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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영애와 북부대공의 평화로운 결혼생활
빈정원
16화무료 16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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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의 모두가 두려워하는 악녀 영애, 아델라인 블레어. 그러나 그녀의 진짜 소원은 권력도 복수도 아닌, 조용한 서재와 따뜻한 차 한 잔뿐이었다. 혼담마저 끊긴 그녀에게 내려온 마지막 선택지는 북부의 악당이라 불리는 대공과의 정략결혼. 피도 눈물도 없다는 북부대공 카시안 그레이브 역시 사실은 단것과 작은 꽃을 좋아하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남자였다. 문제는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완전히 오해했다는 것. “듬직하고 카리스마 있는 남편을 좋아하시겠지.” “냉철하고 완벽한 안주인을 원하시겠지.” 그리하여 악녀는 더 차갑게, 악당은 더 무섭게 굴기 시작한다. 하지만 눈보라 치는 북부의 성에서, 책과 꽃과 케이크 앞에 자꾸만 본모습이 새어 나오는데……. 세상은 그들을 악녀와 악당이라 부르지만, 두 사람은 그저 서로에게만은 가장 평화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로맨스판타지#쌍방삽질#오해물#정략결혼#착각물#로코물#잔잔물#치유물#힐링물#개그물#상처녀#다정남#상처남#순정남#존댓말남#짝사랑남

황도 사교계에는 세 가지 금기가 있었다.

첫째, 황후 폐하 앞에서 유행 지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지 말 것.

둘째, 로젠 백작 부인의 나이를 묻지 말 것.

셋째. 아델라인 블레어 영애와 눈을 마주치지 말 것.

“…첫째 블레어 영애예요. 어쩜. 그런 성격이긴 해도, 미모는 부정할 수 없네요.”

누군가 속삭이자,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음악과 웃음소리가 뒤섞인 무도회장이 아주 잠깐 조용해졌다.

검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틀어 올린 영애가 입장했다. 새하얀 목선, 짙은 남색 드레스, 붉은 보석이 박힌 브로치.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미모였지만, 올라간 눈매와 똑 떨어지는 콧날,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은 누가 봐도 한 성격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이지적인 회색 눈동자의 그녀는, 아델라인 블레어. 블레어 공작가의 장녀였다.

사교계에서는 그녀를 이렇게 불렀다.

블레어의 검은 장미.

뒤에서는 더 은밀한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침묵의 처형자, 웃지 않는 심판관.

그리고 가끔, 용감하거나 어리석은 이들이 말하는 별명도 있었다.

‘결혼 시장의 재앙.’

물론 아델라인은 그 어떤 별명에도 동의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꽂혔다.

아델라인이 등줄기를 곧게 폈다.

그녀가 오만해서가 아니었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더 많은 시선이 따라붙는다는 것을, 그녀는 열두 살 첫 사교 모임에서 배웠다.

‘보지 마세요.’

그녀는 무표정하게 샹들리에 아래를 걸었다.

‘제발.’

그녀가 무도회장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것이었다.

‘오늘은 쿠션 있는 의자가 남아 있을까.’

불행히도 없었다.

구석 자리는 이미 누군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런 행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운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무리 지어 수다 떠는 영애들 근처에 가지 않는다.

둘째, 술에 취한 남자들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셋째, 테라스 근처, 적당히 시원하고 외진 자리를 확보한다. 테라스 근처는 외질뿐더러 책에 나오는 것처럼 은밀하고 흥미로운 소문을 가끔 목격하기에 제격인 곳이었다.

목표를 포착한 그녀는 꼿꼿이 걸었다. 그 모습을 본 사교계 사람들이 쑥덕였다.

“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걸음걸이 좀 봐.”

“오늘 괴롭힐 상대를 이미 정해둔 거야.”

“역시 블레어의 검은 장미….”

실제로 아델라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저쪽 테이블에 레몬 쿠키가 있다.’

정말이지, 사교계란 피곤한 것이었다.

아델라인은 테라스 근처 작은 테이블 앞에 도착했다. 찻잔 하나, 쿠키 두 개, 그리고 오늘을 버티게 해 줄 책 한 권. 그녀는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쳤다.

무도회장 구석에서 다시 속삭임이 번졌다.

“책을 읽는 건가?”

“명단이겠지.”

“명단?”

“처형 명단.”

“역시….”

아델라인은 첫 장을 넘겼다. 책의 제목은 《제국 남부 식물도감 개정판》이었다. 아주 평화로운 책이었다. 아델라인은 쿠키를 한입 베어 물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눅눅해.’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웅성였다.

“오늘 밤 한 가문은 끝장났군.”

아델라인은 눅눅한 쿠키에 슬퍼하며 딸기잼이 남아 있는지 먼 허공을 응시했다. 잼 병이 비어 있었다. 오늘도 사교계는 잔인했다.

그때 누군가 아델라인에게 다가왔다.

“블레어 영애. 딸꾹.”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아델라인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책을 접었다.

최근 상단 투자 실패로 곤란을 겪고 있다는 덴버스 자작가의 차남이었다. 그는 평소 아델라인에게 말을 걸 용기가 없는 남자였지만, 오늘은 혈중알코올농도가 위험 감지에 실패한 듯 보였다.

“춤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무도회장 전체가 숨을 멈췄다.

누군가는 성호를 긋고, 누군가는 “젊은 나이에 안타깝군”이라고 중얼거렸다.

아델라인이 덴버스 차남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춤을 싫어하지 않았다. 다만 가족 행사 같은 편한 분위기에서는 괜찮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긴장 때문에 잘 나서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 새 구두를 신어서 뒤꿈치가 까졌고, 막 책을 펼친 참이었다.

그녀는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쉬고 싶습니다.”

덴버스 차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델라인은 그 얼굴을 보고 당황했다.

‘많이 무안했나? 미안해요.’

그러나, 쉬운 사과와 감사는 흠잡 힐 수 있는 것이 사교계의 언어. 그녀는 급히 덧붙였다.

“다음 기회에요.”

말하고 나서 아델라인은 속으로 얼어붙었다.

‘너무 여지를 준 건가? 아니면 너무 차갑나? 죄송하다고 한 번 더 말해야 하나? 아니야, 한 번 더 말하면 상대가 더 무안해질지도.’

덴버스 차남은 한 걸음 물러섰다.

“네, 넵… 제가 감히… 얼른 물러가 보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을 다르게 해석했다.

“들었어? 다음 기회래.”

“살려는 주겠다는 뜻인가?”

“아니야. 다음에는 직접 처리하겠다는 경고겠지.”

“덴버스 자작가도 이제 저무는군.”

덴버스 차남이 거의 도망치듯 물러났다. 아델라인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역시 거절하는 건 어려워.’

그녀는 다시 책을 펼치려 했다. 그때 아주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아델라인의 굳은 얼굴이 조금 풀렸다.

릴리아 블레어.

블레어 공작가의 차녀이자, 아델라인이 세상에서 가장 귀찮아하면서도 아끼는 동생이었다. 릴리아가 아델라인의 손을 꼭 잡았다.

“언니, 여기 있었네.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무도회장에서 뛰면 안 돼, 릴리아.”

“하지만 언니를 보면 나도 모르게 뛰게 되는걸. 또 혼자 있잖아.”

릴리아가 볼을 부풀렸다. 아델라인은 차분히 대답했다.

“혼자가 편해.”

“나랑 있는 것도 싫어?”

아델라인은 대답 대신 귀엽다는 듯 웃었다. 그 웃음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다르게 비춰서 문제였지만.

“어머, 뛰는 것 좀 봐. 릴리아 영애가 군기가 바짝 들었나 보네요.”

“대놓고 동생을 쫓아내려고 하네요. 저 무서운 얼굴 좀 봐요.”

“불쌍한 릴리아 영애….”

그들이 수군거리는 내용까지는 전달되지 않았지만, 무도회장의 분위기는 읽혔다. 아델라인은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담담하게 책을 펼치고, 릴리아는 수군거리는 영애 무리의 대화에서 언니를 좋게 말하려 애썼다. 그녀가 무도회장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우리 언니는 정말 착해요. 얼마나 마음이 약한지,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인다니까요.”

그 말에 주변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델라인은 진심으로 민망했다.

‘릴리아, 그만해 제발.’

릴리아가 열심히 항변해 봤자 이미 고착된 이미지는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벌레 한 마리 못 죽인다니. 그럼 벌레 대신 사람을…?’

‘릴리아 영애, 집에서 얼마나 바짝 길들여졌으면 이렇게 열을 내며 말하는 걸까.’

반면, 아델라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블레어 공작 부부는 딸의 사교 활동을 응원하고 있었다. 특히 블레어 공작 부인은 아침부터 아델라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우리 아델, 오늘은 좋은 사람들과 대화도 해 보렴.”

좋은 사람. 아델라인은 무도회장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 여기에서 좋은 사람은 못 찾을 것 같아요.’

그때 무도회장 중앙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이 사교 파티를 개최한 세실리아 후작 영애였다.

그녀는 황도 사교계의 꽃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금빛 머리카락, 푸른 눈, 계산된 미소. 그녀는 자신이 어느 표정을 지으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지 알고 있는 부류였다.

그리고 아델라인은 그런 사람을 부담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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