 그것을 세차게 뿌리쳤다.
“……!”
그 순간 마주쳐버린 호박색 눈동자가 단번에 그를 사로잡았다. 아름다운 얼굴이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그 가련한 모습을 보자 당장에라도 품에 안아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고 다독여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카이사르는 이를 악물고 그것을 억눌렀다.
“내일 아침 너를 황후 자리에서 폐할 것이다.”
“그런…… 그…… 저는…….”
테오도라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두 손을 꼭 맞잡는다. 그에 가슴이 미어진다. 그녀를 더 보고 있다가는 넘어갈 것이 분명했다. 카이사르는 그녀를 피해 다시 뒤돌았다.
“험한 꼴 보고 싶지 않다면 그 전에 궁을 떠나도록.”
“폐하!”
카이사르는 다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넓은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테오도라가 밤에 자기 주변에 사람이 있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그녀를 존중해 밤이면 이 내궁에 최소한의 사용인과 병사만을 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빼앗겼었다니.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게 분명하다.
“폐하!”
문득 카이사르는 이 저주가 평생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에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면.
열린 문으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들이닥쳤다. 오늘따라 달빛이 밝다. 소복하게 내린 눈 때문인 듯했다.
카이사르는 바깥으로 성큼 한 발을 내디뎠다. 테오도라는 달이 밝을 때는 절대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달이 무섭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혹시 모르지, 이게 다 밤에 자신을 내궁에 붙잡아두려는 핑계였을지도.
2026.03.1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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