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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상구조자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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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온넬
5화무료 5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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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파트마다 다른 인물의 시점을 따라가며, 각자가 마주한 시련, 선택, 그리고 서로 얽힌 인연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공모전 참여작#현대판타지#스릴러#현대#인외존재#가족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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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헉…"



희미한 휴대폰 불빛을 비추며, 숨소리의 주인공은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하아…후."



오늘 오후 무렵, 친구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그게 전부였다.


급히 외투를 챙기고, 휴대폰과 보조배터리, 식수, 간단한 간식 몇 개만을 넣은 가방을 메고 곧장 산으로 향했다.

등산을 즐기던 내가 자주 찾던 산이라 걱정보다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이 앞서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막상 산에 오르니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져졌다.


분명 익숙하던 길이었지만 걷는 동안 주변 풍경은 점점 낯설게 변했고, 이내 방향 감각조차 흐려지더니 결국 길을 잃고 만 것이다.



'그냥 신고할 걸 그랬나…'



지금 와서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정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119에 신고하는 건데...

해는 빠르게 저물고 어느 순간부터는 주변이 온통 어둠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지금은 그저 휴대폰의 미약한 불빛에만 의지해 길 아닌 길을 더듬는 중이다.


발바닥은 이미 까져 욱신거렸고 땀과 흙먼지가 뒤섞인 얼굴은 서늘한 밤공기에 식어갔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길을 잘못 들었고, 순간순간의 판단을 미루고 지나쳤던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중, 나무들 사이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눈의 착각인가 싶었지만 다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등불 하나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 불빛을 따라 천천히 다가가자 오래된 목조 정자가 숲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에 힘이 풀릴 듯 아찔했지만 우선 정자 안으로 들어와 몸을 가누고는 잠시 숨을 골랐다.


정자의 기둥은 낡고 오래되어 있었지만, 구조물은 아직 제 형태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고 곳곳엔 먼지와 이끼가 내려앉아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라는 인상을 풍겼다. 바닥에는 희미한 물기가 배어 있어, 어쩐지 눅눅하고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


차가운 바람이 땀에 젖은 목덜미를 스치자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등불의 붉은빛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듯해 긴장감이 한겹 걷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곤 한시름 놓으며 천천히 시선을 돌려 정자 안을 둘러보는데, 중앙에 무언가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책이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그 자리에 올려둔 것처럼, 의도가 있어 보이는 듯한 위치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책을 들어 올리곤, 표지를 확인해보았다.


겉표지는 눅눅했고, 마치 안갯속을 오래 떠돌다 나온 것처럼 색이 바래 있었다. 책장은 물에 젖은 듯 군데군데 불어 있었고, 종이결은 쉽게 일어났다. 그럼에도 표면 한가운데엔 기묘한 문양 하나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 아래, ‘이상현상구조자연합’ —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이상하리만치 글씨 또한 너무 또렷했다.


이런 물건이 깊은 산속에 있다는 건 우연이라기엔 어딘가 의도가 느껴졌다.


혹시 이곳이 등산객이나 탐방객을 위한 쉼터이고, 정자가 산 깊숙한 곳에 있으니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면-


이 책 또한 그런 목적 아래 여기에 놓인 건 아닐까?


나는 망설인 끝에 조심스레 표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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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께서는 현재 이상현상구조자연합(이하 연합)의 관리 대상인 「만월산」에 진입하신 상태입니다.


만월산은 일반적인 경로로는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귀하는 해발 300m 이상의 지점에서 길을 헤매다 본 구역에 진입하였고, 이 정자를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현재까지 이 외의 경로를 통한 접근은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만월산은 연합이 분류한 고위험 이상현상으로 생존률이 현저히 낮은 구역이며, 통계에 따르면 진입자 중 절반 이상이 본 지침서를 발견하기도 전에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문서를 읽고 있는 귀하는 약 50%의 확률을 통과한 생존자임을 의미합니다.


만월산은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신 오염도가 빠르게 상승하는 특성이 있고, 정신 오염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기억과 인식이 왜곡되어 이미 학습한 내용조차 명확히 떠올리기 어려워집니다.


이에 따라 본 지침서는 모든 지시 사항을 ‘즉시 실행’하는 것을 전제로 구성하였으며, 기억에 의존하거나 전체 내용을 암기하려는 시도는 권장되지 않습니다.


현재 귀하가 머무르고 있는 3번 정자에는 특수 등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등불은 모든 정자에 공통적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일정 시간 동안 정신 오염의 진행을 억제하고 정자 내부를 비교적 안전한 공간으로 유지해 줍니다.


단, 등불의 지속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한 번 꺼진 등불은 다시 점등되지 않으며 이후로는 정자 역시 더 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빠르게 지침서를 따라 탈출을 시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연합은 귀하의 무사 귀환을 기원합니다.






1.정자 근처에 여러 갈랫길이 있을 것 입니다. 그 중 하얀 소금이 뿌려져 있는 길로 가십시오.


이때 절대로 큰 소리를 내면 안 됩니다.



1-2. 만약 소금이 검게 타있는 상태라면, 최대한 빠르게 달려 길의 끝으로 가십시오.


창귀가 근처에 있다는 뜻 입니다.



2.길의 끝에는 연합에서 실종자들을 위해 배치해둔 물건이 있습니다. 나오는 장소에 따라 해당 번호로 이동하십시오.



3. 금줄이 걸린 나무

4. 호숫가

5. 당집

6. 안개 낀 저수지




3. 금줄이 걸린 나무


3-1. 나무 아래에는 연합 요원들이 숨겨둔 매실이 여러 알 있을 것입니다.

하나만 챙기십시오. 두 개 이상을 소지할 경우, 창귀에게 발각될 확률이 크게 증가합니다.


매실을 챙긴 후에는, 나무 뒤쪽에 있는 길로 이동하십시오.



3-2. 나무 뒤의 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걷다 보면, 귀하의 이름이나 낯선 목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이 목소리는 창귀가 귀하를 유인하기 위한 수단이니, 절대로 응답하지 마십시오.


창귀는 총 세 번의 목소리를 낼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속아선 안 됩니다.



3-2-1. 만약 두 차례 응답한 경우, 지체하지 말고 소지한 매실을 가능한 멀리 던지십시오.

매실은 창귀의 주의를 잠시 돌릴 수 있으며, 그 틈을 이용해 즉시 이동하십시오.



3-2-2. 세 번째 부름에 응답하는 순간, 귀하는 사망하게 됩니다.

귀하의 가족에게는 연합 규정에 따른 위로금이 지급됩니다.



3-3. 다시 20분가량 이동하면, 작은 연못이나 고인 물이 보일 것입니다.

절대 접근하지 마십시오.

해당 구역으로 향한 이들 중 생환한 사례는 아직까지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ㄴ저 연못에서 손이랑 머리카락 봤어요

   ㄴ그거 실종자들 신체 아녜요?



3-4. 연못을 지나 약 27분간 걷다 보면, 달빛이 완전히 가려지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구간이 나타납니다.


멈추지 말고, 빠르게 통과하십시오.



3-5. 해당 구간을 지나면 시야가 붉게 흐려지고 피 냄새가 짙어질 것입니다.

절대로 아무 소리도 내지 마십시오.

만약 소리를 낸 경우, 즉시 매실을 던지고 최대한 빠르게 해당 구역을 벗어나십시오.


시야가 돌아오고 피 냄새가 사라졌다면, 안전하게 벗어난 것입니다.



3-6. 위 구역을 지나면 시야에 부러진 나무들이 가득한 장소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은 비교적 위험이 낮은 구역이며, 길을 따라 30분 정도 이동하면 다음 지점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3-6-1. 이동 중 땅이 진동하거나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면, 뒤로 10걸음 물러난 후 눈을 감으십시오.


진동과 소리가 멈춘 뒤에는 다시 이동하셔도 됩니다.



3-7. 위 구역을 벗어나면, 하늘에 초승달이 떠 있을 것입니다.


아주 드물게, 발목이 잡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경우 주저하지 말고 즉시 매실을 던진 후 반대쪽으로 몸을 빼내 이동하십시오.



ㄴ매실 안 통한다! 근처에 연못 있으면 잡히는 거 같던데 연못에서 멀어지면 손 떨어짐


  ㄴ악력 장난 아니던데… 걷지 말고 뛰어서 떨어트리세요.



3-8. 초승달이 떠 있는 구역을 지나면, 완전한 어둠으로 가득 찬 통로가 나타납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곧바로 통과하십시오.


멈추거나 주저앉은 경우, 생환한 사례는 아직까지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3-9. 어둠 속 통로를 지나면 갈래길이 나타납니다.


그중 연합 요원들이 흰 소금과 팥을 뿌려둔 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 길로 이동하십시오.


이곳만 지나면 귀하께서 올라오셨던 산의 입구에서 눈을 뜨게되실 겁니다.


※ 해당 구역은 달빛이 유일하게 닿는 곳이므로 육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소금과 팥이 없는 다른 길로 진입한 이들의 생환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다른 길로 가지 마십시오.







4. 호숫가


4-1. 호숫가에서 약간 떨어진 지점에 연합 요원들이 숨겨둔 매실 여러 알이 있습니다.

하나만 챙기십시오. 두 개 이상을 소지할 경우, 창귀에게 발각될 확률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매실을 챙긴 뒤에는 호수 뒤편으로 이어진 길로 진입하십시오.


약 10분 정도 걸으면 바닥 곳곳에 물 웅덩이가 고여 있는 지역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4-2-1. 물 웅덩이 위의 반사체에 주의하십시오.

이 일대의 호수는 바람이 잦고, 수면이 흔들려 반사가 선명히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귀하의 모습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물에 비친다면, 그것은 창귀의 눈과 마주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즉시 시선을 끊고 물가에서 멀어지십시오.


이후 4분간 기다린 뒤, 다시 경로를 따라 이동하십시오.



4-2-2. 물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지나가도 됩니다.

약 30분 정도 걷다 보면, 작고 깊은 연못 하나가 나타날 것입니다.



4-3. 연못 근처에 놓인 신발, 수건, 옷가지 등을 줍지 마십시오.

연합의 기록에 따르면 창귀가 실체를 남긴 전례는 없습니다.

이에 따라 연합은 해당 물건들을 실종자의 유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보고에 따르면 이러한 물건을 줍는 즉시 ‘발목이 젖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사망률이 40%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연못 주변 물건은 절대 건드리지 말 것을 권합니다.




4-4. 연못을 지나면 초승달이 떠 있는 오솔길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구간은 비교적 안전하지만, 간혹 물안개가 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기침, 재채기, 숨소리를 포함해 모든 소리를 삼가십시오.


연합은 이를 ‘바람에 의한 착청 현상’으로 보고 있으나, 현재까지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아 주의가 요구됩니다.


약 10분 후, 저수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4-5. 이 저수지는 안개가 끼지 않은 지역입니다.


따라서 6번 지점에 있는 ‘안개 낀 저수지’와는 구분됩니다.

주의하십시오. 들리는 물소리는 귀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살려달라는 목소리’, ‘무언가 빠지는 소리’, ‘울음’ 등의 음성은 창귀가 유도하는 환청입니다.


그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귀하는 실종 처리됩니다.



4-6. 손목 또는 발목을 움켜쥐는 감각이 느껴진다면, 즉시 뿌리치고 도망치십시오.


이 감각이 들렸다는 것은 이미 창귀가 바로 곁까지 다가온 상태라는 뜻입니다. 이끌리는 대로 따라가면 귀하는 저수지에 끌려가며, 실종 처리됩니다.


호숫가를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호숫가를 벗어나면 곧 동굴이 보일 것입니다.




4-7. 동굴이 보인다면 귀하는 탈출 경로에 도달한 것입니다.


해당 동굴은 원형의 입구를 가진 지형으로, 입구 상단에는 이끼와 조류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통로는 낮고 길며 통과하려면 허리를 숙여야 합니다.



ㄴ허리 부서지는 줄 알았네


ㄴ 키 작은 혜인이는 덜 아프겠네? 부럽다ㅜㅜ

  ㄴ 너 서이한이지. 뒤진다 진짜;;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탈출구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최소 1분에서 최대 10시간까지 상이했습니다.


동굴 내부에는 연합이 등불을 걸어두었습니다.

등불을 확인했다면 그대로 직진하십시오.


귀하는 올라오셨던 산 입구에서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5. 당집


입구에 오색천이 걸린 당집을 발견하셨다면, 귀하께서는 운이 매우 좋은 편에 속합니다.

당집 내부로 들어가면, 불상을 향해 기도 중인 무당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해당 개체와 함께 눈을 감은 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기도가 충분히 간절했다면, 불상은 별다른 위험 없이 귀하를 집으로 돌려보내줄 것 입니다.



⚠해당 장소에는 별도의 물품을 배치해두지 않았습니다.




ㄴ 무당 얼굴 보지 마세요.

등 돌리고 있는 거, 앞까지 가서 보지 마세요.

왜 그런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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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엔 달빛에 비친 두 갈래 길이 있다.

지침서에 묘사된 그 마지막 구간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그러니까- 나는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인식되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 허윽… 흐…."



몇 번이고 넘어지고 또 넘어진 끝이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는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말을 걸어오질 않나, 느닷없이 발목을 붙잡히질 않나—

당분간은 산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딱 그 순간 생각했다.


—그때,



"김소율!"

"!"



문자를 보냈던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귀일까?

나를 막기 위한 마지막 수단?


하지만 지침서엔 마지막 구간에서 창귀가 나타난다는 설명이 없다.

그렇다면, 저 목소리는 정말 ‘친구’라는 뜻이 아닐까?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 수해야!"



소금이 뿌려진 갈래길 위에, 친구가 서 있었다.

나는 곧장 친구에게 다가갔다.



"진짜 와줄 줄은 몰랐는데, 나 찾으러 온 거야?"

"당연하지! 넌 괜찮아?"



여기저기 살펴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친구는 멀쩡해 보였다.


정신오염의 잔재도, 일그러진 환상도 아닌 진짜 사람.



"야 너, 진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나도 고생하고…"

"근데, 소율아. 그거 알아?"

"뭐가?"

"너, 세 번 대답했어."



그 순간,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그건 더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짐승에게 물린 듯 목이 으스러져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기괴하게 떨리고 있었다.


입을 열 때마다 진득한 피가 솟구쳐 넘쳤고, 그것은 바닥에 붉은 웅덩이를 만들었고, 움푹 꺼진 눈구멍, 피범벅이 된 머리칼— 그 몰골은 눈을 떼기조차 어려울 만큼 끔찍했다.



"....너-"



세 번 대답했다!

세 번 대답했다!

세 번 대답했다!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호랑이 님! 제발, 이제 저를 놔주세요!

저것을 데려가 주세요! 저는 먹이를 바쳤습니다! 저를 해방시켜 주세요!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탈출해야 한다.

어서 이 갈래길을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창귀가 길을 막고 있다.

어떡하지?



…그래, 반대쪽 길로 간다.


지침서엔 ‘가지 말라’고 쓰여 있었지만 지금 가만히 있으면 나도 저 꼴이 될 게 뻔하다.


나는 창귀가 없는 길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안 돼. 안 돼! 가지 마! 가지 마!


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살려줘살려줘살려줘날구해주러온거잖아날도와주러온거잖아그럼나를해방시켜줘나를여기서꺼내줘이고통을끝내줘제발김소율김소율김소율내말안들려?무시하지마다들리잖아듣고있잖아아안되호랑이님이왔어산군님이오셨어행차하셨어나를벌하려고해아니야나는할일을했어너를데려왔는데아아잘못했어요호랑이님제발저를놔주세요먹이를데려왔어요저를풀어주세요부디저를해방시켜주세요너무아파요살려주세요아아아악





뒤에서 해수— 아니, 창귀가 절망에 사무친 외침을 뱉어냈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나도 살아야 하니까.



"헉… 허윽……"



길의 끝에, 안개로 가득한 공간이 펼쳐졌다.

자세히 보니, 안개 속에는 거대한 저수지가 있었다.



"지… 지침서."



아까, 지침서에서 안개와 저수지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6. 안개 낀 저수지



여기다.

이제, 정말 이것만 따라가면 탈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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