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스템: 배드 엔딩 55번 마탑의 박제된 영애를 회피하셨습니다.] 새벽 1시에는 지하수로에서 맨손으로 마수를 때려잡고, 아침 8시에는 가녀린 공작 영애로 복귀하는 눈물겨운 투잡 인생인 여주이다. 사악한 피폐 로판 속에서 통구이 엔딩과 우주의 먼지 엔딩을 피해 살아남으려면 가진 건 장비 빨과 날조뿐이다! 하지만 제국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자꾸만 내 뒤를 캐기 시작하는데... "벨로아 영애,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육체로 마력로를 압착하다니 이게 대체 어느 학파의 마법 체계란 말입니까?" 감자전 한 입에 학술적 상식이 송두리째 박살 난 까칠한 천재 마탑주. "결계의 흐름마저 육체의 기혈로 흘려보내다니! 역시 영애는 숨겨진 고고한 소드 마스터 성녀이십니다!" 공작 영애의 무식한 악력을 무협지식 내공의 정수로 오해하는 제국 제일검. 여기에 비즈니스를 제안하는 위험한 암흑가 수장과 황태자까지. 지갑은 두둑하게, 날조는 완벽하게. 대공 가문의 연약했던 영애의 생존 가이드가 진행된다.
눈을 뜨자마자 알았으니 이곳은 내가 살던 곳이 아니었다.
'뭐야? 여기 대체 어디야?'
천장은 지나치게 화려했고, 커튼은 쓸데없이 길었으며, 침대는 몸을 삼킬 듯 폭신했다. 딱 봐도 귀족 영애의 방이었다. 문제는 내가 이런 데서 눈을 뜰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였다.
"아니, 여기가 어디야? 내 방이 이렇게 깔끔하고 좋을리가 없는데?"
중얼거리며 상체를 일으키자 순간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 프레임이 반쯤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침대가 왜 이렇게 약한거야?"
침대에 내려와서 상태를 살피던 중에 익숙한 효과음이 들려왔다. 그 효과음이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까 상태창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로맨스 판타지 시뮬레이션 – 운명의 선택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건 내가 밤새 하던 그 게임의 제목이었다. 엔딩을 보기까지 정확히 열두 번 죽었던, 플래그 하나 잘못 밟으면 세계가 멸망하던, 로맨스보다 사망 CG가 더 많은 그 미친 로판 게임 말이다.
"지금 장난하는거지? 자다가 왜 갑자기 로판으로 들어와?!"
여기가 꿈일거라고 생각하며 부서진 침대로 다시 향하였다. 그러든 말든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상태창이 시야 한쪽에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조연으로 빙의하셨습니다!]
이름: 레나 벨로아
포지션: 엑스트라
엔딩 인지율: 100%
원작에서 레나 벨로아는 기억도 잘 안 나는 인물이었다. 초반 무도회에서 한 번 지나가듯 등장하고, 이후로는 배경 처리. 살아도 그만, 죽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몸에 빙의한 걸까.
[첫번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첫번째 퀘스트: 오늘의 무도회에 참석하세요.]
내 기억이 맞다면 무도회에서 황태자가 여주를 처음 만나고, 마탑주가 흥미를 느끼고, 기사단장은 충성을 맹세하고, 성자는 웃으면서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엔딩까지, 정확하게 몇 명이 죽는지도 다 알고 있다.
"근데 상태창아, 장난 그만 치고 나 당장 돌려보내줘라."
상태창을 향해 말하자 시스템이 멈칫했다.
[튜토리얼은 필수 콘텐츠입니다.]
그 말에 한숨이 나왔다. 침대에서 내려오다 발끝에 걸린 의자를 무심코 밀었는데, 의자가 벽을 뚫고 날아갔다. 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경고: 근력 수치가 정상 범위를 초과했습니다.]
"아까부터 생각한건데 이 캐릭터, 힘이 이렇게까지 강했나..?"
그러나 방 안에서 몇번이나 부수니까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문을 열고 나오자 하인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 죄송해요. 벽은 나중에 고치면 되죠?"
관경을 다 지켜본 하인 하나가 기절했다. 일단 이 저택에서 도망치는게 먼저인 것 같았다.
[루트 안정도 -15]
"...루트 안정도? 이런게 있었나?"
시스템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더 이상 내 질문 따위 답 해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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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상태창의 내용에 따라서 나는 무도회장으로 향했다. 단장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를 부수게 된 일은 생략하고 시작하겠다.
무도회장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검은 연기가 나타났다. 튜토리얼 몬스터가 갑자기 나타난건데 원작에서 여주와 남주들이 협력해서 멋지게 처리하는 이벤트였다.
[전투 이벤트 발생]
[권장 선택지: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나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으니 힘이 강해졌는데 그게 진짜인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잠시만, 이거 나 혼자서 해볼래."
[비권장 행동입니다.]
"어쩌라고? 아까 내 질문에 답 안 한 대가라고 생각해."
주먹 한 번, 연기가 터지듯 사라졌고, 바닥에 균열이 생겼다. 무도회장 전체가 흔들렸다.
[전투 종료]
[루트 안정도 -40]
[세계선 붕괴도 12%]
멀리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황태자일 거고, 기사단장일 거고, 아마 성자도 있다.
아직은 마주치기 이르다. 나는 손을 털며 생각했다. 엔딩을 알고 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굳이 그 엔딩으로 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로맨스든, 희생이든, 비극이든 다 정해진 대로 흘러가야 할 이유는 없다.
시스템 경고를 무시하고 나는 무도회장 쪽으로 걸어갔다. 바닥에 남은 균열을 뒤로한 채 말이다. 어차피 이 게임, 물리엔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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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이 난 바닥을 피해 무도회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안은 소란스러웠다. 음악은 멈췄고, 귀족들은 부채와 소매 뒤로 얼굴을 숨긴 채 웅성거렸다. 공포와 흥분이 뒤섞인 소리였다.
"마물이라니, 이 성 안에서?"
"결계는 어떻게 된 거지?"
"황태자 전하께서 곧 도착하신다더군."
원작에서는 여기서 여주가 놀라 넘어지고, 황태자가 손을 내밀며 첫 만남 이벤트가 발생한다. 배경 인물들은 감탄하고, 음악은 다시 흐르고, 로맨스 플래그가 깔린다.
나는 그 장면을 너무 잘 안다. 열두 번이나 봤으니까 말이다. 그때 등 뒤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지?"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일 루엔하르트, 황태자였으니 소식을 듣자마자 비서를 불러서 상황을 파악 중이었다.
원작 메인 남주, 그리고 대부분의 엔딩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인간이다. 그의 시선이 바닥의 균열, 부서진 기둥, 그리고 내 손으로 옮겨왔다.
그는 그 관경을 보면서 이게 맞는건가 하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시선은 지나가는 돌을 보는 듯한 시선이다.
"무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 안 들고 다녀요."
"그럼 저걸 혼자 처리했다는 말인가?"
"처리라기보단 한 대 쳤죠."
순간 공기가 얼었다. 귀족들 사이에서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이상하게도 상태창이 갑자기 떠올랐다. 거기에는 카일의 호감도 상태가 올라갔다며 나에게 알려줬다.
2026.06.13 09:15
2026.06.12 18:25
2026.06.12 14:54
2026.06.12 13:53
2026.06.12 11:00
2026.06.12 08:38
2026.06.12 08:34
2026.06.12 08:19
2026.06.11 13:19
2026.06.11 13:05
삭제된 댓글입니다.
26.06.17
수정

3위 축하드립니다!
26.06.15

4위 축하드립니다!
26.06.15

이걸로 끝이네요. 완결까지 수고하셨고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26.06.13
킁킁~
26.06.12

완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라요!
26.06.12

바꾸신 표지도 예쁘네요
26.06.09

5위 축하드립니다!!
26.06.07

8위 축하드립니다!
26.06.06

공모전 출품작이라니, 응원하겠습니다.
26.06.04

😁
26.06.03

재밌어요😄
26.06.03

사이다 여주 ㅋㅋㅋ
26.06.02

로판+게임물은 첨보네요 흥미로워요
2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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