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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님의 밤은 비공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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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프[Lief]
57화무료 57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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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코퍼레이션 최연소 전무 서이건. 그는 완벽하고 냉정한 후계자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사생활을 철저히 숨기며, 누구에게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말한다. “서이건은 웃지 않는 후계자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다. 얼굴 없는 심야 감성 BJ, 하현. 화면에는 얼굴 대신 목선과 손, 실루엣만 비친다. 그는 노골적인 자극 대신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하루를 듣는다. 말하지 못한 상처, 끝내 삼킨 외로움, 아무에게도 기대지 못한 마음. 하현의 방송은 위험하다. 벗기지 않는데도 사람을 무장해제시키고, 붙잡지 않는데도 곁에 머물게 만든다. 루미나잇 콘텐츠 PD 문하율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하현 채널의 임시 담당자가 된다. 처음엔 단순한 고수익 채널 관리 업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H코퍼레이션 투자 실사 자리에서 그녀는 깨닫는다. 낮에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던 서이건 전무와, 밤마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들어주던 BJ 하현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비밀을 알아버린 여자와, 비밀을 들켜버린 남자.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해야 했다. 하지만 하현의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문하율은 서이건이 숨겨온 가장 사적인 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밤을 오래전부터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하현의 오래된 고액 후원자 라온. 그녀의 진짜 이름은 채라온. 서이건의 전 약혼녀였다. 채라온은 문하율을 하현의 방에서 밀어내려 하고, 서이건의 이복형 서태오는 하현의 정체를 이용해 후계 구도를 흔들려 한다. 문하율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가짜 계정, 하현 채널 계약서 유출 예고, 루미나잇 내부 협조자 의혹까지. 서이건의 비공개였던 밤은 점점 세상 밖으로 끌려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하율은 도망치지 못한다. 그가 만든 밤을 지키고 싶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하현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향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로맨스#드라마#갑을관계#BJ/스트리머#재벌남#직진녀#능력녀#소유욕/독점욕/질투

문하율은 새벽 두 시에 들리는 다정함을 믿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믿지 않으려고 했다.


밤이 깊어지면 사람은 이상하게 약해진다. 낮 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 삼킨 말들이 혀끝까지 올라오고, 괜찮다고 꾹꾹 눌러둔 마음이 별것 아닌 문장 하나에 무너진다.


그래서 하율은 밤의 다정함을 경계했다.


그건 진짜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문 PD님, 아직도 안 가셨어요?”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하율이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콘텐츠운영팀 사무실은 이미 반쯤 불이 꺼져 있었다. 막내 직원 하나가 가방끈을 고쳐 메며 출입문 앞에 서 있었다.


“이것만 보고 가려고요.”


“그 말 두 시간 전에도 하셨어요.”


“그땐 진심이었는데.”


“지금도 진심이시겠죠. 근데 진심만으로는 사람이 죽어요.”


하율이 피식 웃었다.


“걱정 고마워요. 먼저 들어가요.”


문이 닫히자 사무실은 다시 고요해졌다. 노트북 팬이 돌아가는 소리, 천장 조명이 낮게 울리는 소리, 식은 커피에서 사라진 향.


하율은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루미나잇.


성인 감성 콘텐츠 플랫폼이라는 이름 아래, 회사가 원하는 건 늘 비슷했다. 짧고 강한 자극. 몇 초 안에 시선을 붙잡는 썸네일. 더 직접적인 후원 유도. 더 노골적인 콘셉트.


하지만 하율이 믿는 건 조금 달랐다.


사람은 자극 때문에 들어와도, 결국 머무는 건 감정 때문이라고.


누군가의 하루를 들어주는 방송. 과하게 웃기지도, 억지로 유혹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채널.


그런 걸 만들고 싶었다.


물론 회의실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 말이었다.


감성은 좋은데 수익은요?

성인 플랫폼에서 위로요?

문 PD님, 너무 순진한 기획 아닙니까?


그럴 때마다 하율은 웃었다. 웃는 얼굴로 자료를 고치고, 지표를 다시 뽑고, 다음 회의에서 또 같은 말을 했다.


외로움도 시장이 된다고.


다만 너무 싸게 팔면 안 된다고.


그때 메신저 알림이 떴다.


[류지겸 대표]

문 PD, 아직 사무실이면 3번 회의실로 잠깐.


하율은 미간을 좁혔다.


이 시간에 대표가 부르는 일은 보통 둘 중 하나였다. 사고가 터졌거나, 사고가 터지기 직전이거나.


대체로 둘 다였다.


3번 회의실 문을 열자, 류지겸이 태블릿을 손끝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흐트러진 셔츠 소매와 달리 눈빛만은 또렷했다. 그는 언제나 피곤해 보였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한 번도 흐려진 적이 없었다.


“왔네.”


“무슨 일인데요?”


“임시로 맡길 채널이 하나 있어.”


하율은 문고리를 잡은 채 멈췄다.


“또요?”


“이번 건 진짜 달라.”


“대표님이 그렇게 말한 업무 중에 안 달랐던 게 더 많았어요.”


지겸이 짧게 웃었다.


“매출 상위 1퍼센트. 고정 후원층 탄탄하고, 이탈률 낮고, 클레임 거의 없어. 플랫폼 이미지 개선에도 쓸 수 있는 채널이야.”


하율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그런 채널이면 담당자가 따로 있을 텐데요.”


“오늘 그만뒀어.”


“갑자기요?”


지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율은 테이블 위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채널명, 하현.


얼굴 공개 없음.

방송 화면 노출 제한.

목선, 손, 실루엣 위주.

주요 콘텐츠, 심야 대화형 감성 방송.

방송 시간, 밤 12시 30분부터 새벽 2시 사이.

월평균 후원액, 플랫폼 최상위권.


하율의 눈이 한 줄에서 멈췄다.


진행자 신상 비공개.

실명, 주소, 소속, 개인 연락처 접근 금지.

내부 최고 보안 등급.


“이 사람 뭐예요?”


“말 그대로 얼굴 없는 BJ.”


“얼굴도 안 공개하고 이 정도 수익이 나와요?”


“그러니까 특이하지.”


지겸이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 채팅 캡처와 후원 메시지가 이어졌다.


[하현님 목소리 들으면 잠이 와요.]

[오늘도 겨우 버텼는데, 여기 오니까 숨 쉬어져요.]

[말 안 해도 들어주는 사람 같아요.]

[노골적인 방송보다 더 위험해요. 진짜로.]


하율은 마지막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노골적인 방송보다 더 위험하다.


화면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어두운 조명, 희미한 실루엣, 마이크 앞에 놓인 긴 손가락. 그런데도 그 문장이 묘하게 걸렸다.


“샘플 있어요?”


“있지. 대신 외부 반출 금지. 녹음 금지. 캡처 금지.”


“보안이 왜 이렇게 세요?”


지겸은 대답 대신 무선 이어폰 케이스를 밀어주었다.


“들어봐. 그러면 조금은 알 거야.”


하율은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처음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주 낮은 배경음, 창밖에 비가 내리는 듯한 미세한 잡음. 그리고 잠시 뒤,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오늘도 오래 버텼네요.


하율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멈췄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억지로 달콤하게 만든 느낌이 아니었다. 일부러 낮춘 것도, 다정하게 들리려고 꾸민 것도 아니었다.


그냥 원래 그런 사람처럼 들렸다.


조용한데 이상하게 선명했다.


—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 대신 여기 있어요.

— 누군가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밤은 조금 덜 외로울 수 있으니까.


회의실의 형광등은 여전히 밝았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닿는 순간, 하율은 조명이 한 꺼풀 낮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유혹하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다정하다고 하기엔 온도가 낮았고, 무심하다고 하기엔 너무 정확했다.


마치 상대가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 하현의 밤에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문장에서 하율은 숨을 잊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밤.


웃기게도 그 말이 목 안쪽을 건드렸다. 하율은 황급히 이어폰을 뺐다. 괜히 태블릿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지겸이 물었다.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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