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띠동갑 연상 여자친구. 그녀가 주는 안락함에 살아가던 내 앞에, 채영의 조카 유진이 나타났다. "만들어줘요. 세상에 하나뿐인 모습으로." 채영이 만들어준 공간에서 퍼티를 짓이겨 유진을 빗기 시작했다.
“정말 나까지 가야 해?”
“안 가도 돼.”
채영이 안전벨트를 고쳐 매며 덧붙였다.
“대신 이번 달은 당신 돈만 쓰도록 해.”
경쾌한 협박이었다.
나는 운전석에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면 되잖아.”
“그렇지.”
채영은 만족스럽다는 듯 내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렸다.
마치 잘 훈련된 대형견을 토닥이는 주인의 손길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거치대에 끼웠다.
방금까지 보고 있던 건 네튜브 댓글 창이었다.
구독자 127명의 내 채널.
조회수 312회 영상에 달린 댓글.
-조형 미쳤다.
-손 진짜 예뻐요.
-판매는 안 하시나요?
나는 화면을 끄고 네비를 켰다.
“규현 씨.”
“응?”
“당신 재능 있는 건 알겠는데.”
채영이 창밖을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재능만으론 안 굴러가. 세상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맞았으니까.
피규어 외주 몇 개를 긁어모아도 월 백만 원 남짓.
그 돈으로는 혼자 먹고사는 것도 빠듯했다.
반면 채영은 비싼 집의 방 하나를 작업실로 쓰라며 내어주고, 한도조차 알 수 없는 블랙 카드를 내게 쓰라며 주는 사람이었다.
“표정 봐라. 장인어른 팔순 잔치 가는 사람 표정이 왜 그래?”
“참나, 나랑 결혼할 생각은 있고?”
“왜? 난 진심인데.”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채영은 늘 이런 식이었다.
사람을 편하게 안아주듯 감싸놓고, 결국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채영이 내 오른손을 운전대에서 떼어 자기 쪽으로 가져갔다.
“그래도 당신 손은 정말 예뻐.
정말 좋겠어, 이 손으로 만든 걸 선물 받는 사람은.”
ㅡ
차는 어느새 시골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여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폐업을 앞둔 오래된 예식장이었다.
팔순 잔치 현수막.
촌스러운 조명.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문을 열자마자 뜨끈한 음식 냄새와 사람 열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언니들! 오빠!”
“채영이 왔다!”
채영은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사람들 사이로 걸어갔다.
“인사해. 내 남자친구 규현 씨.”
순간, 수십 개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나는 억지로 웃었다.
채영의 언니 넷과 오빠 하나, 그리고 친척들.
낯선 사람들 사이에 전시된 기분이었다.
“남자친구가 아니라 조카 아냐?”
“채영이 능력 좋네.”
농담처럼 웃었지만,
그 안에 묘한 가시가 섞여 있었다.
열두 살 차이는 어디서든 좋은 안줏거리였다.
“나 능력 좋잖아.”
채영이 웃으며 내 어깨를 감쌌다.
“규현 씨가 좀 착해.”
그 손길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마치 도망 못 가게 붙들어 두는 것 같았다.
자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유진아!”
채영이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내 귓가를 채우던 주변 소음이 전부 멀어졌다.
잔잔하게 내리는 눈발 같은 느낌의 여자.
차갑고 투명한 공기를 두른 듯한 실루엣이 천천히 내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이모, 오랜만이에요.”
낮고 맑은 목소리에 머릿속이 다 서늘해지는 거 같았다.
“얘는 같은 서울 살면서 얼굴 보기가 더 힘들다니까?”
2026.07.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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