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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천재 마법사는 군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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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성
4화무료 4화
자유 연재 | 글링 |
조회수 10좋아요 0댓글 0

가문에서 탈출한 마법사 멜리사가 괴짜 강자들이 가득한 군대 아포칼립스 분대에 합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가문의 극단적인 차별을 피해 군대에 자원한 천재 마법사 멜리사가 기묘한 동료들이 가득한 팬텀 분대와 얽히며 벌어지는 군부 판타지 소설.

공모전 참여작#판타지#전쟁/밀리터리#동료/케미#SF

훈련소 수료식은 언제나 그랬듯 삭막하게 진행됐다.

연병장 한가운데 수십 명의 훈련병이 일렬로 늘어섰다. 한낮의 태양이 군복 위를 직접 내리쬐고 있었다.

각자의 표정은 기대, 안도, 공허함 등의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멜리사 세르는 그 어느 것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열 지어 선 훈련병들 사이에서 등을 곧게 세우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칼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여기까지 왔다.'

멜리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난 훈련소 생활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신보다 어린 교관한테 걸려 신명나게 얼차려를 받던 날, 훈련소 동기와 의견이 맞지 않아 미친 개처럼 치고받다가 징계까지 갈 뻔했던 날. 위생 상태가 심각해서 식중독으로 쓰러진 적도 있었고….

좋은 추억이 없다는 판단이 서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기억은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이 순간에 집중해야 했다.

대대장이 단상 위에 올라섰다.

잿빛 눈동자, 깊게 탄 피부, 잘 다듬어진 수염까지. 대대장은 짧게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에게서 나오는 기세는 오랜 세월을 전장에서 버텼다는 게 온몸에서 풍겼다.

그가 손에 쥔 명단을 천천히 펼쳤다.

“존슨 맥프림.”

이름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훈련병들이 앞으로 나섰다. 박수가 한 번씩 터졌다.

멜리사는 그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멜리사 세르."

그 이름이 불리는 순간, 멜리사는 뚜벅뚜벅 군화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섰다.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게 느껴졌다. 훈련소 생활 내내 눈엣가시처럼 굴었던 동기들, 이름 때문에 기억해둔다는 교관들. 그 모든 시선이 지금 이 순간에 꽂혀 있었다.

대대장이 계급장을 그녀의 가슴에 직접 달아주었다. 작대기 하나짜리 이병. 이게 뭐라고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

"고생 많았다."

단 한마디였다. 멜리사는 입술을 꾹 깨물고 경례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군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래. 훈련소 에이스였다지? 기대가 크다."

멜리사는 대대장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쾌재를 느꼈다. 아주 조금은.

그리고 잠깐의 침묵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자대 배치 발표하겠다."

멜리사의 심장이 위로 튀어 올랐다. 사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원하는 부대가 있었다.

붉은 기사단The Crimson Knights.

전쟁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는 이름. 마족과의 전면전에서 후퇴를 모르는 전설적인 정예부대. 입단만 해도 왕도에서 기념 행진을 할 권리가 생긴다는, 군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 이름.

멜리사 자신은 그곳에서 빛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빛나기 위해 지금까지 버텼다.

"멜리사 세르. 배치는…."

대대장이 천천히, 아주 낮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포칼립스."

"…잘못 들었습니다?"

멜리사는 눈을 깜빡거렸다.

훈련소 생활 내내 부대 정보를 꿰고 있던 그녀였는데, 그 이름만큼은 어디서도 본 기억이 없었다. 꼭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나롱 법한 이름이지 않은가.

그러나 대대장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계급장을 한 번 두드렸다.

"행운을 빈다."

그리고는 다음 이름을 불렀다.

연병장에 다시 박수 소리가 퍼졌다.

멜리사는 자리로 돌아오면서도 그 박수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포칼립스.

머릿속에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 하나만 맴돌고 있었다.

⁜ ⁜ ⁜

"아포칼립스… 아포칼립스가 뭐야 대체."

멜리사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군복 깃을 단단히 여몄다. 수료식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을 뒤지고, 지나가는 간부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칭호조차 없는 부대였다.

국가가 공인한 칭호를 받은 부대는 전투력과 전과가 증명된 곳이다. 붉은 기사단, 푸른 방패처럼. 칭호가 없다는 건 그만큼 실적이 없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존재 자체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납득이 가는 이유가 아니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실기도 문제없었는데."

속으로는 동기와의 싸움이 떠올랐지만, 시비를 건 건 상대방이었고 맞기만 한 건 자신이었으니 그건 해당 사항이 없다고 정리했다. 논리적으로 봐도 문제는 없었다.

‘…아니면 가주의 입김이 있었나.’

세르 가문의 딸이 전장에 나서겠다고 할 때, 제국 전체가 술렁였다. 귀족 딸이 스스로 훈련소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가문 내부부터 뒤집혔지만 멜리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집안의 지원 없이 발 벗고 미친 듯이 뛰었다.

그 결과가 이름도 처음 듣는 무명 부대라니. 이름도 이상한 부대라니.

'어떤 놈이 뒷공작이라도 한 거야 뭐야.'

불쾌한 추측이 머릿속을 스쳤다가 사라졌다. 멜리사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래…어디든 상관없어. 에이스로 두각을 나타내면 결국 위로 올라가는 거야."

스스로를 달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낡은 건물 하나 앞에 서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문짝에 붙어 있는 팻말이 보였다.

'아포칼립스 생활관.'

글씨도 기울어져 있었다.

멜리사는 팻말을 한 번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마음을 다잡은 다음 문을 밀어젖혔다.

철컥.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시선들이 한꺼번에 그녀에게 쏠렸다.

멜리사는 주춤하지 않았다. 등을 곧게 세운 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생활관은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벽은 낡은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군데군데 긁혀서 뼈대가 드러나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 하나가 희미하게 깜빡이며 방 안을 간신히 밝혔다.

‘…이게 뭔.’

정리되지 않은 침상과 제멋대로 흩어진 장비들, 오래된 금속 냄새와 먼지가 뒤섞인 공기가 폐를 눌렀다.

‘아니, 원래 침상 정리는 기본 아니었나?’

멜리사는 코끝을 찌푸렸다. 훈련소도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여기는 그보다 더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구석 침대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남자였다. 얼굴 절반을 덮은 하얀 가면, 어깨까지 흘러내린 은발. 머릿결이 비단처럼 고와서 여자로 착각할 뻔했다. 군복을 걸치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십중팔구 그렇게 봤을 거다. 멜리사는 한 번 보고는 시선을 거뒀다.

이런 곳에서 저렇게 잘 자는 사람이 있다니.

"시, 신병이세요?"

뒤에 드렬온 말에 멜리사의 시선이 움직였다. 방 중앙에서 붕대를 조심스럽게 개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일병 계급장.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충성, 이병 멜리사."

"저는… 엘레노어라고 합니다. 편하게 엘레라고 불러도 돼요. 아, 존댓말은 굳이 안 쓰셔도 되고요…."

말끝이 점점 작아졌다. 멜리사는 잠깐 그녀를 바라보았다.

엘레노어. 그 이름을 모를 사람이 있을까. 의료 생존율 99퍼센트. 생명의 여신이라 불린 의사. 병원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의료용 로봇보다 더 정밀한 손기술을 가졌다는 말까지 돌던 사람이, 지금 이 낡은 생활관에서 손을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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