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천 당가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던 당호, 정체불명의 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던 그는 남궁 세가의 도움으로 마지막 희망을 품고, 강호에서 자취를 감춘 화천신의 이설헌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게 된다. "미안하네... 이 병을 완치하기는 힘들 것 같네..." 무겁게 입을 연 이설헌에게 들은 말에 절망하던 찰나 이설헌에게 뜬금없이 500년전에 천마를 죽인 무존의 숨겨진 전설을 듣게 된다. "무존의 무덤을 찾게. 그럼 자네의 병 또한 완치할 수 있을 걸세." 이설헌의 말에 희망을 얻게 된 당호에게 이설헌은 하나의 부탁을 하게 된다. "저 아이를 데려가 주게." "예?" "저 아이는 다른 이들이 보기엔 그저 이상한 영물이겠지만 내게는 이 세상에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 소중한 손녀라네" 그렇게 당호는 이설헌의 내력으로 사람처럼 살아가는 신비한 영물 '우리'와 함께, 무존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매서운 겨울을 견뎌낸 꽃들이 따스한 햇살 아래 하나둘 만개하기 시작한 봄날이었다.
사람들은 볕 좋은 마당에 옷을 말리기 위해 빨랫감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왔고, 고양이들은 맑은 햇빛을 받기 위해 마당에 누워 날아다니는 나비를 바라보고, 아이들과 강아지가 나비를 쫓아 뛰어다니는 소리만이 골목을 가득 메운, 평화로운 오후였다.
“우리야아악!!!!!!! 이우리!!! 너 오늘 잡히면 진짜 죽는 줄 알아!!!!!!!!!!!!!!!!!!”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여성이 눈에 불을 켠 채 아수라 같은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몸보다도 큰 타구봉이 후웅, 후웅 파공음을 내며 허공을 시원하게 갈라냈다.
사락…사락..사락….
챱
풀숲에서 주황빛 머리칼 위에 나뭇잎을 얹은 여자아이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조심스레 풀숲 밖으로 기어 나온 후 옷에 묻은 풀잎을 탈탈 털며 아이가 씩 웃었다.
“히히. 역시 못 찾았지롱. 히히힛 역시 바부구만.”
우리는 여성이 지나간 길을 보며 낄낄 웃다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풀숲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한 남성이 풀숲 사이를 걸어 나왔다.
길게 흐트러진 검은 머리와 창백할 정도로 핏기 없는 얼굴. 힘겹게 숨을 고를 때마다 창백한 입술이 희미하게 떨리는 모습이 돋보였다.
짙은 청록색 옷자락이 수풀 사이로 느릿하게 흔들렸고, 짙은 갈색 장갑을 낀 손이 눈앞의 풀숲을 가볍게 가르고 있었다.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 마을이 신의 이설헌(李雪巘) 어르신이 계신 곳이 맞느냐?”
“네, 맞아요.”
“그래? 그럼 신의 어르신이 계신 곳으로 안내 좀 해줄 수 있겠느냐?”
“아뇨. 안돼요.”
“그래, 그래. 어서 가자구나. 응, 뭐라고?”
“아조씨가 누군지 제가 뭘 믿고 알려드려요?”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물듯한 기세로 남성을 노려보았다.
“아, 나는 당호(堂護)란다. 나는 그저 이곳에 천하에서 소문난 신의 어르신이 있다길래 온 환자란다.
내 소개는 이만하면 되었지? 빨리 안내 좀 해줄 수 있겠느냐? 한시가 급하구나.”
“안 되는데요?”
당호는 얼굴에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재차 물었다.
“아니 왜 안되는 것이냐? 어르신이 계신 곳을 안내 해주라는 나의 부탁을 거절한 것은 너가 어르신이 계신 곳을 알고 있다는 것 아니냐?”
“하… 사실은…”
우리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얼굴에 당호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여 순간 숨조차 쉬지 못하였다.
“제가 설민이 누나가 아끼는 비녀를 놀다가 잃어버려 가지고…”
우리는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당호는 ‘설민이 누나가 누군데?’라는 생각에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후 방긋 웃으며 말했다.
“흠, 그럼 애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느냐?”
우리는 고개를 올려 밝게 웃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가 나를 신의 어르신께 데려다주면 내가 네가 말한 설민이 누나의 비녀를 잃어버린 범인이 되어주마. 너는 그저 범인을 찾으려 풀숲에 간 것이다.”
“진짜요?”
그는 따뜻한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당호는 이 말을 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았을때 이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아니 이 말을 한 자신의 멱살을 잡은 후 뺨을 수 없이 때리고 싶었다…
“이 놈이? 너 거기 손들고 있어!!! 비녀를 잃어버려? 내가 진짜 미친다, 미쳐!!! 당신은 누구길래 저 놈이 비녀를 잃어버리는 걸 도와준 거야!?!? 그게 뭔지 알아?!!!!!!!! 으아악!!!!!!!!”
“쿨럭….쿨럭…저…. 환자인데……..”
“뭐라고?!?! 크게 말해 이 양반아!!!!!”
설민에게 멱살을 잡힌 당호의 몸이 마치 거센 비바람에 흔들리는 한 줄기의 갈대처럼 이리저리 거칠게 흔들렸지만, 압도적인 살기에 짓눌린 그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가에 맺힌 사나이의 눈물을 애써 삼킬 뿐이었다…
끼이익…
안쪽 방문이 천천히 열리자 은은한 약향이 풍겼다.
“허허 밖이 꽤 시끄럽구나. 손님이라도 온 것이냐.”
짧지만 부드럽고 강인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만으로도 이곳이 신의 어르신이 사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삐걱
안쪽 방문에서 백의를 입은 긴 백발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크흠 내가 전부터 손님에게 인사할 땐 멱살을 잡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느냐.”
노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하아.. 넌 대체 누굴 닮았길래 그리도 폭력적인 것이냐.”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호의 멱살을 잡고 있던 설민이 당호를 밀치듯 멱살을 놓고 따지듯 대답했다.
“아니 할아버지 이 양반이 아니, 저 허연 양반이랑 저 망할 꼬맹이 녀석이 제 비녀를 잃어버렸는데 제가 가만히 있겠어요?”
“아,아니 난 잃어버린 게 아니라 범인을 잡은 곤데?”
“조용히 해!!! 팔 똑바로 올려!!!!”
우리의 입이 날던 새가 지친 몸을 쉴 수 있을 정도로 툭 튀어 나왔다.
우리의 말을 듣자마자 백발의 노인을 바라보던 설민의 눈동자가 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그 모습을 본 당호는 최대한 빨리 옷을 단정하게 한 후 서둘러 뒷걸음질을 쳤다.
2026.08.1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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