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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적 낙원
XOPlanA
28화무료 28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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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그렇게 무서워요? 그럼 내가 그 새끼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되어볼게요.”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은 말을 듣고 이안은 제 귀를 의심했다. 양아버지인 윤 사장의 통제와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골목길에서 교복을 처절하게 벗어던진 윤성가의 가짜 도련님, 윤이안. 위태로운 맨몸 위로 사생아 윤태건은 제 교복을 벗어 입혀주었다. 무너진 이안에게 태건의 이름이 새겨진 옷이 덮이고, [윤태건 거]라는 타인의 목소리가 울린 그날부터였을까. 한동안 눈에 띄게 거칠었던 태건이 본래의 성정에 맞지 않게 낯설 만큼 다정한 눈웃음을 치며 예쁜 가면을 쓴 채 파고들기 시작하는데……. “형 처음 하는 건 저랑 하면 안 돼요? 전부 다요.” 가증스러울 정도로 달콤하게 귓가를 간지럽히는 태건. 이안은 뜨거울만큼 느껴지는 그 열기가, 단지 계절탓이라고 생각했다. “그거 알아요? 난 윤성가에서 받은 물건에 제 이름을 적은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그만큼 욕심나는 게 없었는데 이젠 생긴 거 같아요.” 의미 모를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너무 예뻐요.” 강변의 노을을 보며 말하는 줄 알았는데 시선이 뚫릴 만큼 집요하게 나를 향해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형이 말했다시피 불륜만 아니면 되잖아요. 형” 그러고선, 녀석이 단단하게 깍지를 쥐여왔다. 윤 사장이라는 잔인한 덫에서 벗어나기 바쁜 이안의 세계. 그 틈을 타 소리없이 파고든 태건의 다정의 덫은, 감히 상상도 못 할 만큼 깊고 지독했다. “그러니까 형의 세상에, 나 말고 다른 놈 흔적은 안 돼요. 그게 윤사장이라도.” *** 수 ─ 윤이안(28->17, 178cm) #회귀수 #트라우마수 #상처수 #단정수 #눈치없수 공 ─ 윤태건(27->16, 193cm) #계략공 #연하공 #집착공 #여우공 #가식공 #미친놈이공 #동정공

#BL#현대#캠퍼스#성장물#첫사랑#회귀#치유물#짝사랑#소유욕/독점욕/질투#얼굴천재#대형견공#다정공#연하공#재벌공#존댓말공#짝사랑공#헌신공#단정수#미인수#얼빠수

끝없이 젖어 있는 숲 속.


짙고 검은 나무들이 폭우 속에서 느리게 흔들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물기를 머금은 가지들이 서로 얽혀 스쳤고, 낮고 거친 마찰음이 짐승의 숨소리처럼 숲 깊은 곳을 울렸다.


그 한가운데.

저택은 고립된 섬처럼 잠겨 있었다.


오래된 회색 외벽 위로 쉼 없이 빗물이 흘러내렸다. 

축축하게 젖은 벽면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윤기를 띠고 있었고, 넓은 통창 너머로 새어 나오는 흐린 불빛만이 이곳이 사람 사는 곳임을 겨우 알릴 뿐이었다.


활짝 열린 2층 창문 사이로 하얀 커튼이 거세게 휘날렸다. 

거친 비바람이 방 안까지 깊숙이 밀려드는 중이었다. 

젖은 커튼 자락이 허공 위로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힘없이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물속에서 위태롭게 허우적대는 꼴이 제 처지와 꼭 닮아 있어, 이안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열린 창가 앞 철제 난간에 몸을 기댄 그는 한쪽 팔을 창밖으로 길게 내밀고 있었다. 차가운 빗물이 손등과 팔뚝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셔츠 소매가 피부에 달라붙으며 가느다란 손목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힘이라고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자세. 

팔에 체중을 실은 채 비스듬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은, 당장이라도 저 아래의 어둠 속으로 추락할 사람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젖은 머리칼이 흐트러지며 창백한 뺨 위로 빗방울이 흩어졌다. 빗물에 젖어 무거워진 속눈썹이 아래로 깊은 음영을 드리웠다.

그런 그의 발치 너머, 이미 엉망이 된 방 안은 처참했다. 

젖은 카페트 위에는 마시다 만 술병과 깨진 유리 조각이 날카롭게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에는 읽다 만 책들이 무너진 탑처럼 흩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만화책 몇 권도 아무렇게나 뒤섞여 빗물에 젖어 있었다.


-부르릉.


저택으로 진입하는 자동차 엔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안은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폭우 속에서 나무들이 뒤틀려 대고 있는 숲 너머의 어둠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 숲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이 저택 자체를 천천히 집어삼키고 있는 것처럼.


멀리서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젖은 구두 소리가 정원 돌계단 위로 이어졌다.


저벅.

저벅.


일정하게 울리던 발소리가, 이내 바로 아래에서 딱 멈춰 섰다.

이안은 제 손목을 타고 흐르는 빗물의 감촉을 음미하며, 멍하니 그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우산 아래 선 남자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결 좋은 까만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윤태건.

제 동생이었다.


어느새 이안보다 훨씬 커진 몸.

젖은 셔츠 아래로 단단한 어깨선이 드러나 있었다. 날카롭게 정리된 턱과 짙은 눈매는 어릴 적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익숙했다.

오래 묵은 원망과 혐오가 뒤엉킨 눈. 


빗소리만 숲을 가득 메우는 동안,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태건은 온몸이 비에 젖는 것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우산을 쥔 손을 느슨하게 뒤로 기울였다.

그리고 창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이안을 샅샅이 훑어내리듯 시선을 옮겼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흔들리는 난간 끝. 

그곳에 닿은 태건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쯧.”


거칠게 혀를 찬 태건은 우산을 접어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리고 곧장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쿵.

쿵.


그리고 다음 순간, 멱살이 거칠게 끌려 올라갔다. 동시에 이안이 힘없이 기대고 있던 난간이 삐걱, 낮게 흔들렸다. 

그가 이안을 벽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등이 벽면에 세게 부딪혔다.


“읏.”


한 손으로는 이안의 멱살을 틀어쥐고, 다른 한 손은 이안의 머리 위 벽을 높게 짚어 팔꿈치를 굽혔다. 꼼짝없이 벽과 태건의 단단한 품 사이에 갇힌 꼴이 되었다.

숨이 짧게 막혔다.


“형은.”


태건의 목소리는 낮고 잠겨 있었다.


“사람 돌게 만드는 데 타고났어. 알아?”


턱 끝을 타고 차가운 빗물이 떨어지는 가운데, 이안은 흐릿한 시선으로 자신을 붙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이안은 젖은 입술 끝을 천천히 비틀었다.


“아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랬나?”


순간 태건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을 압박하는 거친 악력에도 이안은 오히려 태건의 단단한 목덜미를 감아쥐며 제 쪽으로 가깝게 끌어당겼다. 


“그런데... 윤태건.” 


이안이 태건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너도 원래 정상은 아니었을텐데?” 


태건의 숨이 거칠게 흔들렸다. 한동안의 침묵 속 빗소리만이 요란하게 방 안을 메우고 있었다.

이안은 축 늘어진 눈으로 태건을 올려다봤다.


붉게 충혈된 눈.

비에 젖은 검은 셔츠가 탄탄한 몸 위로 무겁게 들러붙으며, 단단한 어깨선과 팔 근육을 희미하게 드러냈다.

그의 성정을 투영하듯 굵고 강인한 선으로 이루어진 얼굴. 지금은 그저 턱선 근처의 근육만이 지나치게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우습네.

왜 참는 거지?

그냥 버리면 되잖아, 윤태건. 

그런데 왜? 

도대체 네가 왜?


이안은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서로의 옷깃이 맞닿을 만큼 좁혀진 거리였다. 거칠어진 숨 사이로 젖은 빗물 냄새와 희미한 체취가 뒤섞여 스며들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웃음기 어린 이안의 눈을 응시하던 태건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멱살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서로를 향한 눈빛이 강하게 얽매이는 느낌에 이안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태건은 시선을 떼지 않고 힘없이 미끄러진 손으로 그의 팔을 타고 내려가 뼈마디가 도드라진 가느다란 손목을 쓸어내렸다. 

가라앉은 침묵이 무겁게 닿아오자, 이안은 눈을 내리깔았다. 

제 시선을 피하듯 내려앉는 속눈썹을 응시하던 태건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의 목덜미 가에 코끝을 묻었다.

창백하리만큼 하얀 살갗 아래로 배어 나오는 알코올 향을 확인하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살결에 닿은 호흡 위로, 낮게 잠긴 목소리가 울렸다.


“또 마셨어?”

“응.”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창밖으로 던진 채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안 마시면 못 견디겠던데.”

“형.”


태건이 고개를 들었다. 이안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힘이 빠진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나, 며칠 자리 비워.”


이안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회사 일 때문에.”


나직하게 읊조린 태건이 붙잡고 있던 이안의 손목을 이끌었다. 힘없이 따라오는 몸을 그대로 침대 끝에 앉혔다.

곧이어 수건을 가져와 이안의 머리와 몸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닦아주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얌전히 있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감금해 놓고 걱정까지 해 주네.”


비웃음이 섞인 말에 태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조용히 식어 내렸다. 

태건은 이내 짓눌린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드레스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시 뒤, 한여름에 입기에는 지나치게 두터운 짙은 색 스웨터를 들고 나온 태건이 말없이 이안의 앞에 멈춰 섰다.

젖은 셔츠에서는 아직도 차가운 빗물 냄새가 났다. 이안은 축축한 셔츠 자락을 손끝으로 대충 쓸어내렸지만, 물기를 머금은 천은 이미 피부에 달라붙어 기분 나쁘게 식어 있었다.


곧 태건의 손이 이안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리기 시작했다.


툭.

툭.


젖은 천이 느리게 벌어졌다. 태건의 손끝이 스칠 때마다, 빗줄기에 차갑게 식은 피부 위로 낯설 만큼 뜨거운 체온이 번져왔다.


두 번째.

세 번째 단추쯤 내려왔을 때.

그의 손길이 문득 멈췄다.


하얀 단추 위를 손끝이 천천히 짓눌렀다. 이상하리만치 느리고 무거운 움직임이었다.

빗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이안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젖은 머리칼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쇄골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태건은 그 자리에 머물던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없이 침을 삼켰다.

굵은 울대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곧 그가 손을 거두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갈아입어.”


낮게 긁힌 목소리였다. 


“그래.”


이안은 잠시 늦게 대답했다.


“술은 안돼.”


태건은 이번엔 대답 없이 입을 다문 이안을 잠시 바라보다 방문으로 걸어갔다. 문고리를 쥔 채, 그가 낮게 덧붙였다.


“삼촌이 우리쪽으로 돌아섰어. 곧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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