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한 재앙아래 탑은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나는 회귀했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1화 회천(回天)
■■■─!
거대한 굉음이 천지를 분간하지 않고 울려 퍼진다.
흡사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희미해졌던 정신을 일깨운다.
“허억…!”
깊은 심해에서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가라앉고 있다 급격히 떠오른 사람이 숨을 쉰다면 이렇지 않을까.
“하,하하…”
그렇게 심해에서 떠오른 나는 여전히 꿈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것의 끝이라는 이름의 꿈을.
세상의 멸망이라는 최악의 악몽을 말이다.
“썩을…”
몇십 년 전부터 탑에, 암암리에 퍼지던 소문이 있다.
어떤 이가 찾은 유적의 벽화에 재앙이 예견되어 있다고.
한 위대한 존재가 스스로 탑의 천장을 부수고 바깥의 위대한 영광을 가져올 것이라고.
─■□■□■□?!
나는 허망하게 고개를 들었다.
탑의 천장.
결코 뚫릴 리 없으리라 모두 가 여기던 드넓은 창천(蒼天)
그 하늘이 아니 탑의 천장이 무너져 내린다.
탑의 천장 넘어로 보이는 바깥은 흡사 끝없는 무저갱과 같았고, 그 이해 못 할 구덩이에서는 기분 나쁜 부정형의 존재들이 기어 나와 탑을 끊임없이 갉아먹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한가운데,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 보인다.
인간과 신 혹은 마왕과 수많은 이종족들이 한대 모여있는 시체의 산.
저 고고한 개자식은 진정 귀천의 구분이 없는 위업을 이루고 피의 바다를 흘겨보고서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본다.
등천자(登天自)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 끝내 혜성(彗星)이 되어버린 탑의 찬란한 별.
그는 백 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탑의 정점에 올랐고, 불과 십 년 만에 탑을 멸망시켰다.
그의 발짓 한 번에 출신의 구분 없이 모인 등반자들의 연합이 한 줌의 핏물로 사라졌다.
그의 손짓 한 번에 신들은 그 찬란한 근원째로 소멸해 땅바닥에 처박혔고
오만한 마왕들은 등천자에 의하여 손수 나락의 끝자락에 존재하는 영원히 타오르는 강에 가라앉았다.
그렇게 등천자의 토벌이라는 유일한 기치 아래 탑의 모든 이들이 유례없는 규합을 했지만 끝내 무너지는 탑 바깥의 무저갱 속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이었다.
텁…
“...!”
누군가가 나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아래를 바라보니 끔찍한 몰골을 가진 누군가가 있었다.
얼굴의 반쪽은 녹아내렸고, 하반신은 무언가의 뜯어먹힌 듯 보였다.
그 누군가는 하나 남은 팔로 내 다리를 부여잡은 채 절실하게 혹은 악의 에 가득차 나를 바라본다.
“끄, 끝내…이걸로 저…개…”
입가에서 피거품을 들끓으며 무너지는 발음으로 간신히 남긴 말은 등천자를 죽이라는 말이었다.
누군가는 그 말조차 끝맺지 못한 채 숨이 멎었다.
달그락…
그와 함께 무언가가 떨어진다.
떨어진 물건은 단 한 자루의 총과 탄환이었다.
나는 그것을 주워 들고 나직이 읊조린다.
“이걸로…끝낼 수 있을까…?”
자신은 없다.
한낮 범계출신의 등반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조차 기적에 가까운 상황이다.
-띠링!
───
【인과를 꿰뚫는 사수의 총】
종류:총
등급:파악하기에는 격이 부족합니다.
효과:파악하기에는 격이 부족합니다.
소유자:무명(임시)
───
───
【필멸의 탄환】
종류:소모품
등급:???
효과:탑에 존재하는 모든 강대한 존재들의 원혼으로 빚은 단 한발의 탄환입니다.
상대가 어떤 존재라도 그 운명을 빗껴 죽음을 선사합니다.
───
‘인과의 사수…’
들어본적 있는 이름이다.
그 사수가 목표한 존재는 그 존재가 어디에 있고 어디에 존재하든 인과를 초월하여 반드시 맞춘다는 전설적인 등반자.
그 전설적인 존재가 방금 내 발밑에서 처참하게 죽은 그자의 정체였다.
철컥!
“그래…해보자,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탄환을 장전한다.
놈을 조준한다.
총에 흐르는 신비가 처음으로 총을 잡아본 나의 자세를 교정하고 목표를 고정한다.
무엇이든 맞출 수 있으리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몸속 깊은 곳에서 솟구친다.
“헉…”
그 순간이었다.
등천자의 서늘한 푸른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총에 의해 강화된 시력에는 놈의 눈가에 비치는 내 모습이 보인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맥동한다.
다리가 떨린다.
떨림은 하체에서 상체로 전달되어 방아쇠를 잡은 손가락으로 그리고 숨결로 이어진다.
덜덜…
눈앞이 떨린다.
세상이 떨리는 듯하다.
그 순간 놈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하더니 내게 손을 뻗는다.
“흐...!”
탕!
놈이 내게 손을 뻗자 떨림이 멈춘다.
경직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경직된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고, 밤하늘의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듯한 불을 뿜으며 탄환이 날아간다.
푹!
등천자의 머리에 검은 점이 생긴다.
그와 동시에 실이 끊긴 인형처럼 등천자가 쓰러진다.
콰르릉…
쓰러진 등천자는 발밑의 땅이 무너지며 그의 시신은 끝없는 무저갱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하아…하아…”
털썩!
죽였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하,하하…하하하…”
얼굴로 손을 깊이 쓸어내린다.
뭘 해야 하지?
다른 이들처럼 저 무저갱 속으로 떨어질까?
아니면 저 이름 모를 괴물들에게 산채로 뜯겨 죽어야 할까?
뭘…해야만 하지?
고민하는 와중에도 세상은 무너져 간다.
난 농부를 없앴을 뿐 농부가 뿌려둔 씨앗을 거두진 못했다.
-띠링!
[당신은 죽음이 예정되지 않은 존재에게 죽음을 선사했습니다.]
[‘등천의 명’을 가진 자의 사망으로 그 운명이 소실…]
죽음이 예정되지 않은 존재라…
애초부터 등천자는 세상이 안배한 필연적인 죽음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이루고 싶은 것은 다 이루고 죽은 거네’
참…복도 많은 놈이다.
그놈으로 인해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지 못한 자들과 시도도 못 해본 자들이 수두룩해졌는데 말이다.
[운명의 절대성으로 인해 운명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
운명이란 운명의 주인이 사라지는 순간 소실된다.
그것은 탑에 몇 안 되는 절대적인 법칙이다.
하지만 등천자의 운명은 탑에 거대한 힘조차 거스르는 무언가였다.
[주인 없는 운명이 자신의 주인을 찾습니다.]
[운명이 자신을 감당할 존재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합니다.]
[운명이 탑에 있는 유일한 생명에게 깃듭니다.]
그와 동시에 내 몸에 아니 영혼보다 깊은 존재의 근간이 되는 것에 거대한 무언가가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몸에서 아득한 격이 느껴졌다.
범계에 존재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는 위대한 명(命)의 힘이.
거대한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초라한 그릇이 범계출신의 등반자가 탑의 중간층 이상을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것이 드디어 손에 주어졌다.
“모든 게 끝난 뒤에 말이지…”
아까부터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그렇게 실소(飋訴)를 끝없이 흘리며 메시지를 바라본다.
[운명이 주인의 그릇을 판단하고 자신의 힘을 100분의 1로 억제합니다.]
[특성‘소천명(小天命)’을 획득합니다.]
치이익…!
“끄아악…!”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항거할 수 없는 작열통이 느껴진다.
영혼에서 피어난 불꽃은 서서히 퍼져 나의 살갗을 태우기 시작했다.
[‘인과를 꿰뚫는 사수의 총’을 사용한 반동이 찾아옵니다.]
[존재의 격이 부족하여, 반동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방법을 마련하지 않으면 당신은 ‘0.1초’내에 사망합니다.]
“하…”
눈앞이 아득해진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극단에 이르니 역설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펑.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당신은 이룰 수 없는 업적을…]
[‘회귀’를 시작합니다.]
*****
“후우…”
그게 벌써 한 달 전이다.
회귀한 지 정확히 한 달째 되는 날.
무명은 검 한 자루와 짐 몇 개를 챙기고 다시 탑으로 향한다.
“이거 하나 사는데, 한 달이나 걸릴 줄은…”
철컥.
무명은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바라보며 허탈한 듯 웃는다.
동내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는 대장간에서 만든 직검.
대략 수백 년 만에 처음 집어본 탑이 아닌 범계의 검.
미세하게 어긋난 무게중심 하며, 마감까지 탑제 무기와 달리 전부 실망스러운 퀄리티를 보여준다.
“뭐, 이것도 감지덕지지만.”
회귀 자체로 큰 기회다.
범계출신이 회귀해서 다시 탑을 오른다 한들 결국 한계는 명확하다.
다른 이들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물론 그게 당연한 거긴 하지만.”
자신 역시 몸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다시 탑을 올라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운명(運命)
범계출신에게는 쉬이 허락되지 않는 상승의 자격.
내게 깃들었던 운명의 힘이 회귀 전과 비교하면 한없이 미약하지만, 확실히 느껴진다.
‘물론 정확한 진상을 알려면 탑에 들어가야겠지만.’
저벅…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탑이 보인다.
드높은 탑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한없이 뻗어나간 천외의 마천루(摩天樓)가.
“허…”
웃음이 나온다.
다시 보면 그저 착잡함과 이유 모를 투지만 느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반갑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하긴…탑을 오르는 것 말고는 먹고사는 방법도 다 까먹었으니까.’
웅성웅성…
어느 순간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탑의 주위에 있는 무수한 무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쪽 눈이 없는 사냥꾼과 약소한 도적단.
명예를 잃고 이 변방까지 쫓겨난 기사
탑의 전설을 듣고 흥미와 젊음에 오기에 젖어 탑에 찾아온 마을의 청년들.
그들의 인상과 출신은 모두 가지각색이었으나 같은 것은 하나 있었다.
탑이라는 탐스러운 미몽(迷夢)에 홀려 강렬한 열망을 품은 두 눈.
‘나 역시 저들과 같았지.’
탑에 들어간다면 이 시궁창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 끝없이 노력하고 정진하는 그런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그런 생각은 탑에 들어가자 마자 박살 났지만.”
그렇게 인파를 헤쳐 가며 탑에 다가간다.
그렇게 탑의 입구에 손을 뻗는 순간.
“이야~이게 누구야?”
뒤에서 껄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텁…
그와 동시에 고생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듯한 손이 어깨에 올려진다.
그곳에는 비열한 인상을 가진 한 명의 청년이 있었다.
“...”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죽 갑옷과 검 한자루를 차고 있는 하얀 피부와 연노랑빛 머리를 가진 청년.
“오랜만이다. 무명.”
2026.08.12 21:29
2026.08.11 22:19
2026.08.10 23:46
2026.08.09 19:47
2026.08.08 21:19
2026.08.07 23:13
2026.08.06 23:30
2026.08.05 22:58
2026.08.04 21:52
2026.08.0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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