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 글링
역천의 죄를 지어서라도, 너에게 가 닿겠다.
“무, 뭐야. 왜 저래...! 피, 피해!”
목소리는 굉음에 묻혔다.
상향등을 켠 트럭이 상식 밖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길바닥에 웅크린 푸들 한 마리.
현이의 하루를 유일하게 들어주던 그 눈이
지금, 사라질 위기였다.
300미터.
언제부터였을까.
이 빌어먹을 인생이 꼬였던 건.
200미터.
일곱 살 때 아버지의 관 위에
흙이 떨어졌을 때부터였을까.
100미터—
찰나의 순간, 현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날 같은 어두운 하늘을 향해 말했다.
“정말 끝까지 이러네.”
발이 먼저 움직였다.
현이는 강아지를 향해 몸을 던졌다.
강아지를 밀어내고,
그 육중한 쇳덩어리를 정면으로 받아낸 순간.
꽈앙—!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는 감각이 들기도 전,
몸이 붕 떴다.
세상이 느리게 회전했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들.
어머니의 눈물, 떠난 연인의 뒷모습.
바닥으로 추락하는 찰나,
시선의 끝에 강아지가 걸렸다.
조금 전까지 병들고 추레했던 녀석이 아니었다.
탁하던 눈이 아닌 유리처럼 맑은 눈으로
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래, 너라도 살렸으니 됐다.”
단념을 삼키며 눈을 감던 그때,
지독하게 시린 백색광이 현이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
고요한 방에 시계 소리만이 울렸다.
그 고요를 깨는 현이의 비명.
“으아악!”
낡고 곰팡이 슨 도배지가 내려앉은 천장.
현이는 비명과 함께 상체를 일으켰다.
방금 물속에서 건져 올린 듯 땀으로 젖어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황급히 제 몸을 더듬었다.
“하아... 뭐야, 분명 사고가 났는데...?”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도대체 뭐지...?”
그때, 요란하게 진동하는 알람이
현실의 감각을 일깨웠다.
창밖은 여전히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정말 꿈이었나...’
알람을 끄기 위해
핸드폰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알람은 인력사무소에 도착해 있어야 할 마지노선,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헉!”
현이는 잠옷 차림 그대로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낡은 보일러를 돌릴 틈도 없었다.
싸아아!
레버를 돌리자, 얼음물이 그대로 쏟아졌다.
정수리부터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소름 끼치는 한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그런데 너무 급했던 탓일까.
비눗물에 미끄러져 허리를 삐끗하며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억!”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통증보다 무서운 건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으니까.
애먹이는 낡은 현관을 겨우 잠그고는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쪽문을 열어젖혔다.
새벽 6시 15분.
하루가 다시 시작됐다.
허리를 부여잡고 어두운 겨울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하루가 또 시작이구나.”
그때였다.
쪽문을 나서던 현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낡은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이고 눈 부신 빛이 시야를 찔렀다.
쪽문에서 5미터 정도 앞.
누군가 담벼락에 기대어 쪼그려 앉아있었다.
하얀 하이넥 원피스 위로 하얀 패딩을 걸친 여자.
현이는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칼바람이 부는 새벽인데도
그녀의 주변만 마치 다른 계절인 것 같았다.
새벽의 어스름조차 산란시키는 새하얀 피부.
바람에 흔들리는 단발머리.
눈을 감은 채 미소 짓고 있었다.
현이의 눈동자가 딱 굳었다.
‘연예인... 아이돌? 아니, 뭔가 달라...’
눈을 떼지 못했다.
죽을 때까지, 아니 다시 태어난다 해도
저토록 눈부신 존재를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현이의 시선과 그녀의 눈동자가 맞물렸다.
현이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과는 아무 인연도 없을 사람.
이 누추한 골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신과는 궤도가 전혀 다른 여자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일 테니까.’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뒤로하고 발을 떼는 순간—
“안녕?!”
오랫동안 참아온 울음을
환희로 바꿔 뱉어내는 듯한
눈물겹게 밝은 목소리였다.
***
적막이 깨졌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쪽문 앞에 쪼그려 앉아있던 여자가 일어나 있었다.
입을 다물 생각도 못 한 채 서 있는 그에게
그녀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마치 기다려 온 사람을 만난 것처럼.
“···네?”
현이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곳엔 둘뿐이었다.
흔한 길고양이 한 마리도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분명히, 정확히 현이를 향해 있었다.
상체를 살짝 숙인 채
그를 올려다보는 갈색 눈동자.
잠시 그를 살피듯 고개를 기울이더니,
그녀는 생긋 웃었다.
“현아, 안녕?”
심장이 흉곽을 뚫고 나올 듯 크게 뛰었다.
“누, 누구세요···?”
그녀는 피식 웃더니,
어딘가 장난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턱을 괴고 활짝 웃으며,
이 지독한 골목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말을 꺼냈다.
“네 인생을 바꿔줄 천사. 유리야.”
분명 자신을 천사라고 소개했다.
터무니없는 그녀의 말에
현이의 사고회로가 판단을 내렸다.
“······장난하세요? 요즘은 뭐,
‘도를 아십니까’도 컨셉을 이렇게 잡아요?”
“아하하, 역시 반응이 이렇구나?
하긴, 갑자기 천사라고 하면 나라도 의심하겠다.”
그녀는 마치 예상했다는 듯 청명하게 웃었다.
현이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관심 없으니까 비키세요.
일 나가야 하거든요. 길 막으면 신고할 겁니다.”
“음, 이러면 믿으려나~
열흘 전, 헤어질 때 혜선이가 이렇게 말했지?
당신은 로또 1등이 되더라도 똑같을 거라고.
아, 그때 네 표정 정말 가관이었는데.”
손이 저절로 멈췄다.
‘······뭐야 그, 그걸 어떻게...’
그녀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현이의 비밀들이 길바닥에 쏟아졌다.
“어릴 때 아버지를 향했던 원망,
집을 나오던 날 어머니에게 건넸던 이십만 원,”
숨이 막혔다.
현이는 공포에 질려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당신, 대체 뭐야.
2026.06.04 20:30
2026.06.03 20:30
2026.06.02 20:30
2026.06.01 20:30
2026.05.31 20:30
2026.05.30 20:30
2026.05.29 20:30
2026.05.28 20:30
2026.05.27 20:30
2026.05.26 20:30

앞으로 정주행 할게요!!
26.06.02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