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개를 정화하고 아기가 되었습니다? "루리 하나두 안 아파요! 씩씩해요! 그러니까…… 버리지 마세요오……." 버림받지 않으려고 억지로 웃었을 뿐인데, 제국 최고의 폭군 공작가가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붉은 낙뢰가 온 대지를 찢어발기는 저주받은 땅, 바르카이바 영지. 멸망 직전의 영지를 구하기 위해, 공작 가문은 실리안 백작가에서 헐값에 제물 하나를 사들인다. 눈부신 은발에 시린 파란 눈을 가진, 10살짜리 아이 루리엘. 무시무시한 번개가 제단을 내리치던 밤,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루리엘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그저, 쓸모가 없어지면 다시 어두운 창고로 버려질까 봐 두려웠을 뿐. 벼락의 재앙은 멈추었으나, 제단 위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은빛 인형 같은 아이의 몸만이 남았다. "……숨을 쉬지 않습니다." 공작가가 지독한 죄책감과 슬픔에 잠겨 장례를 준비하려던 그 순간, 푸른 바다거품과 함께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웅……?" 죽었던 아이가 온전하게 살아난 것도 모자라, 헐렁해진 드레스 속에서 다섯 살 아이의 모습으로 깨어난 것! 그날 이후, 슬픔으로 메말라가던 바르카이바 성이 발칵 뒤집혔다. "너를 아프게 한 모든 것들을 제국에서 멸해버리겠다." 제물로 바쳤던 아이에게 구원받은 공작 아빠는 제국을 뒤엎을 딸바보 폭군이 되었고, "칼릭스 저리 비켜! 우리 루리 머리는 이 고모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땋아줄 거야!" 도도했던 기사단장 공녀는 아기 덕질에 목숨을 건 주접꾼이 되었다. 여기에 루리가 숲에서 주워온 정체불명의 아기 검은 마수까지, 발톱을 숨긴 채 얌전한 고양이인 척 루리의 곁을 맴돌기 시작하는데……? 벼락을 맞고 아기가 된 불사(不死)의 성녀님과, 그녀를 지키기 위한 에스카르디 공작가의 피눈물 나는 구원, 육아 판타지!
지독한 쇠 냄새가 바람을 타고 진동했다.
하늘은 이미 멍이 든 것처럼 불길한 자줏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폭풍전야의 고요 속에서, 영지의 장벽을 수호하는 고대 결계가 가늘게 비명을 지르며 요동치고 있었다. 단 이틀, 다음 적월의 밤이 찾아와 대지를 찢어발기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이틀뿐이었다.
지난달 적월의 밤, 바르카이바 영지는 멸망 직전까지 몰렸었다. 가주의 마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붉은 낙뢰 앞에 영지민들은 피눈물을 흘렸고, 가문은 절박한 심정으로 결계를 보강할 온갖 방법을 수소문해야 했다. 그렇게 실리안 백작가와 물밑 거래를 시작하고, 제물을 영지까지 데려오는 데 꼬박 한 달이라는 피 마르는 시간이 흘렀다.
백작가에서 전해진 말은 간단했다. 고대 심해의 가호를 받은 아이라, 번개를 그저 무해하게 흡수해 정화할 뿐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칼릭스는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그것이 자신을 향한 최소한의 면죄부이길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거래의 결과물이 도착하는 날이었다.
바르카이바 공작성 가장 깊고 은밀한 탑 꼭대기, 출입을 철저히 제한한 가주실의 묵직한 철문이 굉음과 함께 열렸다.
벌컥 -!
난폭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구두 굽 소리가 차가운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때렸다. 가주실 안쪽, 영지의 심장이라 불리는 거대한 결계석을 붙잡고 겨우 서 있는 사내가 있었다.
바르카이바의 영주, 칼릭스 에스카르디.
그의 입술은 한달 전 역류한 마력의 흔적으로 거칠게 부르터 피딱지가 앉아있었고, 자수정처럼 투명하던 자안은 핏발이 서 지독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피폐한 몰골이었으나, 칼릭스는 부러질 듯한 손가락으로 결계석을 움켜쥐며 억지로 마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단 이틀 뒤에 쏟아질 재앙을 막기 위해, 자신의 수명을 갉아먹는 마지막 사투였다.
가주실로 침입한 붉은 머리의 기사단장, 아델라가 분노로 어깨를 들썩이며 단숨에 제 남동생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주저 없이 손을 치켜들었다.
짝 -!
무자비한 마찰음과 함께 칼릭스의 고개가 옆으로 거칠게 돌아갔다. 터진 입술 사이로 피 한 방울이 베어 나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칼릭스! 너 제정신이야?”
아델라의 황금빛 눈동자가 벼락보다 사납게 이글거렸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방에 처박혀서 궁리한 결과가 고작 이거야? 어린아이의 목숨을 방패 삼아 이틀 뒤의 번개를 막아내겠다고? 네가 그러고도 에스카르디의 가주야!”
뺨을 맞은 칼릭스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메말라 있었다. 평생 동안 온몸을 다해 제국과 마계의 경계를 지켰건만, 황실은 매번 위로의 서신과 약간의 구호물자만 보내올 뿐, 정작 근본적인 해결에는 손끝 하나 대주지 않았다. 가문에 내려진 가혹한 저주 앞에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선대 가주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더냐? 가솔들 앞에서 그렇게 반대했건만, 결국 이 지경까지 몰아붙였구나. 원로들의 협박에 무릎을 꿇은 것이냐, 아니면 네 스스로 이 미친 짓을 결심한 것이냐?”
자신이 결계 끝에서 마수와 싸울때, 결계를 보강하겠다던 동생이 내놓은 해결책이 겨우 이런 바보같은 거라니.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 어쩌지, 누나.”
칼릭스의 갈라진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여기서 손을 놓으면, 이틀 뒤 찾아 올 낙뢰에 바르카이바 영지민 수만 명이 가루가 되어 사라져.”
그의 손에서 나오는 붉은 마력은 어느새 전에 보았던 것보다 빛이 사그라들어 있었다.
“알고 있잖아, 지난 번에 내 마력이 바닥났다는 걸.”
“칼릭스……”
“가루가 되는 건 그녀와…”
칼릭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내 아이만으로 충분해.”
성을 내며 칼릭스를 꾸짖던 아델라는, 칼릭스가 언급한 두 사람에 의해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지금의 상황이 비윤리적인 것을 알면서도, 눈 앞의 칼릭스는 죽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실리안 백작가에선 그 아이를 짐짝 취급하며 격리하고 있다지. 사생아인 주제에 기이한 힘을 타고나서라던가, 그쪽 백작 부인이 그 어린아이를 죽이려고 안달이더군. 어차피 버려질 목숨이라면, 더 많은 목숨을 구제하기 위해 쓰는 게 이치 아니겠어? 비난은 내가 감당하겠어. 내가 치러야 할 죗값은 이미 많으니, 이것 또한…”
“내가 지옥에 가면 그만이야.”
칼릭스의 눈에 서린 지독한 자기혐오에 아델라는 이를 악물었다. 동생의 뺨을 때린 제 손바닥이 화끈거렸지만, 가슴속을 후벼파는 비통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 가주실의 창밖 너머로 덜컹거리는 마차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자주빛 어둠을 뚫고 실리안 백작가의 문장이 새겨진 낡고 볼품없는 마차 한 대가 공성의 철문을 지나 안뜰로 들어서고 있었다.
2026.07.3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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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3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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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31 20:54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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