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게임에 빙의했다. 그것도 주인공에게 죽을 운명인 악역 NPC의 몸에. 살아남아 현실로 돌아갈 방법은 단 하나. 플레이어인 성녀보다 먼저 공략 캐릭터의 호감도를 채워 엔딩을 보는 것. ‘미안해요, 성녀님. 그치만 일단 내가 살고 봐야지!’ 그런데 이상하다. 이미 호감도 70%가 찍혀 있는 수인 기사. 나 때문에 탈출을 거부하는 황태자. 나만 보면 가슴을 부여잡는 신관. 그리고 죽여도 죽지 않는 성녀. “나를 죽여.”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사이, 이 게임은 단단히 망가져 버린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주인공을 죽여야 하는 K-고3의 공포게임 생존 로맨스릴러.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감각에 잠에서 깨어났다.
‘거대한 괴물 손에게 납치당하는 꿈이라니….’
꺼림칙한 기분이 도통 가시질 않았다.
나는 침침한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찾으려 팔을 뻗었다.
‘뭐야, 떨어뜨렸나….’
흐릿하던 초점이 돌아온 순간 커다란 손이 어깨를 붙잡았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에는 은빛 머리카락을 단정히 넘긴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스터디 카페였는데…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얼빠진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서늘한 눈동자와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리스, 그새 잠이 든 게냐?”
그런데 시선을 내린 순간, 더 끔찍한 광경과 마주했다.
‘…미친.’
방금까지 엎드려 자고 있던 커다란 책상 위에 피 칠갑을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심지어 책상 아래 놓인 양동이는 검붉은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피곤하면 방으로 돌아가거라.”
나를 내려다보던 남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여기서 졸다가 실수하지 말고.”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약병, 불꽃 위에서 끓는 증류기, 천장에 매달린 정체불명의 표본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구석의 유리병 안에서는 새하얀 쥐들이 서로의 몸을 밟으며 꿈틀거렸다.
“뭐야, 여긴….”
정말 그 괴물에게 납치라도 당한 건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 나 멀쩡한 거 맞지?”
다급히 얼굴과 몸을 더듬다가 벽에 걸린 거울 앞에서 멈춰 섰다.
“뭐야.”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백발. 녹색 눈동자.
내가 눈을 크게 뜨자 여자도 따라 눈을 크게 떴다.
“…….”
분명 거울이었다.
‘…이게 나라고?’
중년 남자가 나를 부르던 이름이 떠올랐다.
이리스.
“…이리스 벨로아.”
이름을 입 밖에 내뱉는 순간, 기억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괴물 손에게 붙잡히기 직전까지 보고 있던 게임.
크림슨 세인트의 악역 공녀.
***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한 달 앞둔 새벽.
나는 또 스터디 카페에 혼자 남아 있었다.
새벽 세 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공시생마저 짐을 챙겨 나갔다.
책상 위에는 빈 에너지 음료 캔과 풀지 못한 문제집이 쌓여 있었다.
“아~ 도망치고 싶다….”
수시에 반영되는 마지막 시험까지 한 달.
고작 한 달만 버티면 되는데, 그 한 달이 지독하게 길었다.
띠링.
핸드폰 화면에 웹소설 광고 하나가 떠올랐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이세계에 빙의해 드래곤 마스터가 되는 이야기라….
“나도 다른 세상에 빙의나 하면 좋겠다.”
이왕이면 돈 많은 집안 외동딸로.
공부 따위 안 해도 되는 팔자라면 더 좋고.
“하….”
광고를 닫자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알림이 울렸다.
[우주토끼 님의 최신 영상이 업로드되었습니다.]
“크림슨 세인트?”
요즘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여성향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문제는 연애보다 사람이 죽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온다는 거지.’
선택지 하나를 잘못 고르면 공략 캐릭터에게 죽는다.
정체를 들키면 실험체가 되고, 라이벌에게 남자를 빼앗겨도 게임 오버였다.
“이게 무슨 미연시야….”
하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재생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래 봤자 화면 속이잖아.’
무서우면 끄면 되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짤막한 인트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우주토끼가 선택지 하나를 클릭했다.
그러자 대화 중이던 캐릭터의 표정이 순식간에 식었다.
‘이거… 느낌 안 좋은데.’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갑옷들이 걸어 나왔다.
[??? : 잡아.]
플레이어 캐릭터인 성녀가 몸을 돌리는 순간, 검이 목덜미를 관통했다.
[GAME OVER]
‘…생각보다 훨씬 무섭잖아.’
그럼에도 나는 홀린 듯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덧 세 시간이 넘는 영상의 재생바가 절반을 지나고 있었다.
-미… 안해, 너… 면.
지직거리는 기계음과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왜 이래. 인터넷 연결이 이상한가.”
-할 수 있을 거야.
귓속을 파고들던 목소리가 일순간 선명해졌다.
우주토끼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얇은 미성이 나지막이 울렸다.
‘…이거 더빙도 되는 게임이었나?’
화면 속 자막에서는 어디에도 방금 들린 대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괜히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이상 현상이 나타난 건 등 뒤가 아니었다.
지지직.
책상 앞에 세워둔 핸드폰 화면이 일그러지더니….
쩌적. 쩌저적.
핏기 하나 없는 손가락이 불쑥 튀어나왔다.
화면 속 이미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입체적이었다.
“뭐, 뭐야….”
꿈이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의자를 밀어냈다.
화면 속에서 튀어나온 손은 느릿하게 내 쪽으로 뻗어 나오고 있었다.
-연노아.
무선 이어폰 속 스산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몸을 움찔 떤 나는 양손으로 이어폰을 빼내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오, 오지 마!”
정체 모를 손을 향해 소리치며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지, 집에 가야겠… 우읍!”
-잡았다.
거대한 손이 얼굴을 움켜쥐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몸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정신을 차렸을 때도 나는 여전히 실험실에 서 있었다.
피 냄새도, 거울 속 낯선 얼굴도 그대로였다.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고는 했지만….”
울먹거리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건 아니잖아.”
심지어 주인공의 손에 죽는 라이벌 캐릭터라니.
하늘이 내게 이럴 순 없었다.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데!’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게임에 빙의했다면… 자고로 상태창이 존재하는 법.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신반의하며 입을 뗐다.
“사, 상태창?”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눈앞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게임에 빙의했는데 상태창이 없는 게 말이 돼?!’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으려면, 우선 정체부터 숨겨야 했다.
이리스는 천재 연금술사였고, 아버지를 빼닮은 미친년이었다.
게다가 나는 연금술도 모르고, 미친년 연기도 해본 적이 없는 고등학생이었다.
2026.07.14 14:22
2026.07.14 02:17
2026.07.12 02:10
2026.07.11 22:59
2026.07.11 00:25
다음화 주세요
26.07.16
공포 미연시인 걸 잊고 있었네
26.07.16
루인이 생각보다 저돌적인걸
26.07.16
설렌다
26.07.16
게임 속인데 상태창 안 나타나는 게 신박해요
26.07.16
재밌게 보고 있는 작품인데 실시간 3위네요💗
26.07.15
4위 축하드려요!🥰
26.07.14
다음 화가 기대되네요~
26.07.14
정주행 시작합니다!
26.07.14
다음 화를 기다립니다! 진짜 재미있어요!
26.07.13
술술 읽히면서 흥미롭네요!
26.07.13
소재도 흥미롭고 몰입감이 있어서 다음 화가 기대되네요!
26.07.13
재밌더요❤️💕💋
26.07.13

다음 화 어디 있나요...? 나올 때까지 숨 참을게요
26.07.13
몰입감이 있는 소설작품이라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 정주행해볼려구요 :)
26.07.12
6위!! 응원합니다
26.07.09
묘사가 생생해서 좋아요
26.07.08
주인공 너무 웃겨요ㅋㅋ!
26.07.08
재밌네요~
26.07.08
몰입감있어요!
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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