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까지 괴담 두려워할 건가? 이제는 때려잡자!] 괴물들이 현실을 침식하는 세계에서, 이미 한 번 꺾인 남자가 다시 몸을 던진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평범한 경찰 백희성은 다른 경찰 동료들에게 투명인간 취급 당한 채 그저 진상 상대만 하다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그러다 정체불명의 괴물과 그런 괴물을 상대하는 집단을 보며 백희성은 다시 정의를 세우기 위해 일어선다.
입에서 튀어나온 침방울이 내 뺨을 적셨다.
“딱 한 잔! 진짜 딱 한 잔만 걸쳤다고요!”
쾅!
철제로 된 조사 테이블이 요란하게 들썩였다.
사내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침방울이 기관총마냥 사방으로 난사되고 있었다.
시큼한 소주 냄새와 맥주 찌든 내가 좁은 조사실 안을 빽빽하게 가득 메웠다.
왜 화를 내는 거야. 음주측정기 수치 ‘0.08%’라는 면허 취소 수준의 결과물이 모니터에 선명하게 떠 있건만.
사내는 벌게진 눈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신 이러는 거 권력 남용이야! 경찰이 이래도 돼?”
“저는 규칙대로 하는 겁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었다.
여기는 가온경찰서 강력반 임시 조사실.
그리고 내 앞의 이 진상 음주 운전자는 오늘 밤 내가 퇴근하기 전 해결해야 할 마지막 골칫거리였다.
“형사님, 제가요,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이 인간이 그냥 가버려서 어쩔 수 없이 아주 잠깐, 한 10미터? 딱 그만큼 움직인 겁니다. 예? 아시겠어요?”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집었다.
10미터를 가든 10센티를 가든 운전대를 잡았다는 거 자체가 문제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사인해주시죠. 계속 이러면 공무집행방해죄 추가됩니다.”
서늘한 눈동자로 사내를 가만히 응시하자, 펄펄 날뛰던 덩치가 기묘한 한기에 압도당한 듯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내 눈빛이 칼날이라도 되는 양 슬금슬금 시선을 피하는 꼴이 우스웠다.
“펜은 오른쪽에 있습니다. 여기에 하세요.”
서류판을 툭 던지듯 내밀자 사내는 구시렁거리며 서명란을 채웠다. “융통성 없기는”이라며 작게 중얼거리는 게 대놓고 들렸다.
사인이 끝나자마자 사내는 쏜살같이 경찰서를 나갔다. 어지간히도 있기 싫은가 보네.
나도 여기 있기 싫어, 이 사람아.
마침내 모든 서류 작성이 끝났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 45분.
퇴근의 길이 코앞이다. 나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외투를 조용히 어깨에 걸칠 때, 차가운 무언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뒤돌아보니 팀장님이 눈에 들어왔다.
팀장님은 불룩 튀어나온 배에 손을 올린 채 말했다.
“희성아, 갈 준비 하냐?”
힐긋 보니 팀장의 손에는 서류 뭉치가 들어있었다.
아, 제발. 내가 생각하는 것만 아니게 해주세요.
팀장은 내 생각을 이해한다는 듯이 서류를 몸 뒤로 감췄다.
“너 줄 거 아니니까 걱정 마라.”
휴, 다행이군.
나는 긴장을 풀며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다른 부서 같은데, 진상 같아서. 네가 좀 봐줘라.”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걸 하고 있는데.
“저 바쁩니다.”
“바쁜 거 알지. 아는데, 다른 애들이 지금 야근해서 새벽에 가야 할 지경이야. 넌 몸도 그러니까 야근 잘 안 하잖아.”
어이가 없어 웃음도 안 나왔다. 이걸 이런 식으로 떠넘기네.
그래도 이해는 한다. 요즘 신체 부위가 하나씩 없어진 시신이 원인을 불명하고 출현 중이었다. 끔찍하게 뜯긴 모습이 꼭 짐승이 지나간 자리 같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속이 안 좋았다.
결국 한숨을 쉬며 지팡이를 쥐었다.
“…알겠습니다. 어디 계시는데요?”
팀장은 히죽 웃으며 두툼한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색 머리카락의 여자와 붉은 스카프를 얼굴에 두르고 있는 남자가 서로 무어라 대화 중이었다.
멀리서 보기만 하는데도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짧게 심호흡을 쉬고 둘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눈빛이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부서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데. 신종 사이비인가?
나도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백희성 경위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하지안이라고 합니다.”
하지안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냅다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 손을 잡아 악수를 청했다. 작은 손에 굳은살이 느껴졌다.
옆에 남자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경찰서를 계속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선글라스에 스카프, 그리고 마스크가 한 얼굴에 착용되고 있어서 꼭 범죄자 같았다.
경찰서 와 본 적 없나? …안 와봤어도 저런 반응은 아니던데.
“슬슬 놔줄 수 있나요? 조금 불편한데.”
하지안의 목소리에 겨우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사람이 그럴 수도 있죠.”
하지안은 싱긋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언제부터 저기에 의자가 있었지?
“앉으세요.”
어느새 내 옆에도 의자가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저 하지안이란 사람이랑 웬 이상한 남자는 경찰 제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저게 그 코스프레인가 뭔가인가. 비싸 보이겠는데.
가슴팍에는 ‘BOP’라고 써진 배지가 박혀 있었다. 문화생활을 안 하니 저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네.
하지안의 옆의 남자를 끌고 오며 말했다.
“토…지민아. 아까 줬던 거 줘 봐.”
토지민?
지민은 “아” 소리 따위를 내며 품에서 큰 전단지를 꺼냈다.
나는 전단지를 건네받으며 펼쳤다.
[언제까지 괴담 두려워할 건가? 이제는 때려잡자!]
…사이비 맞네. 이 시간에도 사이비 돌아다니고. 더럽게 고생 많네. 공무원 준비라도 했으면 더 고생이 많아 보였을 텐데. 저 반반한 얼굴 다 버리네.
“저희가 보시는 대로 귀신 잡는 곳이거든요.”
“아…네.”
하지안은 턱을 괸 채 싱긋 웃었다.
“이거 어때요?”
“그, 잘…만들었네요.”
거짓말이다. 중학교 때 못 만든 피피티보다 별로였다.
'이거 위험하다.’
8년이 넘는 경찰 일을 하니 감이라는 게 생겼다. 그리고 지금 이 여자와 있었다가는 내 인생에 변화가 생길 거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변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안이 내 손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아직 이야기 안 끝났는데.”
“하, 하하…제가 지금 퇴근해야 해서요. 내일 이야기하죠.”
잡힌 손에 힘을 줘봤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힘이 세.
손에 힘을 준 하지안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손을 놓아주었다. 몸이 순간 휘청거렸다.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쓰라린 고통을 느끼면서도 나는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멀어져 가는 저 둘의 눈동자에는 아까 남자와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 ⁜
백희성이 사라지자 하지안은 미소를 거두었다. 아까의 미소와는 다른 사늘한 표정이었다.
2026.06.2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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