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당신에게 보내는 사랑의 예우입니다
죽음은 적막이 아니다. 내게 죽음은 언제나 지독한 소음이었다.
사고 현장의 비명, 병실의 기계음,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통곡 소리.
하지만 그 무엇보다 시끄러운 건 내 곁을 떠나지 못하고 제 사연을 떠들어대는 영혼들의 목소리였다.
열 살, 부모님을 사고로 잃던 날 나는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피 칠갑이 된 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누워있던 부모님.
하지만 내 눈에 보인 영혼이 된 두 분은 아파하기보다, 혼자 남겨질 나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눈부신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두 분은 빛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알았다.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우면, 떠나는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덜 아프다는 걸.
그래서 나는 장의사가 되었다.
망자의 일그러진 얼굴을 펴고, 피를 닦아내며, 그들이 부모님처럼 '웃으며' 성불할 수 있게 돕는 마지막 가이드.
그런데, 이 여자는 달랐다.
“아저씨, 나도 성불시켜 주면 안 돼요? 나도 저 빛 속으로 가고 싶단 말이야.”
작업대 위에 제집 안방인 양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투덜대는 여자.
나는 무심하게 그녀의 투명한 발목을 가리켰다.
“넌 못 가.”
“왜요! 아저씨 실력 좋다면서요. 나도 예쁘게 단장해 주면 되잖아요!”
“보통은 그렇지. 근데 넌 지금 ‘닻’이 박혀 있어.”
그녀의 발목에는 보이지 않는 차가운 사슬이 감겨 있었다.
어딘가 억울한 곳에 처박혀, 아직 수습되지 못한 채 비명을 지르고 있을 그녀의 유골.
그 육신이라는 닻을 찾아 제대로 된 땅에 뉘어주기 전까지는, 내가 그녀의 얼굴에 분칠을 천 번 해준들 이 문턱을 넘을 수 없다.
“그 닻, 빨리 안 찾으면 너 조만간 시커멓게 타들어 갈 거야. 미련이 독이 돼서 악귀가 된다고.”
내 겁박에도 여자는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자기가 사라질 위기인데도, 내 책상 위에 놓인 사탕 봉지를 만지작대며 해맑게 굴었다.
이름도 없는 그녀에게 나는 그날 창밖에 내리던 눈의 이름을 따 ‘설아’라는 가명을 붙여주었다.
그것이 비극적인 연애의 시작이었다.
***
난 나무관에 조심스레 유골을 담았다.
“아저씨, 나 성불 안 하면 안 돼요? 나 아저씨랑 같이 있으면 안 돼요?”
“설아야….”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
불가능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겨우 뗀 나는 설아에게 겨우 말할 수 있었다.
“안 된다는 거 잘 알고 있잖아…. 그리고 설아, 네가 성불시켜 달라고 먼저 찾아왔잖아….”
“마음이 바뀌었어요. 싫어요, 안 가요. 못 가요!”
“설아야.”
애써 나오려는 눈물을 참은 나는 설아를 향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거 기억나? 네가 처음에 나한테 들러붙었을 때, 내가 귀찮아했던 거?”
“당연히 기억나죠! 그땐 진짜 상처였다고요!”
“근데 지금은 아니야.”
난 결국.
“흑… 나 아직 너랑 더 있고 싶어. 이렇게 헤어지기 싫어. 근데 넌 가야 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잖아…, 악귀.”
남성스럽지 못하게 울음을 터트렸다.
“아저씨….”
난 애써 눈물을 닦으며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
최대한 밝게.
“선물이라곤 하긴 뭐 하지만 설아 너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어.”
난 내 옆에 놓인 종이백을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아저씨….”
“짜잔. 예쁘지? 설아가 이걸 입어줬으면 좋겠어.”
내가 꺼낸 것은 순백의 웨딩드레스였다.
“이거, 프러포즈예요?”
“응, 맞아.”
웨딩드레스를 꺼낸 나는 나무관 위에 놓인 백골에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살포시 얹었다.
그러자, 설아가 입고 있던 옷은 어느새 웨딩드레스가 되었다.
“…반지는요? 반지 없으면 프러포즈 아니잖아.”
난 조용히 품속에서 반지를 꺼냈다.
“왼손 줘 봐.”
설아는 덜덜 떨리는 상태의 손을 내게 내밀었다.
링 박스를 장식하고 있는 에메랄드 반지.
내가 꺼낸 반지를 본 설아는 코웃음을 흘렸다.
“치,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센스 없어.”
“에메랄드는 사랑을 상징하는 보석 중 하나거든.”
난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로 설아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손을 놓자마자 반지는 곧장 떨어졌다.
그야, 설아는 기본적으로 만질 수 없으니까.
“설아야.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나랑 결혼해 줄래?”
“응…!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땐 잘 부탁해요! 나 아저씨 하루 종일 못살게 괴롭힐 거니까!”
설아의 농담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하. 좀 봐 줘라. 여태까지 실컷 괴롭혔잖아.”
“흐흥. 싫어요. 계속 괴롭힐 거야.”
설아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다면.
설아가 죽지 않았더라면.
나와 설아의 관계는 더 깊어졌을까?
아니면 타인의 관계가 됐을까.
설아와 계속 있고 싶다.
설아와 맛집도 가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고, 놀이공원도 가고 싶고.
나중엔 설아와 결혼을 해 설아를 닮은 딸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아, 젠장.
눈물이 멈추지 않잖아.
좋아하는 여자한테 눈물이 나 보이고 한심하다, 한이준.
2026.06.05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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