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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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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세
62화무료 62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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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강의 퇴마사, 백산이 죽었다. 그리고, 그 여동생 백화의 복수가 시작된다.

공모전 참여작#현대판타지#동양풍#현대#피폐물#복수#성장물#트라우마#권선징악#걸크러시#냉정녀#존댓말남#집착남#나쁜남자
공지
휴재

거대한 문.


시커먼 먹구름 모양의 그림이 새겨진 그 철제의 문은

언제고 굳건히 그 넓은 연구소의 한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높이는 족히 빌딩 수준은 되어 보였으며,

두께는 또 어찌나 두꺼운지, 손이나 돌멩이 정도로

두드려선 소리가 제대로 울리지도 않았다.


마치 거대한 절벽을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그 문은, 언제나 그 연구소의 상징이자 유일한

비밀로 존재했다.


신입이던 그에겐 그 문이 언제나 의문이었다.


온갖 기계장치들만이 늘어진 이곳에, 어째서

저 영문 모를 문 하나가 놓인 것인가.


모두가 바삐 일하는 이 연구소에, 어째서

저 쓸모없는 문이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가.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그날 만큼은 모든 연구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구름무늬의 그 거대한 문을 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연구원이 업무를 내팽개쳐두고 그 넓은

문 앞의 광장을 향했다.


하나둘씩 그 문에 대한 저마다의 추측과 괴담들을

떠올리며 잡담과 함께 기대감과 공포심을 키웠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연구원을 가둬 둔다는

소문도 있었고, 팔에서 로켓이 발사되는 거대 로봇이

잠들어 있다는 말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유력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저주가 담겨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가늠도 가질 않는

그 소문은,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음에도

가장 오래 남아 그 문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했다.


저주를 탐구하는 연구소에 저주를 봉인시켜 놓은

문이 있다는 것 자체는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지만,


저 정도 규모의 장치가 필요한 저주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게 사실이었다면, 대체 누가 그 저주를

감당했겠는가.


누구의 인생에서 그 저주가 비롯되었고,

대체 어느 누가 그 저주를 봉인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신입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문을 열 준비가 되었다는 연구소장의 한마디 이후,

새로이 나타난 이는 바로 연구소장에게 딸인

백화였다.


그녀는 등장과 동시에 흰 가운의 연구원들을 헤치며

거대한 문 앞의 정중앙에 섰다.


갈색 머리에 단발을 하고서 흰 와이셔츠를 입은

그녀는,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었을 터였다.


그녀는 오똑한 코와 날카로운 눈매에, 그 특유의

차갑고 무신경한 분위기로 많은 사람들의 화두에

오르곤 하였다.


특히, 왜인지 모를 울적해 보이는 분위기와

무신경한 듯, 공허한 듯한 그 텅 빈 눈빛은

묘하게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게 만들었다.


정말 묘하게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여자였다.


'이번 일의 적임자가, 저 아이라는 건가?'


늘 무뚝뚝하고 숫기 없는 아이.

라고 알려진 듯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그녀에 대한 소문인지, 혹은 파헤쳐진 비밀인지는

정확히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던 하나의 이야기는,


오래전 부모를 잃고 하나 남은 가족인 오빠 백산과

살고 있던 그녀가,


백귀야행단에게 오빠를 잃고 감정을 잃은 복수귀가

되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그런 아이를.. 퇴마사로 훈련시키기 위해 소장님이

입양하셨다는 거지."


신입의 옆에 서 있던 동료가 우스갯소리를 흘리듯

장난스럽게 말했다.


백화의 오빠라고 알려진 백산은 너무나 유명한

퇴마사였기에 그의 실종 소식은 모두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백화가 정말 그 백산의 가족인지는 증명되지

않았지만, 정황상으로 이뤄진 추측이 정설로

굳어버린 것이었다.


"설마요. 백귀야행이라니, 그런 동화 같은 얘기를.."


그는 사실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상상치 못할 상처와 고독을 앓는 아이인 백화를,

그런 허구로 단정 짓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화의 눈엔 늘 텅 빈 유리잔처럼 흔들리지 않지만

결코 빛이 비치지 않는 무언가가 차 있었다.


늘 생기 없는 눈빛과 차가운 태도.

그것이 모두가 아는 그녀였다.


그러나 그에겐 또 한 명의 그녀가 있었다.


연구소장의 방에서 홀로 숨죽여 눈물을 훔치던

작은 소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때문이었다.


그는 백화에겐 보다 단순하지 않고 더욱이

고독한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의 추측이 차례차례 오가던 와중,

연구소장의 신호와 함께 굉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우레가 하늘을 뒤덮는 듯한,

그런 경외스러운 소음이.


쿠구구궁..


먹구름의 문양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문에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아주 작은

틈새가 생겨났다.


터벅. 터벅. 터벅.


백화는 그곳으로 가만히 걸어가, 빛 한 점 닿지 않는

그 눈으로, 시커먼 문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안개. 여기 있었구나."


백화가 문 안의 모습을 보고 혼잣말을 했다.


'안개라고..?'


신입은 그 작은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혼자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안개는 그를 포함한 연구소원들 전체를 이루는

칭호였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이 연구소의 이름이 안개였다.


희뿌연 안개가 존재감 없는 말단인 그들을 칭하는 데

적절하기 때문이었을 거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신입은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그 문틈 사이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문 안쪽에서 정체 모를 어둠이 새어 나오고,

바닥을 기어다니는 시커먼 안개가, 연구소의 바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 음습함의 흔적은, 마치 수십만 마리의 개미 떼나

악몽 속의 거대한 늪과 같았다.


"으아아악!!"


맨 앞줄의 비명을 시작으로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털썩.


"어어.. 억.. 어어억.."


신입은 그 안개에 발이 닿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쥐어뜯으며 죽을 듯이 괴로워했다.


그의 머릿속엔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참혹히 난도질해 살해하는 장면이 지나갔다.


자기 부모를 제 손으로 불태워 죽이는 장면이

지나갔다.


그리곤 용서받지 못할 수십 가지 욕망의 모습이

지나갔다.


지금의 그가 다신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고작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터벅. 터벅.


오직 백화 한 사람만이,

그 안개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그녀는 그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그 거대한 문 사이를 스스로 걸어 비집고 들어갔다.


그 무엇도 비치지 않는 어둠 속으로 그녀의 모습은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벽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즈음에서야, 연구소장은 겨우 문을

닫았다.


다시금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가까스로 혼란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연구소 벽에 짙은 혈흔과 오물이 잔뜩 묻고,

거품을 물고 쓰러지거나 미쳐버려서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 그 뒤로 한참 정적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고는 해야 할 업무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각자의 집을 향했다.


하지만 신입은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이젠 백화를 향한 걱정보다, 단순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그곳에 남아 결과를 지켜보았다.


이제는 안개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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